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을 걸기전에
사람이 가장 정직해지는 순간이 있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진 직후, 혼자 차 안에 앉아 있는 순간이 그렇다. 아직 어딘가로 가지도 않았고, 방금 있었던 자리로 돌아가지도 않은 그 사이의 시간. 엔진이 꺼진 차 안에서, 아직 시동을 걸지 않은 채로. 그 순간 사람들은 자신도 몰랐던 것들을 느낀다. 아까 왜 그 말을 했을까, 왜 그 말을 못 했을까, 그 사람의 표정이 왜 마음에 걸릴까.
루이가 그 이야기를 꺼낸 것은 스물여덟 번째 세션이었다.
할아버지 칠순 모임이 있었다고 했다. 온 가족이 모인 자리였다. 루이는 잘 해냈다고 했다. 웃고, 대화하고, 사진도 찍었다고. 다 끝나고 주차장으로 내려갔을 때 거기서 차 안에 혼자 앉아 있었다고 했다. 한 이십 분쯤.
"그 이십 분 동안 뭘 했어요?"
"그냥 있었어요. 아무것도 안 하고."
"어떤 기분이었어요?"
"...처음엔 피곤했어요. 근데 그 다음에 슬펐어요."
"뭐가 슬펐어요?"
"모르겠어요. 그냥 슬펐어요. 이유 없이."
이유 없이 슬펐다는 말.
나는 그것을 받아 적으면서 잠깐 멈추었다. 이유 없이 슬프다는 것은 사실 이유를 아직 모르는 것이다. 아니면 이유가 너무 많아서 하나를 고를 수 없는 것이다. 주차장 차 안의 이십 분은 루이에게 오랫동안 해온 것들이 한꺼번에 느껴지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가족 모임에서 잘 해냈다는 것의 피로. 잘 해내야 했다는 것의 오래됨. 잘 해내는 것이 자신인지 아닌지를 모르겠다는 것의 막막함.
"울었어요?"
"...조금요."
"혼자 차 안에서."
"네."
"오래 기다린 눈물이었을 것 같아요."
"...그런 것 같아요."
오래 기다린 눈물. 루이는 그 말을 받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울지는 않았다. 그냥 고개를 숙이고, 무릎 위의 손을 내려다봤다. 오래. 나는 그것을 기다렸다. 이 시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주차장 차 안에서 혼자 울었던 것을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은 그것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숨겨둔 것을 꺼내는 것이다. 루이가 그것을 오늘 꺼낸 것이었다.
그날 세션이 끝나고 루이가 일어서면서 말했다.
"피 흘려도 살아가야지 싶어요. 어쩌겠어요, 제 인생인데."
나는 그 말을 받아 적으면서 손이 멈추었다. 그것이 루이가 처음으로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 것이라고 부른 말이었다. 피 흘려도 살아가야지. 그 말 안에 얼마나 많은 것이 들어 있는지를 나는 안다. 포기가 아니다. 받아들임이다.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걷겠다는 것. 그것이 루이가 그 주차장에서 이십 분 동안 앉아 있다가 얻은 것이었다.
시동을 걸기 전의 차 안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시간이다. 방금 있었던 곳과 곧 가야 할 곳 사이의 잠깐.
루이는 그 잠깐 안에서 오래 울지 못했던 것을 울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기록: 스물여덟 번째 세션
피 흘려도 살아가야지, 내 인생인데. 루이가 그 말을 할 때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다. 단단한 것이 아니었다. 단단해지려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알고 있는 것을 말하는 목소리였다. 오래 알아왔는데 처음으로 말로 꺼낸 것의 목소리. 그것이 가장 조용하고, 가장 깊은 종류의 결심이다.
참고 문헌 · 13
¹⁵ Frankl, V. E. (1946). Man's search for meaning. Beacon Press.
프랭클은 고통 자체보다 고통의 의미를 찾지 못할 때 인간이 더 힘들어진다고 보았다. 이유 없이 슬프다는 루이의 말은 슬픔의 이유를 찾을 언어가 아직 없다는 것이다. 치료는 그 언어를 함께 찾아가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