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없이 달라지는 것들
봄이 오는 것을 사람들은 꽃으로 안다. 화려하게, 한꺼번에, 누구나 알아볼 수 있게. 그런데 꽃이 피기 전에 뿌리가 먼저 움직인다. 땅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그 움직임이 없으면 꽃은 피지 않는다. 루이의 변화가 그랬다.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았다. 일상으로 돌아가면 여전히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뿌리가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알았다. 매주 만나면서.
서른세 번째 세션. 루이가 이번엔 작은 상자를 들고 왔다. 종이 상자였다. 안에 뭔가 있었다. 나는 묻지 않았다. 루이가 앉으면서 상자를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직접 만들었어요."
"이게요?"
"지난번에 여기서 만든 것 있잖아요. 제 방식대로 했어요. 집에서."
상자 안에는 작은 쿠키들이 있었다. 역시 모양이 제각각이었다. 두께도 달랐다. 그런데 지난번 것보다 조금 더 고른 것 같았다. 연습한 것이 보였다. 나는 하나를 집어 먹었다. 맛있었다. 그리고 루이를 봤다.
"루이씨, 이거 혼자 여러 번 해봤어요?"
"...세 번이요."
"왜요?"
"잘 되는 게 좋아서요. 처음엔 너무 달았고, 두 번째엔 너무 퍼졌고. 이번엔 좀 나은 것 같아서."
세 번. 잘 되는 게 좋아서. 나는 그 말을 받아 적으면서 이것이 루이가 처음으로 자신을 위해 반복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 해내야 해서가 아니라. 그냥 잘 되는 게 좋아서. 자신이 좋아서 반복한 것. 그것이 오래 없었다. 루이에게.
루이가 말했다.
"만드는 동안 생각이 없어져요. 좋은 의미로요. 그냥 손만 움직이는 느낌."
"그게 루이씨한테 필요한 시간이에요."
"...생각이 없어지는 게요?"
"생각 없이 있어도 되는 시간이요. 루이씨는 오래 생각을 멈춘 적이 없었잖아요."
"...그러네요. 항상 뭔가 생각하고 있었어요."
항상 뭔가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이 루이의 피로였다. 오래 생각해온 것들이 지쳐서 무거워진 것. 생각을 멈추는 것이 허락된 적 없었던 사람. 다락방 안에서도 생각해야 했다. 언제 나가면 되는지, 밖의 소리가 잦아들었는지, 들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긴장이 어른이 되어서도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반죽을 하는 동안만큼은 손이 생각을 대신했다. 그 시간이 루이에게 처음으로 생긴 쉬는 시간이었다.
세션이 끝날 때 루이가 말했다.
"묵묵히 나아갈 거예요. 그냥 한 걸음씩."
묵묵히 나아간다는 말. 소란 없이. 조용히. 루이가 가장 잘 아는 방식으로 그런데 이번엔 자신을 위해서. 다락방 안에서 소리를 내지 않던 것이 두려움의 언어였다면 지금의 묵묵함은 선택의 언어였다. 그 두 가지가 같은 행동처럼 보이지만 안이 다르다. 그 안이 달라진 것이 루이의 변화였다.
봄은 꽃으로 오는 것이 아니다.
뿌리가 먼저 움직인다.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루이가 그렇게 달라지고 있었다.
겉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안에서 뿌리가 움직이고 있었다.
기록: 서른세 번째 세션
루이가 쿠키를 세 번 만들었다고 할 때, 나는 그 세 번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생각했다. 처음엔 너무 달았고, 두 번째엔 퍼졌고, 세 번째에 나은 것 같아서. 그 과정에서 루이는 실패를 버리지 않았다. 다음 번을 위한 정보로 썼다. 오래전부터 실패를 조용히 숨겨온 루이가 세 번의 실패를 통해 무언가를 만든 것이었다. 그 쿠키가 그냥 쿠키가 아니었다.
참고 문헌 · 15
¹⁷ Csikszentmihalyi, M. (1990). Flow: The psychology of optimal experience. Harper.
칙센트미하이는 몰입(flow) 상태는 완전히 집중하여 자의식이 사라지는 순간, 인간에게 깊은 만족감을 준다고 보았다. 루이가 반죽을 하면서 생각이 없어진다고 말한 것은 처음으로 몰입을 경험한 것이다. 이것은 치료적으로도 중요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