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백수 남편의 일기 (9)
“1시까지 도착하려면 얼른 준비해야 해요. 이제 일어나서 씻어야지, 안 그러면 늦어요.”
아내의 주말은 평소보다 늦게 시작된다. 아내는 재촉에 못 이겨 떠지지 않는 눈으로 화장실을 더듬어 찾는다.
“나 준비 끝났으니까, 준비되는 대로 바로 출발하자. 선물 챙겼죠?”
결혼하고 두 번째로 맞는 장인어른의 생신. 안 그래도 미운털 박히기 쉬운 백수 사위가 늦기라도 했다가는 무슨 눈치를 보게 될지 알 수 없다. 선물이라도 번듯하게 하면 좋겠는데, 아내는 오히려 두 손을 휘휘 젓는다.
“우리 형편 뻔히 다 아시는데 선물에 돈 쓰면 그게 더 곱게 안 보여요. 얘네가 아직 정신 덜 차렸구나 하실 거야. 그냥 지난번에 하던 만큼만 하는 게 나아요. 괜히 돈만 더 쓰고 혼나기만 할 건데.”
그렇지. 장인어른은 그러실 분이지. 간결하고 검소한, 자수성가의 표본 같은 분이지. 그래서 더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고작 몇 만 원 차이로 고민하는 사위가 얼마나 못 미더우실는지.
토요일의 고속화도로는 굼벵이 도로의 다른 이름이다. 차선마다 꽉 들어찬 차들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한 채 엉덩이로 희뿌연 한숨만 잔뜩 쉬어댄다. 산보하듯 느긋하기만 한 차에 라디오 소리만이 가득하다. MC의 과장된 연기와 녹음테이프를 돌리는 것 같은 청중의 웃음소리가 오늘따라 더 멀게 느껴진다.
장모님은 오늘도
아이 이야기하시겠지?
“장모님은 오늘도 아이 이야기하시겠지?”
아내가 대답한다.
“신경 쓰여요?”
응 신경 쓰여요, 하고 속으로 답한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아내. 여전히 도로는 뚫릴 줄 모른다.
아내는 결혼 전부터 습관처럼 아이를 좋아한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형제가 많은 집에 태어나 아이가 많은 것에 익숙하다고. 얼굴을 마주하면 늘 티격태격하는 동생들이지만, 유년기의 추억은 잘 닦아놓은 수정구슬처럼 빛이 난다고 했다.
“셋은 별로예요. 하나가 소외되기 쉬워요. 넷 정도가 짝도 맞고 딱 좋아.”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농담인 줄 알았다. 하나도 낳을까 말까 하는 저출산 시대에 넷 이라니. 농담도 참. 이러다가 아내의 눈을 보고 깨달았다. 아, 진담이구나.
“막내는 내가 기저귀 갈아가면서 업어 키웠어요. 엄마가 늘 일을 나가셔서 중학생 때는 점심시간에 집에 가서 막내 밥을 차려주고 다시 학교로 갔고, 대학에 들어간 이후에는 엄마 대신 동생 학부모 참관에 가기도 했어요.”
아내의 자신감이 에베레스트라면,
나의 자신감은 마리아나 해구 바닥의
모래알과 같다.
육아에 자신감 넘치는 아내. 동생 돌보는 게 내 애 키우는 거랑 같을 리가 있나 싶지만, 굳이 그 자신감을 꺾고 싶지 않았다. 아내의 자신감이 풍선으로 만든 에베레스트라면, 나의 육아에 대한 자신감은 마리아나 해구 바닥의 모래알과 같다. 아내가 그 정도는 되어야 나도 ‘낳아도 될까?’하는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할 수 있게 되겠지.
아내는 겪어보지도 않고 겁을 내는 남편이 못 미더울 터이다. 하지만 나도 할 말은 있다. 나도 본 게 있다고. 그리고 박테리아 표피에 묻은 먼지만큼이지만 경험도 있다고. 대학교 3학년이 되던 해에, 세 살 터울의 누나는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대학원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었을 즈음에는 둘째의 산달이 다가오고 있었다. 여자 친구가 아이는 넷이 적당할 것 같다더라는 말에 누나는 입이 찢어져라 웃고는 이렇게 말했다.
“잘해봐.”
첫째를 낳았을 때, 누나는 3개월간 집으로 들어와 어머니의 손을 빌렸다. 첫 아이는 부모의 서투름과 함께 자란다. 잠을 재우는 것도, 밥을 먹이는 것도, 트림을 시키는 것도, 기저귀를 가는 것도 모두 처음 해보는 일이다. 3개월간 첫 조카를 보면서 느낀 것은 애정보다 경이로움에 가까웠다. 목도 못 가누는 이 조그만 게 나처럼 된다니. 상상이 가지 않았다.
100일의 기적은 놀라웠다. 1시간 단위로 고막을 찌르며 울어대는 통에, 나의 4학년 마지막 학기는 늘 수면부족이었다. 하지만 100일이 지나자 마법처럼 두 시간을 잔다. 운이 좋은 날에는 다섯 시간 이상도 기절한 듯 잠에 빠지기도 했다. 아, 이제 진짜 삼촌처럼 예뻐할 수 있겠구나. 이제 미워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하기 무섭게 누나는 자기 집으로 돌어가 버렸다. 그 이후 내게 육아는 피골이 상접하고 붉게 충혈된 눈에 늘 잠에 취해 고통받는 생활의 연속으로 뇌리에 박혀버렸다.
누나가 둘째를 낳을 때는 더 심각했다. 둘째 예정일을 한 달 앞두고, 누나는 이제 제법 혼자 잘 걸어 다니는 조카와 함께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어느 새벽, 어머니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정호야, 일어나 봐. 누나 아기 낳을 것 같아. 양수가 터졌어.”
스프링처럼 침대에서 뛰어올랐다. 눈을 뜬 지 1초 만에 정신이 또렷해진다. 에너지 드링크를 한꺼번에 10병쯤 마시면 이런 기분일까.
“아빠랑 엄마는 누나 데리고 병원 갈 거야. 지우는 아직 자고 있으니까 혹시 깨면 잘 데리고 있어. 매형도 병원으로 바로 올 거야.”
“응, 알았어요. 조심히 다녀오세요.”
현관문을 닫고 차마 묻지 못한 말이 입 안에 맴돈다. 어머니, 그런데 언제 돌아오실 건가요. 지우 깨기 전에는 돌아오실 거죠.
누나가 자고 있던 방 문을 조심스레 열어보았다. 아직 어두운 새벽, 고요한 어둠 속에서 촉촉이 젖은 두 눈동자가 반짝인다.
“어… 지우 깼구나… 아직 밤이야. 좀 더 자야지. 삼촌이 재워줄까?”
셋, 둘, 하나, 시작.
조카의 눈에서 분수처럼 눈물이 쏟아진다. 귀청을 찢는 하이톤의 울부짖음. 부모님이 돌아오시기 까지 걸렸던 4시간. 살아서 지옥을 맛본다는 것을 조금은 알 수 있었던 하루였다.
아내와 나는 연애기간을 포함한 5년간 길고 긴 공방을 거쳐 ‘아이를 낳는다면 둘. 낳더라도 좀 더 준비된 후.’로 합의를 보았다. 하지만 백수가 된 이후, 우리는 은연중에 아이 이야기를 멈추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이’라는 단어를 입밖에 내지 않게 된 것이다. 아내는 그 단어가 내게 줄 부담감을 의식했고, 나는 그 단어가 주는 아릿한 쓴맛이 두려웠다.
“어서 와라. 길 많이 막혔지? 오느라 고생했네. 어유, 우리 사위. 운전 힘들지는 않았고?”
두 팔을 크게 벌려 품에 안아주시는 장모님. 현관까지 풍겨오는 갈비찜 냄새. 품이 넉넉한 처남의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처가 식구들과 함께 식탁에 앉는다. 6인용 식탁 위로 여백이 보이지 않을 만큼 차려진 밥상이 감격스럽다.
6인용 식탁 위로 여백이 보이지 않을 만큼 차려진 밥상이 감격스럽다. 오늘의 나의 미션은 여기에 잔반이 남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괜찮다. 지난 설에 충분히 단련해두었다.
오랜만에 어머니를 만난 딸은 밥도 잊은 채 친구 이야기며 회사 이야기를 깨알처럼 쏟아냈고, 나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다. 그렇게 식탁이 조금씩 비워져 갈 때, 아내의 흥분한 목소리가 화근이 되었다.
“그 미친 신입 놈 때문에 진짜 팀 분위기가 개판이에요.”
아, 망할 신입사원.
“얘, 넌 엄마 될 사람이 말이 그게 뭐니. 이제 말 예쁘게 해야지. 습관 되면 나중에 애가 그대로 따라 해. 애가 그러면 그건 다 부모 탓이야.”
아내는 민폐 덩어리 신입사원 때문에 회사도 피곤한데, 덩달아 장모님의 꾸지람 10분 청취권에 당첨되었다. 엄마가 될 사람은 말도 예쁘게 해야 하고, 마음씨도 곱게 써야 하고, 음식도 편식하면 안 되고, 하기 싫은 것도 할 줄 알아야 하고, 늘 모범을 보여야 하고, 또, 또…
“그래서…”
장모님의 말을 끊고, 장인어른이 입을 여신다.
“애기 소식은?”
애기 소식은?
오늘 처음으로 들은 장인어른의 목소리가 바위처럼 목구멍에 턱, 하고 얹혀온다. 고개를 들지 못하고 쿨럭이며 애꿎은 물 잔을 재촉한다. 타이슨과 마주 선 펀치 미트가 된 기분이다.
“나 대리 달기 전까지는 절대 안 낳아요.”
기침이 잦아들 때쯤, 아내가 말했다.
“우리 회사 분위기 알잖아요. 대리 달기 전에 임신했다가는 절대 승진 못해요. 경력도 어중간하게 끊겨서 어디 이직도 힘들어요. 최소한 대리는 달고 가져야 육아휴직도 눈치 덜 보고 쓰지. 아직은 안돼요.”
그래도 하루라도 젊을 때 가져야 아이도 건강하다는 장모님의 말씀도 아내의 단호한 대답 앞에서는 설 자리를 잃었다. 아이보다 내 인생이 더 중요해요,라고 말하는 아내. 철이 덜 들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시는 장모님의 눈치를 보다, 뒤늦게 장인어른의 빈 술잔을 채운다. 술을 즐기지 않는 장인어른이, 유독 오늘따라 잔을 빨리 비우시는 것은 아마도 내 착각일 것이다.
침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아내에게는 올해 수능을 치를 훌륭한 희생양 막냇동생이 있다. “그러고 보니 너 모의고사 성적 나왔지?”라는 말을 시작으로, 처남의 3월 모의고사 성적과 공부방법에 대한 두 누나들의 잔소리가 이어졌고, 나는 다시 열심히 접시를 비워가기 시작했다.
장인어른은 걸신들린 듯 허겁지겁하는 사위를 보다, 팔을 뻗어 잔을 올린다.
챙. 도자기 술잔의 낮고 맑은 소리가, 목을 타고 넘어가는 안동 소주의 독한 기운을 달래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