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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le Lee Oct 22. 2019

연인의 별

어느 백수 남편의 일기 (17)


“산책하는 거 정말 오랜만이다. 전에 분당에서 살 때는 주말이면 탄천 따라서 자주 걸었었는데. 여기는 차를 타고 공원까지 나와야 겨우 산책을 할 만한 길이 나오니 그건 좀 불만이에요.”

 

토요일 새벽. 웬일인지 아내가 잠이 오지 않는다며 산책을 제안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호수공원을 향해 운전대를 잡는다.

 

“우와! 오빠, 저기 별 좀 봐요!”

 

드문 드문 세워진 가로등 불빛에 반짝이는 호수 위로 별이 쏟아진다. 

 

“여기 와서 제일 좋은 게 이거야. 밤이면 별이 보여요. 당연히 있는 건데, 이걸 왜 이렇게 보기가 어려웠던 걸까.”

 

감탄사가 가득 담긴 목소리로 아내가 말한다. 정말 그러네. 왜 그동안 못 보고 지냈을까.

 

“정호야, 저기 저 별들 보이지? 저기 저 별들이 우리 정호 별자리야. 저기 두 개가 집게발, 저기 저 별들이 몸, 그리고 뒤로 이어지는 별들이 꼬리. 우리 정호는 전갈자리라서 감수성이 풍부한 걸 지도 몰라.”

 

어렸을 적, 어머니는 밤하늘에 촘촘히 박힌 별들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엄마는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천문학과를 졸업하신 어머니는 어린 내게 별자리를 보는 법과 함께 별자리에 담긴 이야기를 한가득 안겨주었다. 밤하늘에는 낭만과 음모, 사랑과 질투가 모두 담겨있었다. 

 

“저기, 저 별자리가 케페우스 자리야. 죽은 아내의 곁으로 가서 별이 된 왕이 저기 있는 거야. 그리고 저 별이 케페우스의 델타야. 엄마가 졸업할 때 썼던 논문이 저 별이었어.”

 

어머니의 손가락 끝에 별 하나가 반짝이며 달린다.

 

어머니의 손가락 끝에
별 하나가 반짝이며 달린다.


“저 별을 따라 도는 별이 많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좀 특별해. 별도 가끔 연애를 하거든. 정말 오래전에, 사람들이 하나인 줄만 알았던 별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까 별이 하나가 아니었던 거야. 두 별이 서로를 공전하면서 돌고 있어서, 멀리 있는 우리는 별이 하나인 줄 알았던 거지. 사람들은 이런 별을 쌍둥이 별이라고 부르는데, 엄마는 저 별한테 연인의 별이라는 이름을 붙여줬어.”

 

서로가 서로의 궤도를 돌며 끝없이 공전하는 두 별의 이야기에 밤이 깊도록 잠들지 못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리고 철없는 아들은 어머니에게 물었다.

 

“엄마는 별 공부 더 안 해?”

 

“엄마는”

 

어머니가 무릎을 구부려 앉으며 말한다.

 

“우리 정호가 별에서 내려와 엄마한테 온 거거든. 엄마는 이제 정호 별을 공부하고 있는 거야.”

 

어머니가 국내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학교를 수석으로 입학하여 수석으로 졸업한, 교수들의 주목을 받았던 잔 다르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 나는 그저, 어머니를 위해 하늘에서 내려오는 꿈을 꾸는 감수성 풍부한 철없는 아이였을 뿐이다. 

 

“너무 낭만적이에요.”

 

연인의 별 이야기를 들은 아내가 말한다.

 

“하지만 너무 슬퍼.”

 

어떤 부분이 이 낭만적인 이야기를 슬프게 만드는 것일까, 하고 아내에게 묻는다. 아내는 잘 모르겠다고 답한다. 

 

“어머님은 천문학과를 가셨을 때 무슨 일을 하고 싶으셨던 걸까?”

 

“글쎄, 사실 물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어요.”

 

아내의 말에 그동안 당연했던 추억이 표정을 바꾸고, 추억 속 어머니의 얼굴이 흐려진다. 어머니는 어떤 꿈을 꾸셨을까. 아버지와 만나 사랑에 빠지기 전, 어머니도 저기 반짝이는 별 중에 하나를 품에 넣고 꿈을 꾸셨을 텐데.

 

어머니는 어떤 꿈을 꾸셨을까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어요. 이상하다.”

 

그리고 반쯤 혼잣말로 속삭인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만나 행복하셨을까?”

 

호수에 잠긴 별이 보석처럼 빛나다, 바람에 쓸려 일렁인다.

 

“어머님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에요.”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아내가 말한다.

 

“이건 같은 여자끼리만 알 수 있는 거예요.”

 

호수 둘레를 따라 한참을 돌며 가슴 가득 별을 담아 집에 돌아온 아내가 침대에 눕는다. 이제 좀 잠이 올 것 같다고, 눈을 감으며 아내가 말한다.

 

“나는 오빠랑 연인의 별 하고 싶지 않아요.”

 

“왜요?”

 

“백 년이고 천 년이고 서로를 보고 있지만, 하나가 되지는 못하잖아요. 평행선처럼 만나지 못하는 처지가 로미오와 줄리엣 같아. 나는 비극은 싫어요.”

 

아내가 품에 안겨오며 말한다.

 

“나는 같잖고 볼품없어도, 희극으로 살고 싶어요.”

 

같잖고 볼품없어도
희극으로 살고 싶어요


스탠드 불을 끄자 불빛 한 점 없는 천장에 별자리가 펼쳐진다. 저기에 전갈자리가 있고, 저기에 물고기자리가 있다. 그리고 저기, 저 북쪽 하늘에 케페우스 왕이 아내 카시오페이아를 바라보며 눕는다.

 

‘어렸을 적에는 고독하다는 게 뭔지 잘 몰랐어요.’

 

잠든 아내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사랑을 해도 고독할 수 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어요,라고.

 

‘하지만 그 고독마저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당신도 알고 있을까.’

 

두 눈을 감고 아내를 품 안 가득 끌어안는다. 아무리 다가가도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없다. 내 안의 별 하나와, 당신 안에 별 하나. 당신의 궤도에 내가 오르고, 당신이 내 궤도를 따라 돈다. 

 

이렇게 한없이 돌고 돌다 보면, 언젠가 저 먼 곳에서 누군가 우리를 하나라고 생각해주지 않을까.


내일은 헤드헌터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고도 생각한다. 회사를 그만두면서 연락을 끊었었는데. 아직 나를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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