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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le Lee Oct 22. 2019

집안일에 손대기만 해봐

어느 백수 남편의 일기 (6)


“평생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해 줄게요.”


80년대에 프러포즈를 하는 남자들이 성경구절 외우듯 했던 그 말을, 설마 내가 듣게 될 줄은 몰랐다. 결혼하기 전, 호기롭게 외친 아내의 선언이었다.

 

“남자가 부엌에서 꽁냥 거리는 거 별로 보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당신이 하면 어차피 내 성에 안 차. 내가 다시 다 해야 된단 말이야. 그러니까 일거리 늘리지 말고 그냥 아예 하지 말아요. 집안일에 손 대기만 해봐, 아주 그냥…!”

 

아내와 나는
자라온 환경이 많이 달랐다.


아내와 나는 자라온 환경이 많이 달랐다. “여자는…”이라고 시작되는 문장이 나오면 한바탕 난리가 나는 어머니와 누나를 두었던 나와 달리, 아내는 가부장 적인 분위기의 집안에서 자랐다. 말수가 적고 무뚝뚝한 장인어른은 집 안의 큰 어른으로서 묵묵한 기둥의 역할을 하셨던 반면, 나의 아버지는 주말 아침이면 요란스러운 분위기로 미묘하게 김치 맛이 나는 한국적인 스파게티를 만들곤 하셨다. 3살 터울의 누나에게 밥을 차려준 적은 있어도 누나가 차려준 밥을 먹어본 적은 없는 내게, 아내의 요구는 너무도 낯설었다.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데 정답이 있을까. 장인어른 내외도, 우리 부모님도 모두 다툼 없이 단란하고 행복했다.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 문제는 당사자들의 행복 앞에서는 의미를 잃어버렸다. 그저, 중간에 낀 아내와 나의 묘한 상황이 놓여있을 뿐.

 

대학생 시절부터 독립해서 살았던 내게 집안일은 익숙하고 당연한 것이다. 그저 “요리는 재밌지만 설거지는 귀찮아.” 라거나, “청소는 그럭저럭 할 만 한데, 빨래는 왜 그리 싫은지 잘 모르겠어.” 같은 호불호만 있을 뿐이다. 

 

그런 내게 아내는 연애시절부터 “당신이 하는 설거지는 좀 어설퍼요.” 라거나 “청소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죠.”라는 둥, 나의 가사 능력에 대한 자부심을 철저히 뭉게 버렸다. 그리고 결혼을 기점으로 ‘부엌 출입 금지령’을 내리고는, 정말로 손도 대지 못하게 했다. 

 

해가 바뀌고 그런 생활이 익숙해졌을 무렵, 다시 한번 상황이 변했다. 백수 남편이 대부분의 시간을 집안에서 보낸 것이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난 만큼 어질러지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설거지 거리는 개수대 위로 고봉밥처럼 쌓여갔고, 바닥에는 길고 짧은 머리카락이 걸음에 맞춰 벚꽃처럼 이리저리 흩날렸다. 식탁과 소파 테이블에는 갖가지 잡동사니가 어질러져 있었고, 식재료나 휴지 같은 생활용품들은 사다 놓기 무섭게 바닥을 드러내는가 하면, 쓰레기통은 비우기가 무섭게 차올랐다. 부지런함에 둘째가라면 서러운 아내도 네 살 바기 아이 마냥 집안을 누비는 덩치 큰 남편을 감당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음식물 쓰레기가 쌓여가는 속도만큼 아내의 휴식시간은 줄어들었고, 그에 비례하여 백수 남편은 죄책감을 느낀다. 그리고 백수 남편은 생각한다. ‘나는 시간이 많고, 할 일도 그다지 많지 않다.’라고.

 

백수 남편은 생각한다.
나는 시간이 많고,
할 일도 그다지 많지 않다고.


오전 6시 15분. 아침이 오기 전 어둠이 가장 짙은 시간에 어김없이 울리는 현관문 닫히는 소리. 침대를 박차고 일어난다. 창문 너머 아내의 차가 좁은 골목길을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자, 시작해볼까.

 

창문을 모두 활짝 열고 선반과 협탁 위의 잡다한 물건들을 모두 치운다. “비비디 바비디 부~”라고 중얼거리며 선반 위를 털던 아내의 최강 아이템 타조털 먼지 떨이개를 들고 탈, 탈, 선반을 쓸어나간다. 먼지 떨이개 하나에 3만 원이나 하는 걸 대체 왜 사나 했는데, 무슨 청소기 마냥 먼지를 빨아먹는다. 손목 스냅에 속도가 붙으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비비디 바비디 부.

 

바닥을 쓸고 밀대로 쓱 쓱 문지르니 서걱거리던 발바닥의 감촉이 뽀송뽀송하다. 부엌 바닥에 눌어붙었던 양념 흔적이 쓱싹 지워져 간다. 아내의 팔 힘으로는 아마 지우기 쉽지 않았겠지. 부엌 매트를 걷어 창문 밖으로 탁 탁 두들기자 뽀얀 먼지가 피어오른다. 이걸로는 모자라지 싶어 현관 매트와 함께 세탁기로 던져 넣는다. 한 번도 내 손으로 돌려본 적 없는 세탁기의 현란한 다이얼이 낯설다. 서랍을 뒤져 사용설명서를 찾아내고, 친절한 그림을 따라 또각또각 순서에 맞게 버튼을 누른다. 쏴아, 세탁기에 물이 차오른다. 올레!

 

가스레인지, 전자오븐레인지, 개수대, 냉장고 청소를 마치고 나니 오전이 끝나가고 있었다. 이사 후 넓어진 집에 꽤나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평소보다 10배는 더 넓어 보인다. 이 집이 이렇게나 넓었다니. 머리카락을 타고 땀방울이 떨어진다. 애써 닦아 놓은 바닥에 얼룩이 질까, 서둘러 소매로 훔치고는 입고 있던 옷을 모조리 벗어 세탁기에 밀어 넣는다. 하루에 세탁기를 두 번 돌려보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다.

 

자, 이제 화장실만 남았다. 얼른 끝내고 시원하게 샤워한 다음, 나물을 가득 넣고 고추장에 비벼 비빔밥이나 해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바닥 솔을 힘껏 문지르다, 드디어 일이 터진다. 와장창.

 

바닥에서 천장까지 고정된 화장실용 선반이 솔 끝에 걸려 중심을 잃고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친다. 샴푸통, 샤워젤은 변기로 다이빙을 하고, 샤워타월과 린스, 면도기는 바닥을 구른다. 그리고, 아내의 도자기로 된 스위스제 샴푸통이 가루가 되어 흩어진다. 아, 아까 매트를 털 때 피어오르던 먼지 같네. 이것도 세탁기에 넣어야 하나? 그러면 다시 괜찮아지지 않을까?

 

“이건 꼭 사야 돼. 이것보다 우리 화장실에 잘 어울리는 샴푸통은 없어요. 아, 근데 너무 비싼데. 어쩌지? 다른 걸 살까? 그런데 이걸 봐 버렸잖아. 뭘 사도 맘에 안들 텐데. 내가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우울한 표정을 하면 당신도 기분이 좋지 않겠죠? 그러니까 이걸 사는 건 우리 행복을 위해서인 거야. 그치? 절대 낭비하는 게 아니에요.”

 

샴푸통 하나를 주문하면서, 참 많이도 기뻐하던 아내의 모습이 대혁명시대의 파리 시내 같은 화장실 바닥에 오버랩된다. 한참을 멍하니 서서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를 고민해보지만, 부서진 샴푸통은 돌아오지 않는다. 어쩔 수 없다. 벌어진 일은 벌어진 것이다. 이 사건을 벌인 사람도 나고, 여기에는 치울 사람도 나뿐이다. 나폴레옹은 오래전에 죽고 없다.

 

빗자루를 향해 발을 옮긴다. 하지만 두 걸음도 다 떼지 못해 악, 하고 비명을 지른다. 엄지발가락에 콕, 도자기 조각이 박혀있다. 젠장, 정말이지 가지가지한다.

 

집안일에 손대기만 해봐. 아주 그냥...!


“집안일에 손대기만 해봐, 아주 그냥…!”

 

아내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화장실 문턱에 걸터앉아 상처 사이로 맺히는 피를 닦는다. 이보다 한심할 수 있을까? 나이 서른 중반에 벌거벗고 욕실에 주저앉아 피를 닦고 있는 모습이라니.

 

하지만 나의 비명에도 집안은 다시금 고요함을 되찾는다. 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볼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아내는 지금 회사에 있겠지. 아마 화장실이 이 모양이 돼버린 것은 꿈에도 모른 채 열심히 모니터를 보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을 것이다. 아내의 말을 듣지 않아 벌을 받는 것일까. 엄마에게 혼나기 전 초등학생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 나는 오늘 밤 어떤 표정으로 아내에게 이야기를 해야 할까. 미안해요,라고 말을 꺼내면 아내는 뭐라고 답할까. 나의 이 미안한 감정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아내의 말을 듣지 않은 것에 대한 미안함일까, 아니면 아내의 소중한 샴푸통을 조각내버린 부주의함일까. 

 

수건을 둘둘 말아 발가락을 누른다. 이 수건도 빨아야겠군. 오늘은 세탁기를 세 번 돌리는 역사적인 날이다. 답이 나오지 않는 물음들이 풍선처럼 머리 위를 동동 떠다니고, 그저, 상처 사이로 베어 나온 피가 눈물처럼 방울져 내릴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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