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장 광혜원
두 달이 지났다.
엄마 아빠 연애시절의 비둘기였던 막내 이모가 엄마를 간호하기 위해서 서울로 갔고 들려온 소식으로는 엄마가 세브란스라는 좋은 병원에서 큰 수술을 받았고 다행히 의식을 회복했다 했다.
“종구 니가 아아들 데꼬 함 갔다온나. 옴마 보고 싶으낀데.”
할아버지가 셋째 외삼촌에게 말씀하셨다. 명령은 즉시 효과를 발휘하여 종구 삼촌과 형도, 진이는 서울로 향하는 기차를 타게 되었다. 기차는 열두시간 걸리는 밤열차였다. 마산역에서 일곱시에 출발한 서울행 일반 열차는 다음날 아침 일곱시에 서울역에 도착했다. 형도는 열차에서 외할머니가 싸주신 삶은 계란을 배가 터질 만큼 먹고 잠이 들었고 종구가 깨울 때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진이는 엄마를 보러 간다는 설렘에 윗눈꺼풀이 아랫눈꺼풀을 덮을 때까지 고개를 흔들며 잠을 쫓았다. 밤을 달리는 열차 주변은 내내 새까맸지만 처음 맡는 철도목의 지린 기름 냄새는 이상하게 좋았다.
서울역에서 나오자 맨 처음 눈에 들어온 삼일빌딩은 충격 그 자체였다. '우아~, 세상에 저렇게 높은 빌딩이 있다니!' 진이는 세브란스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으리으리한 서울의 빌딩들을 보고 감탄사를 연발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택시는 서소문을 지나 금화터널을 지나 이대 후문을 지나 세브란스 병원에 도착했다.
엄마는 광혜원 건물 병실에 입원해 있었다. 본인도 서울이 초행이었던 종구 삼촌은 연신 메모지를 보면서 두리번거렸다. ‘택시 내리서.. 본관 건물 옆에 광혜원 3층.. 아아씨, 요오는 지끔 오데고?’ 삼촌은 촌놈 소리 듣기 싫어서 혼자서 길찾기를 시도했지만 결국 거대한 병원 건물 안에서 길을 잃었다. 종구는 죄도 없는 메모 탓을 하며 중얼거리다가 결국 지나가는 간호원에게 병실 위치를 물었다. 종구 삼촌과 형도, 진이 엄청나게 높은 계단, 무지하게 긴 복도를 지나 엄마가 있는 병실에 도착한 것은 아침 아홉시가 넘어서였다.
엄마는 양 무릎에 철심을 박고 병상에 누워있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아직 혼자 힘으로는 병상에서 내려올 수도 없었다. 이모는 지난 두 달 동안 병상에 누워 있던 엄마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물수건으로 옴 몸을 매일 닦아주었다 했다. 의식을 회복한 엄마가 처음 막내 이모에게 한 말은 ‘우리 아아들은?’ 이었다 했다. 엄마는 ‘옴마~’하면서 뛰어들어오는 형도와 진이를 보자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진이를 품에 안고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놓아주지 않았다. 의사는 엄마의 양쪽 무릎이 너무 심하게 부수어져서 기부스를 풀더라도 걸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했다. 부부가 모두 휠체어를 타야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사고를 낸 사람은 사업가였는데 술을 잔뜩 마시고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엄마를 쳤다 했다. 그런데, 충돌 순간 쿵,하고 공중으로 날아간 엄마를 보지 못하고 계속 돌진하다가 다시 바닥으로 떨어진 엄마를 또 치었고 엄마는 치맛자락이 차바퀴에 말려 들어간 채 100미터 가량을 또 끌려갔다했다. 천만다행으로 머리를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온 몸의 뼈가 성한 곳이 없을 만큼 부스러졌고 골반과 양무릎의 뼈들은 수십 개로 조각났다 했다. 엄마가 죽으면 감옥에 갈 신세가 된 사업가는 있는 돈 없는 돈을 죄다 털어 엄마를 서울 세브란스로 보냈다 했다. 장례식장 이름을 닮은 평안의원 원장이 세브란스 출신이라서 그렇게 했다고 했다.
“아아들 데리고 창경원이나 갔다온나. 진이 전철도 태아주고 원숭이도 구경시키주고.”
일본 제국주의는 서울의 5대 도성인 창경궁에 온갖 동물을 집어넣고 창경원이라는 이름의 동물원을 만들었었다. 1983년 서울대공원이 생겨 동물들을 옮길 때까지 사람들은 그곳을 조선왕조의 궁성이라기 보다 서울에 유명한 동물원으로 알았다 했다. 엄마는 기왕 서울에 올라온 자식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세상 구경을 시켜주고 싶어서 종구에게 창경원에 다녀오라고 했던 것이다. 종구는 엄마의 말에 ‘알았다. 델꼬 갔다 오께.’하면서도 내심 불안한 눈치였다. 외할머니가 넣어준 여비가 팍팍해 얼마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창경원의 원숭이는 흉악하고 흉폭했다. 철조망에 사납게 덤벼들어 사람들이 주는 먹이를 잡아채 갔고 TV 드라마 <타잔>에서 보던 친밀하고 귀여운 ‘치타’와는 전혀 다르게 사람들을 위협하며 악다귀에 가까운 소리를 질러댔다. (나중에 알고 보니 타잔의 ‘치타’는 원숭이가 아니라 침팬지였다.) 비좁은 우리에 수십 마리의 원숭이를 과포화 상태로 넣어놓았으니 드넓은 밀림을 날아다니던 원숭이들의 성격이 흉폭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진이는 원숭이의 손이라도 한번 잡아볼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섭섭해진 진이는 원숭이 우리에서 돌아나오다가 대공원의 잔디밭 앞에서 넋을 잃었다. 하늘에 플라스틱으로 만든 새가 날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잔디밭에 다섯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 하나가 실에 묶인 플라스틱 새를 날리며 뛰어다니고 있었는데 눈부신 햇살에 날개를 반짝거리며 팔랑팔랑 나는 모습이 진이의 넋을 빼놓았다.
“삼초온, 내 저거 사도.”
먼저 말을 꺼낸 것은 형도였다. 형도 또한 플라스틱 새에 마음을 뺏긴 것이었다. 매사 눈치를 보면서 살아온 둘째보다 언제나 원하는 무언가를 요구할 권리를 가진 장자의 습관, 바로 그것이었다. 종구는 “응? 머?”하며 형도를 돌아보았지만 단칼에 '안 돼.'하고 대답했다. 하지만, 형도는 한시간도 넘게 땡깡을 부리며 외삼촌을 졸랐다. 종구는 형도의 고집을 못 이겨 플라스틱 새 장수에게 가격을 물어보았다.
“머라고예에? 천원예에?”
종구는 플라스틱 새의 가격에 기절을 할 지경이었다. 전철도 80원에 타고 왔는데.. 좀 전에 짜장면도 이백원에 먹었고.. 아부지 막걸리는 한 주전자에 오십원인데.. 주머니에 남은 여비를 계산하던 종구는 형도의 요구를 도저히 들어줄 수가 없다 결론을 내렸다.
“안 된다. 고마 가자.”
형도는 종구의 거절에 배수의 진을 쳤다. 바닥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한 것이다. 종구는 형도의 팔을 잡고 강제로 여러 차례 들었다 놨다를 해보았지만 형도는 드러누울 기세로 강하게 저항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구경이라도 난 듯 흘끔거렸고 촌에서 올라온 종구는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이 섀끼를 고마, 주우 패뿔라!”
종구는 으름장을 놓았지만 형도는 아예 바닥에 드러누웠다. 힘이 셀 뿐만 아니라 힘만큼 고집도 센 형도였다. 진이는 형도의 난동을 모르는 사람처럼 숨죽이고 지켜보았다. 창경원에 놀러온 전국 각지의 사람들은 점점 더많이 모여들어 경상도 사투리를 심하게 쓰는 두 사람의 전쟁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진해에서도 이런 상황을 이미 여러번 경험했었던 종구는 사태의 결말이 뻔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종구는 주머니를 뒤져서 병원에서 나오기 전 큰 누나가 주었던 꼬개꼬개 접힌 천원짜리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라모 내느은? 내꺼느은?”
플라스틱 새를 손에 넣은 형도가 만족스럽게 플라스틱 새를 날리며 뛰어가는데 종구의 뒷통수에 또 다른 공격이 날아들었다. 이번엔 진이였다. 진이는 삼촌이 새 두 마리를 사서 자기도 한 마리 줄줄 알았다.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던 진이는 자신의 손에 아무 것도 돌아오지 않자 그제서야 불만을 터뜨렸다.
“행님 하고 나모 니도 해라.”
“싫다.”
“삼촌 말 들어라이!”
“싫다아, 내도 사도! 내도 새 사달라고오! 와 언니만 새 사주고 내는 안 사주는데에!”
종구는 형도를 불렀다. ‘빨리 와서 진이도 새 한번 날리게 해주라’고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종구가 소리를 지를수록 형도는 멀리 더멀리 뛰어가버렸다. 진이가 슬프게 울기 시작했다. 진이의 울음이 흑흑 엉엉 수준을 넘어 꺼이꺼이 통곡으로 변했다.
“우아~ 느그 진짜 내한테 와 그라는데에? 내보고 우짜라고오!”
전국 각지의 사람들은 다시 모여서 경상도 촌놈들의 두번째 라운드를 흥미진진하게 구경했다.
곤히 잠든 진이를 업고 병실로 들어온 종구는 땀투성이였다. 플라스틱 새를 원도 없이 날린 형도는 땀범벅에 바지는 흙투성이였다.
“하이고 땀냄새야~ 느그 오데서 머하고 왔는데 이 모양이고?”
아이들이 돌아오기를 목 빠지게 기다리던 엄마는 종구의 창경원 대전투에 대해 알 리가 없었다.
"누나, 내 오늘 니 새끼들 때메 창경원에서 죽을 뻔했다!!!"
전모를 들은 막내 이모는 깔깔대다가 보조 침대에서 떨어져 바닥에 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