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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샤인 Apr 11. 2021

체리엔딩

제 5 장 해군교회

“초코파이 준단다, 같이 가자.”

완재가 말했다. 

“초코파이를?”

진이는 저절로 입맛이 다셔졌다.

“오덴데?”

“해군교회.”

“언제?”

“일요일 아침에.”

“음.. 옴마한테 물어보고.”


엄마는 ‘교회?’하더니 ‘니가 일요일 그 시간에 일어난다고?’ 묻는다. 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니 맘대로 하그라.’ 엄마가 말했다. 처음 나간 교회는 낯설었다. 주일학교 초등부 예배실엔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해요’라는 글씨가 벽에 알록달록한 색종이로 붙어있었고 이부가리를 한 군종병 전도사님(신학교를 다니다가 군대에 온 군종병이라는 사람이었다)은 단 위에서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전도사님 양 옆으로는 이쁘장한 이십대 여자 선생님 둘이 노래에 맞추어 율동을 하고 있었는데 그 환한 표정이며 팔랑팔랑 흔드는 손짓이며 뱅글뱅글 돌리는 허리춤이며는 진이가 난생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주일학교 아이들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천진난만하게 선생님의 율동을 따라하고 있었는데 진이 눈에는 아무 생각이 없는 무뇌아들 같아 보였다. 진이는 '저걸 나보고도 따라하라고 하면 초코파이고 뭐고 당장 뛰어나간다' 생각했다. 다른 선생님이 나타나 진이와 완재를 안내했고 둘은 제일 뒷줄 긴 나무의자에 엉거주춤 앉았다.

“초코파이는?”

진이가 목소리를 낮추어 완재에게 물었다.

“끝나고 준단다.”

'그럼 그렇지. 세상에 공짜가 있겠나.' 진이가 생각했다.

노래가 끝나자 전도사님이 마이크를 잡았다. 

“여러부운~ 오늘은 차암 기쁜 주일이에요~ 그렇지요오?”

아이들은 목청이 터져라 “네에에에”를 외쳤다.

“이렇게 기쁜 주일날에 더 기쁜 소식이 있어요. 뭘까요? 네에, 맞아요. 오늘 우리 교회에 처음 나온 귀한 친구들이 있답니다~”

“와아~”

아이들은 마치 집단 최면에 걸린 것처럼 박수를 치며 소리를 질렀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지요? 그 친구들을 따듯하게 환영해줘야겠지요오?”

“네에~”

“그럼 오늘 처음 나온 친구들은 앞으로 잠깐 나와줄래요~?”

아이들은 일제히 뒤를 돌아보았다. 하필이면 그 주일의 새신자는 진이와 완재 단 둘이었다. 둘은 쭈뼛거리며 일어나 앞으로 나갔다. 나가는 길이 도살장 끌려가는 길처럼 멀게 느껴졌다. 흥겨운 반주가 시작되고 환영의 노래가 울려퍼졌다. 아이들은 박수를 치며 목청이 터져라 노래를 불렀다. 아이들은 노래를 가수처럼 잘도 했다. 매주 이 노래를 부르는 모양이었다. 단상 앞에 선 진이와 완재는 부끄러워서 바닥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그 와중에 긴장이 조금 풀린 진이는 제일 앞줄을 흘끗 쳐다보았다. 그런데.. 거기 그 아이가 앉아있었다. 초롱초롱한 두 눈을 반짝거리며. 그 아이는 진이와 완재를 바라보며 환영의 노래를 불러주고 있었다. 진이는 초코파이를 못 얻어먹더라도 이 교회를 계속 계속 계속 다니리라 마음 먹었다. 


모두가 함께 드리는 예배가 끝나자 분반 공부라는 것이 시작되었다. 초코파이는 분반 공부 시간에 선생님이 나누어주셨다. 야쿠르트도 하나씩 주셨다. 분반 공부 시간에 진이는 선생님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진이는 흘끔흘끔 그 아이만 훔쳐보았다. 만약 이 땅에 천사가 있다면 분명히 저런 모습일 거였다.      

“아버지는 뭐 하세요?”

선생님이 물었다.

완재는 “해군 상사신대요.”라고 대답했다.

“진이는?”

“..상이용사세요.”

진이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응? 무슨 용사?”

선생님이 되물었다.

“몸이 아프세요. 상이용사요..”

순간 선생님의 당황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아.. 그래요오. 그, 그래도 다음주에 꼭 또 와요오~”

이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 해군교회는 해군사관학교를 나온 영관급 장교들과 그 자녀들이 주로 다니는 교회였다. 신흥동이라는 곳에 해군교회가 하나 더 있었는데 거기엔 하사관들과 그 가족장들이 다니는 교회였다. 그러니까 이 해군교회는 말하자면 해군 귀족들의 교회였던 것이고 진이 같은 민간인의 자녀들은 거의 오지 않는 곳이었다. 

“어.. 어.. 그래도 저는 외할아버지가 해군 제독이셨습니다!”

직감으로 뭔가를 느낀 진이는 자신도 모르게 비명 같은 소리를 질렀다.

“오오, 그래요?!”

선생님은 반색을 했고 진이는 선생님의 긍정적 반응에 그제야 안심했다. 진이가 왜 외할아버지를 꺼냈는지는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아마 진이를 계속 쳐다보고 있던 그 아이, 9국에 4025에게 ‘나는 여기 계속 나올 자격이 있어, 우리 아버진 비록 하사관 출신 상이군인이지만 우리 외할아버지는 니네 아빠보다 높은 계급이었으니까 나는 이 교회에 다닐 자격이 충분히 있는 사람이야.’를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다음주 일요일 아침, 진이는 완재를 데리러 완재집 문앞에 섰다. 대문으로 고개만 빼꼼 내민 완재는 교회를 가지 않겠다고 했다. 엄마가 불같이 화를 낸다고 했다. 배신이었다. 나를 데려가놓고 자기만 쏙 빠지다니. 하지만, 진이는 교회를 가야할 정확한 목표가 생겼다. 진이는 혼자 교회를 향하여 뛰어가기 시작했다. 뛰어가는 내내 반짝이는 그 아이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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