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옴마의 여행
“옴마~ 옴마~”
아침에 일어난 진이는 엄마를 불렀다. 그런데, 집안에는 형도도, 아빠도, 엄마도, 아무도 없었다.
“옴마~ 옴마~~”
진이는 다다미 방과 복도 문을 열고 마당을 향해 소리쳤다. 본채에서 막내 이모가 놀란 얼굴을 하고 뛰어왔다.
“진아, 일어났나?”
“응 이모야, 옴마느은?”
“옴마? 아 옴마가 지끔 여,여행을 갔다.”
“여행?”
“으응, 여행.”
“오데로 갔는데에?”
“쪼,쫌 멀리.”
“언제 오는데에?”
“..아마 한 3개월 걸릴 걸?”
“그렇게 오래에?”
“응, 옴마가 일이 쫌 생기가지고..”
“언니느은?”
진이는 형인 형도를 언니라고 불렀다. 이모들이 엄마를 언니라 불러서 따라부른 것이 입에 붙어 버렸다.
“언니? 느그 언니는 학교에 먼저 갔다.”
“아빠느은?”
“아빠? 느그 아빠..도 일이 있어서 나가싰다..”
“그래? 이상하네..”
“니 학교 가야지. 빨리 씻어라. 밥 묵자.”
이모는 황급히 본채로 다시 뛰어갔고 진이는 혼자 욕실 바닥에 앉아 세수대야에 물을 뜨고 세수를 어푸어푸했다.
“씨이, 옴마는 내한테 말도 안 하고 오데로 가뿟노..”
진이는 여느 날처럼 좁은 골목을 지나 횡단보도를 건넜다. 학교 가는 길에 있는 해군 관사 아파트 앞을 지나가면서 계속 4025의 집을 바라보았다. 관사 정문에서 그 아이가 나올까 기대하면서 살짝 걸음을 멈추었지만 4025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시 학교를 향해 걷기 시작하는데 누군가가 뒤에서 진이의 가방을 툭 쳤다.
“야, 니 형도 동생 아이가!”
“..응.”
형도의 친구였다.
“느그 옴마 죽었다메?”
“..머?”
“니 모르나? 느그 옴마 차에 치이가꼬 죽었다든데?”
진이는 뒤돌아서 뛰기 시작했다. 무슨 상황이 벌어졌는지 머리 속에서 단번에 정리가 되었다. 비록 국민학교 2학년이었지만 눈치 하나는 지구 최강이라며 외할머니는 진이를 ‘메구’라고 불렀다. 여우가 100년을 살면 ‘야시’가 되고 ‘야시’가 천년을 더 살면 ‘메구’가 된다며 눈치빠른 진이에게 외할머니가 붙여준 별명이었다.
“이모오오오! 할머니이이이!”
진이는 우당탕탕 등에 매었던 가방을 벗어 별채 복도에 집어던지고 본채 다다미방 유리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이모는 전화기 앞에 혼자 앉아서 눈이 퉁퉁 붓도록 울고 있었다. 병원에서 올 연락을 맡은 모양이었다.
“진아.. 니 와 왔노..?”
“이모, 옴마 죽었나아?”
진이가 씩씩거리며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누가 그라대?”
“빙시 가튼 기.. 내한테 오드마.. 우리 옴마 죽었다카드라.”
“진아..”
이모는 울음을 왈칵 터뜨리며 진이를 안았다.
“진이야 이모 말 잘 들어라이. 옴마가 교통사고가 났는데.. 마이 다칬다.”
“그래서, 옴마 죽었나아?”
“그거는.. 이모도 아직 모른다.”
이모와 진이가 부등켜 안고 한참을 울고 있는데 따르릉, 전화가 울렸다. 이모는 눈물을 훔치고 전화를 받았다.
“응 옴마. 응, 응, 알아써예.”
대답만 하던 이모가 전화를 끊었다. 외할머니가 이모에게 뭔가를 말한 것 같았다.
“가자, 진아. 할무이가 니 데리고 오란다.”
평안의원. 교통사고를 당한 엄마가 입원하고 있는 병원의 이름이었다. 평.안. 마치 이미 죽은 자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것 같은 불길한 이름의 병원으로 진이는 끌려들어갔다. 복도에 들어서자 외할머니가 아이고오~하면서 진이를 안았다. 복도에는 외할아버지와 아버지, 형도까지 모든 가족이 다 나와 진이를 맞았다. 아빠가 휠체어를 밀며 다가와서 진이 손을 잡았다.
“가자, 엄마 보러.”
순간 진이는 불길했다. 죽은 엄마를 보기는 죽기 보다 싫었다.
“내 안 간다. 내 옴마 안 볼끼다아~!”
진이는 엉덩이를 뒤로 빼고 저항했다. 아빠는 진이 손을 억지로 끌었다.
“진아..”
“죽어따메~ 옴마 죽어따메에~”
“아이다, 엄마 안 죽었다.”
“진짜?”
“엄마 살아있다. 그런데 엄마가 지금 정신이 좀 없다. 같이 가서 엄마 보자.”
그제서야 진이는 안심했다. 아빠가 진이를 끙하고 들어올려 휠체어 무릎팍에 앉혔다.
아빠이 휠체어에 앉은 채 진이는 엄마가 있는 병실에 들어갔다.
엄마는 눈에 촛점이 없었고 알 수 없는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옴마~”
엄마는 많이 다쳤는지 온몸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진이가 엄마를 불러도 진이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했다.
“옴마~ 정신 차리바라~ 옴마~”
“엠뷸란스 도착했심니더. 지끔 바로 이송해야됩니더.”
의사인 듯 하얀 색 가운 입은 사람이 병실로 뛰어들어와서 말했다. 엠뷸런스 기사인 듯한 사람이 들것을 가져와서 의사와 함께 엄마를 옮겼다.
엄마는 엠뷸런스와 함께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