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미국인이 상처를 기억하는 방법

월스트리트, 911 메모리얼 파크, 세계무역센터

by 이정우 LJW

다시 도착한 배터리파크의 바로 옆 브로드웨이를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월스트리트의 상징인 '돌진하는 황소'가 있다. 사실 처음에는 이 위치에 있는 것을 모르고 갔는데 전혀 사람이 줄 서있을 것 같이 않은 곳에 줄을 서있길래 가보니 사진으로만 본 그 황소가 있는 것이었다. 황소의 고환을 만지면 부자가 된다는 속설 때문인지 모든 사람들이 다 황소의 엉덩이 쪽으로 줄을 서서 고환을 만지며 사진을 찍고 있었고 그 부분만 반질반질했다. 사진을 찍을까? 고민했지만 혼자 사진 찍기가 좀 멋쩍어서 멀리서 동상 사진만 찍고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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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진하는 황소. 특정부위만 반질반질하다.

뉴욕의 금융시설이 총집합해 있는 곳답게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 높은 건물이었다. 그럼에도 그렇게 답답하지 않았고 '정말 내가 뉴욕에 왔구나'라는 여행 첫날 뉴욕 거리를 걸었던 그 느낌이 스멀스멀 다시 생겨날 정도로 뉴욕다운 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풍스러운 옛 건물과 사이사이 현대적인 건물이 가끔씩 섞여있었는데 전혀 이질 감 없이 한데 어우러졌다. 관광객, 직장인, 거리의 청소부, 소방차와 소방차의 길을 터주는 안내원 등 정말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건물과 건물의 그 좁은 거리에 한데 모여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뉴욕이라는 도시는 여행 내내 그런 곳이었다.

IMG_7955.JPG 브로드웨이 거리풍경
IMG_7958.JPG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틀면 월스트리트다.

월스트리트는 브로드웨이를 따라 북쪽으로 10분 정도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거리었다. '1-21 Wall St.' 표지판이 이곳이 월스트리트라는 사실을 알려줬고 나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표지판을 따라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브로드웨이와는 다르게 동서로 뻗어있는 월스트리트를 따라가다 보면 뉴욕의 각종 금융시설을 만날 수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뉴욕 증권거래소이다. 세계 최대규모, 1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곳답게 정말 크고 웅장했다. 또 그리스 신전같이 큰 기둥이 지붕을 받치고 있는 구조였는데 건물을 지을 당시 미국의 민주주의를 상징하기 위해 주로 그리스 복고양식을 채택한 결과라고 한다. 이 구조는 바로 옆 'Federal Hall National Memorial'에서도 볼 수 있었다.

IMG_7962.JPG 뉴욕증권거래소와 쉑쉑버거 푸드트럭

월스트리트에서 북서쪽으로 더 올라가니 911 테러로 무너진 세계무역센터 자리에 만든 911 메모리얼 풀이 있었다. 무너진 두 개의 세계무역센터 자리에 만들어진 911 메모리얼 풀 주변으로 희생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고 그 너머에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물줄기가 뚫어진 중앙의 구멍으로 폭포처럼 쏟아져 들어갔다. 벌써 그 사건이 일어난 지 20년이 흘렀고 내가 초등학생이었던 시절이었지만 그때 뉴스기사로 하루 종일 보여주던 영상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서있는 이 자리가 상상할 수도 없던 그 사건의 한가운데라는 생각이 드니 더욱더 내 시선은 물이 쉼 없이 떨어지는 폭포의 빈 공간에 머물러졌다. 그 당시 이역만리 떨어져 살던 나도 이렇게 마음이 무거워지는데 그 당시 사람들은 어땠을지. 그리고 그 사건을 온몸으로 겪어야 했던 미국인의 마음은 어땠을지. 국가적인 재난은 국민 전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는 사실을 세월호 사건으로 치열하게 겪지 않았던가. 메모리얼 풀의 디자인과 이야기가 만들어낸 이 감정 때문인지 뉴욕에서 가장 인상 깊은 건축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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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계무역센터의 지하 쇼핑몰(왼쪽, 가운데)과 911 메모리얼 파크에 있는 메모리얼 풀 (오른쪽)

점심은 새로 생긴 세계무역센터의 지하 쇼핑몰과 연결되어 있는 지하철역을 통해 한인타운에서 먹을 예정이다. 뾰족한 천장이 아래로 갈수록 비스듬히 내려와 넓어지는 모양이었고 아래에는 기둥 없이 뻥 뚫려있는 광장이었다. 광장 한가운데 놓인 피아노로 한 사람이 연주를 하고 있었는데 잠깐 연주해 볼까 생각했지만 이내 마음을 접고 지하철을 타러 갔다.



#정리

1. 돌진하는 황소, 뉴욕증권거래소를 포함한 월스트리트의 여러 건물과 상징물을 구경했다.

2. 911 메모리얼 풀은 내가 본 뉴욕에서 본 가장 좋은 상징물이었다.


#미국 여행 꿀팁 9

1. 돌진하는 황소에서 쉽게 사진을 찍으려면 오전 8시 정도는 가야 한다. 낮에는 사람이 많아 사진 찍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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