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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샤인 Apr 11. 2021

체리엔딩

제 4 장 허스토리

진이의 엄마는 대한민국 해군 대령 김근수의 큰 딸이다. 

19세기말 경상남도 의창 지역에 살았던 김해 김씨들은 일본 쿄토로 건너가 자리를 잡았다. 그들은 부둣가에서 막노동을 하며 근근히 먹고 살았지만 자식만큼은 악착같이 길러냈고 그 자식중 한 사람이 진이의 외할아버지 김근수였다. 일본의 강점기였던 1939년, 김근수는 조선인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한 실력으로 일본 해군의 장교가 되었다. 김근수는 교토에 함께 살고 있던 은진 송씨 집안의 어여쁜 딸을 아내로 맞아들여 가정을 꾸렸고 아들과 딸을 낳았다. 1945년, 조선이 해방되자 이북은 소련을 등에 업은 김일성이, 이남은 미국을 등에 업은 이승만이 정권을 잡았다. 이북은 친일파들을 철저하게 처단했지만 이남은 친일했던 자들이 고스란히 살아남아 미국으로부터 권력을 물려받았다. 이남에는 친일 정부가 들어섰고 대한민국 국군은 일본이 아니라 이북과 싸우기 위해 창립되었다. 이승만 정권은 친일 경찰들을 중심으로 어찌어찌 육군을 꾸렸지만 근대식 공군이나 해군을 창설할 인력은 전무했다. 당시 해군은 미국으로부터 구축함 하나를 선물 받았었는데 대한민국에 그 군함을 운항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언론은 미국이 준 선물이라고 보도했지만 실상 그 군함은 1차 세계 대전 때 건조되어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미국이 우리나라에 '버리고' 간 골칫덩어리 고물이었다. 그 때, 일본 해군에 복무하는 조선인들이 몇몇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이승만 정권은 그들을 설득하여 대한민국으로 데리고 왔다.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일본 해군 장교 김근수였다. 이렇게 하여 1950년 벚꽃이 한창이던 4월 어느 날, 일곱살 기미꼬는 아버지 김근수와 어머니 송남이의 손을 잡고 경상남도 진해의 부둣가에 내려서게 된 것이었다.     


진해는 천혜의 해군 요새였다. 조선을 삼킨 일본은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육상 공격이 힘들고 움푹 파인 만 지형으로 함선의 은폐가 용이한 진해를 군항으로 낙점했다. 일제가 제일 먼저 한 짓은 시내에서 가장 높은 제황산에 신사를 세우고 진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산 꼭대기에 군함 모양의 거대한 탑을 쌓았다. 일제는 진해에 군용 부두를 건설했고 부두 옆 평지에 계획도시를 건설했다. 일제는 기존의 시가지를 싸그리 갈아엎어버리고 땅바닥에 욱일기 지형의 줄을 좍좍 그어 도로로 만들었다. 풍수상 터가 가장 좋다는 시내 중앙에는 일황이 올 때를 대비해 욱일기를 상징하는 원형 광장과 팔거리를 만들었고 정북 방향 길 끝에는 철도를 놓고 역을 세웠다. 군항과 연결성이 좋은 평지에는 일본군과 그 가족들이 거주할 적산가옥을 줄지어 건축했는데 비오는 날에는 가옥들의 처마를 따라 시내까지 비를 맞지 않고 다닐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일제는 또 진해의 가로수를 일본의 국화인 사쿠라(왕벚나무)로 조성했다. 사쿠라는 새로 난 길을 따라 촘촘하게 심어져 마치 군대가 도열한 것처럼 도로를 따라 정렬해 있었다. 그전까지 진해의 거리에서 드문드문 자생하던 수양벚나무와 산벚나무들은 적들이 심은 사쿠라에 포위되었다. 사쿠라는 그렇게 진해의 꽃이 되었고 적들의 땅 진해는 그렇게 원치 않는 벚꽃동산이 되어버렸다.     


기미꼬에서 귀자(貴子)가 된 진이 엄마는 적들이 심어놓은 사쿠라 도로를 따라 적들이 세웠던 국민학교에 다녔다. 찬란한 흰분홍빛으로 잠시 잠깐 피었다가 금새 꽃비가 되어 온 땅을 하얗게 물들이는 벚꽃길을 밟으며 하나 밖에 없었던 여중과 여고를 다녔다. 귀자의 엄마는 살림밑천이었던 큰 딸의 학업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고 귀자도 학업은 남의 일인양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귀자의 엄마는 진해에서 아이 다섯을 더 낳았고 귀자는 차례로 동생들을 등에 업었다. 귀자는 줄줄이 태어나는 동생들의 기저귀를 빨아야했고 남동생 셋과 여동생 둘의 입에 쉼없이 밥을 넣어줘야했다. 석유 곤로가 나오기 전까지는 부뚜막에 장작불을 피워야했는데 그또한 귀자의 몫이었다. 집안 텃밭에는 똥거름을 줘야했고 대식구가 쏟아내는 빨래와 아버지의 군복 다림질까지 모두 귀자가 해야하는 일이었다. 반면 집안일이라고는 아무 것도 할 필요없이 오직 공부만하면 되었던 귀자의 오빠는 비록 서울대는 떨어졌지만 한양 공대에 후기로 합격해 서울로 유학을 떠났다. 스무살이 되던 해, 귀자도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았지만 아무도 졸업을 축하해주지는 않았다. 그렇게 힘들고 지루하고 심심했던 스무살 기미코의 한 여름에 키가 훤칠하고 눈이 부리부리한 해군 하사관 하나가 불쑥 나타났다.     


그곳은 수치, 해수욕장이었다. 물을 다스린다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었지만 해수욕장의 이름으로서 '수치'는 가고 싶지 않은 이름이었다. 진해는 해군통제부, 해군사관학교, 해군기계창, 해군대학, 해군체력단련장 등 해군 관련 기관들이 해안선 바닷가를 모두 점령하고 있었다. 그래서 진해에 사는 일반인들이 수영할 수 있는 바닷가는 도시의 동쪽 끝에 있는 작은 포구 마을 수치에 있었다. 어느 무더운 여름 날 기미꼬는 여고 동창생들과 함께 수치 해수욕장에서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기미꼬는 선천적으로 물을 좋아했고 따로 배운 적이 없어도 수영을 곧 잘 했었다. 친구들은 가슴팍 깊이에서 어푸어푸 수영을 했지만 기미꼬는 발이 닿지 않는 곳까지 멀리 헤엄쳐 나갔다. 귀자는 배영을 하다가 가만히 손발을 멈추고 바다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귀자를 부르는 친구들의 불안한 외침과 바닷가에서 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점점 멀어져갔고 물이 반쯤 찬 귓가엔 파도에 따라 찰랑거리는 물소리와 자신의 들날숨 소리만 가득 들려왔다. 하늘에서 눈부신 태양이 기미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기미꼬는 세상에 태양과 자신만 남은 것 같다고 느꼈다. 바다 한 가운데서 맛보는 해방감과 자유로움 때문에 기미꼬는 수영을 좋아했었다. 

“허, 이 아가씨 엄청 당돌하네.”

그 때였다. 키가 훤칠하고 눈이 부리부리한 남자가 나타난 것은.  

“쭈부도 안 하고 여기서 머 합니까아?”

눈을 감고 물에 둥둥 떠있던 귀자는 깜짝 놀라 버둥거리다가 물을 꼴깍 마셨다. 잠시 버둥거리고 있으니 남자의 힘센 손이 등 뒤에서 그녀를 잡아 가슴팍 위까지 물 위로 들어올렸다.

“나는.. 그냥 수영하고 있었는데요..”

“에헤이, 위험하게시리.. 어찌 이 먼 데까지 나왔습니까?”

귀자가 고개를 돌려보니 그 사이 조류에 떠내려왔는지 해수욕장이 저 멀리 까마득히 보였다. 

“이 아가씨가 간땡이도 크네. 사람들이 바다 한 가운데 시체 떠있다고 신고를 했어요. 빨리 나갑시다.”

“아, 예.”

“헤엄칠 힘은 있고?”

“예.”

귀자가 개구리 헤엄으로 바닷가를 향하기 시작했고 남자는 자유형으로 물을 가르며 귀자를 에스코트했다. 모래사장에 도착하자 귀자의 친구들이 모여들었다. 친구들은 훤칠하고 잘생긴 남자를 보고 단번에 눈빛이 바뀌었고 감사와 감탄을 연발했다. 

“고마우면 커피나 한잔 사든가.”

정작 귀자는 부끄러워서 한마디 말도 못했다. 그런데, 쾌활한 희자가 덜컥 약속을 잡았다.

“토요일 흑백다방 5시. 어떼예? 친구들 두명더 델꼬 나오이소. 우리도 요래 셋이 갈께예.”

“좋아요, 하하.”

남자는 호쾌하게 웃으며 멀어져갔고 희자와 진자는 귀자의 등짝을 때리며 남자의 몸매며 목소리에 호들갑을 떨어댔다.

      

토요일이 되었다. 귀자는 아버지의 저녁상을 보느라 분주했다. 빨랫줄에서 마른 조기를 걷어와 굽고 집안 텃밭에서 호박잎을 뜯어 뜨거운 물에 데치고 무쇠솥에서 익어가는 밥의 뜸을 들이고 오뎅국 끓일 멸치 다시를 우려냈다. 문득 토요일 약속이 생각 났지만 나갈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해수욕장에 우연히 마주친 사람끼리 지나가면서 한 약속인데 지킬 일이 있으랴, 혹 약속이라고 나갔다가 남자들이 나타나지 않으면 얼마나 망신스러울까 생각하곤 고개를 저었다. 그 때, 희자가 부엌으로 뛰어들어왔다.

“내 니 이랄쭈 알았다. 니 지금 머 하노?”

“와?”

“나갈 준비 안하나?”

“오데를?”

“수치, 그 남자 만나러.”

“머?”

“토요일 흑백다방 5시. 기억 안나나?”

“아아..”

“아아고 지랄이고 빠알리 옷 갈아입고 얼굴에 머 쫌 찍어발라라. 머하노, 여적 준비도 안 하고. 30분삐 안 남았다 아이가!”

희자의 재촉에 귀자는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부엌을 나섰다. 그제서야 희자를 보는데 딴에 한껏 멋을 낸다곤 했지만 꼴이 가관이었다. 까마잡잡한 피부에 허연 파운데이션을 얼굴에만 발라서 목과 얼굴이 둥둥 따로 놀고 있었고 입술엔 새빨간 루즈가 번질번질거리는, 말하자면 촌년의 극치였다. 귀자는 원래 피부가 밀떡 같이 하얘서 파운데이션을 따로 바르지 않아도 바른 것 같았고 타고난 피부결이 고와서 세안 후 로션만 발라도 광채가 난다 했다. 귀자가 옷장을 열었지만 입고 나갈 옷은 마땅히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엄마의 외출복중 하나를 꺼내서 몸에 대어보는데 엄마 옷은 귀자에게 한참 작았다.

“입을 옷이 이래 없었나..”     


5시, 흑백다방. 입구 문위엔 딸랑, 딸랑 매달아놓은 새모양 풍경이 울리고 있었다. 하얀 비단 셔츠에 검정 치마를 단정하게 차려입은 귀자가 문 앞에서 머뭇거리자 희자가 귀자의 팔짱을 끼고 연행하듯 다방으로 끌고 들어갔다. 희자와 귀자가 들어오자 한쪽 편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벌떡 일어났다. 그중 한 사람은 세련된 라이방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는데 귀자를 구해준 바로 그 남자였다. 

“친구 하나가 빵꾸를 내가지고예~. 우리 둘마 왔어예.”

“정말 오셨네요. 이쪽으로 앉으세요.”

바다에서도 느꼈지만 남자의 말투는 이쪽 말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서울말도 아니고 처음 듣는 이상한 억양이었다. 희자와 귀자는 남자들 앞에 앉았다. 남자 셋과 여자 둘. 짝이 맞지는 않았지만 매우 즐거운 시간이었다. 남자들은 해군 하사들이었다. 나이도 귀자측보다 여섯살 다섯살씩 많았다. 그들은 얼마전 6개월간 원양이라는 것을 다녀왔고 지난 주에는 민간지원활동으로 수치해수욕장에서 구조대원을 하고 있었다 했다. 이야기중 남자중 하나가 다른 약속이 있다며 슬며시 자리를 빠져나가 자리는 2대 2가 되었다. 남자들은 주로 원양 갔던 이야기를 했다. 인도며 오키나와며 하와이며 사회과 부도에서나 본 듯한 먼나라 이야기를 눈앞에 보이는 듯 생생하게 쏟아냈다. 이야기는 주로 라이방을 낀 그 남자가 주도했는데 언변이 좋은 그는 두시간이 지나도 세시간이 지나도 이야기를 그칠 줄 몰랐다. 희자는 ‘와, 진짜예? 우아, 정말로 좋았겠다~’ 연신 추임새를 넣으며 이야기에 푹 빠져있었고 수줍음이 많은 귀자는 그의 재밌는 이야기에 속에서 웃음이 터져나와도 손으로 입을 막으며 그의 눈길을 피했다. 

“저기..”

“예, 말씀하세요.”

귀자가 갑작스레 말을 꺼내자 남자는 긴장하며 귀자를 바라보았다.

“해 짔는데요.. 그 썬글라스 인자 벗으모 안될까예..”

“예? 하하 예. 벗을께요, 썬글라스. 하하.”

청산유수였던 남자는 귀자의 말에 처음으로 호흡이 막혔고 희자는 그 모습을 보고 푸하하핫 웃음을 터뜨렸다. 남자의 옆 남자도 귀자와 희자와 남자의 눈치를 보면서 따라 웃기 시작했다. 남자도 이내 하하, 하하하 하면서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흑백다방은 순식간에 세 사람의 커다란 웃음소리로 가득 찼고 사람들은 모두 미친 사람들처럼 웃어대는 테이블을 쳐다보았다. 귀자는 자기가 뭘 잘못했나 싶어서 안절부절 못하며 남자를 보았고 남자 옆 남자를 보았고 희자의 허벅지를 꼬집었다.

“아, 니 진짜 웃낀다~ 세시간 만에 첫마디가 해짔는데요,가? 아하 아하하하하하.”

희자는 ‘아고 배야, 내 배 터지겄다.’며 더더더 큰 소리로 웃어댔고 다방 사람들도 허연 파운데이션에 까만 목덜미, 빨간 입술의 여자를 따라서 영문도 모른 채 흐흐흐, 히히히 웃어대기 시작했다.     

“안녕히 가이소.”

“집이 어딥니까?”

네사람이 다방에서 나오자마자 희자는 그새 친해진 ‘오빠야’와 사라져버렸고 훤칠하고 부리부리한 남자와 귀자만 남겨졌다. 귀자가 작별 인사를 하자 남자가 집을 물었다. 귀자는 다시 꾸벅 고개만 숙이고 돌아서서 걸음을 재촉했다. 남자는 귀자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날이 어두워져서 모셔다 드리려고요.”

“아이라예. 되써예.”

귀자는 더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흑백다방은 귀자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아 금새 귀자의 집 골목이 보이기 시작했다. 귀자가 뒤를 돌아보니 남자는 아직도 따라오고 있다. 귀자가 멈추어 서자 남자가 다가왔다.

“가이소. 저어가 바로 집이라.. 들키모 크일 나예.”

“어디..?”

귀자의 손은 자신도 모르게 골목을 정확하게 가르치고 있었다.

“아..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빨리 가이소.”

귀자가 다시 꾸벅 고개를 숙이고 돌아서려는데,

“또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주 거기서 같은 시간에.”

멈칫했던 귀자는 자신도 모르게 온몸에 후끈 달아오르는 열기에 깜짝 놀라 집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귀자의 엄마는 말도 안하고 밥도 안 먹고 어디를 싸돌아댕기다가 통금이 다 되서 나타났냐고 나무랐고 세째부터 일곱째까지 모든 동생들은 큰 누나의 최초의 일탈에 창호지에 귀를 대고는 쫑긋거리고 있었다.

“친구 만나고 왔다이까.”

“친구 누구?”

“희자하고 진자.”

“요노무 가시나아 다 킀다고 오데서 그짓말이고! 진자는 콩나물 집에서 내가 만났는데! 아부지 와이샤쓰는 또 와 꺼내 입고 나갔노? 그기 올매짜린주나 아나? 그기 쿄토 제일 유명한 집에서 해온긴데, 그기 중국에서 온 비단이라 한 단에,”

“아, 쪼옴!”

순간 귀자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옴마는 내가 걱정이 아이라 와이샤쓰가 걱정이었재? 나는 머 한번 채리입고 나가서 친구도 몬 만나나아? 나는 머 맨날 아아들 밥만 해미기고 청소만 하고 빨래만 해야되나아?” 

사실 딸보다 남편의 도쿄산 와이셔츠가 더 걱정이었던 엄마는 정곡을 찔려 말을 더이상 잇지 못했다. 착하고 말없던 큰 딸이 소리를 지른 것도 몇 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던 것이다.

“시끄럽다아. 다 들어가서 자라아!”

그 때, 안방에서 대령의 근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와 귀자는 헉,하며 숨을 죽였고 방마다 귀를 기울이고 있던 동생들도 모두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때부터 귀자는 토요일마다 같은 시간에 외출을 했다. 토요일마다 흑백다방에서  그와 함께 커피를 마셨고 중앙시장에서 함께 밥을 먹었다. 훤칠하고 부리부리한 남자의 이름은 김원세였다. 그의 고향은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를 섬, 거문도라는 곳이었고 열아홉살부터 서울과 평택과 오산의 미군 부대를 돌다가 스물둘에 해군 하사관으로 입대한 스물여섯 멋진 청년이었다. 그때부터 귀자의 막내동생 일곱살 숙자는 원세와 귀자의 비둘기가 되었고 둘은 숙자라는 비둘기를 통해 연애편지를 주고 받았다. 귀자는 편지에 ‘수치 바다에 둥둥 떠있을 때, 눈부신 태양을 가리며 나타난 당신의 얼굴을 처음 본 순간부터 나의 가슴은 미친 듯 콩닥거렸고, 흑백다방에서 넋을 잃고 당신의 원양 이야기를 들을 때 당신과 함께 멀고먼 나라들을 함께 여행하는 듯한 환상을 보았고, 당신을 만난 첫 날 당신이 나를 쫓아올 때 제발 집까지 따라와서 우리 집이 어딘지 확인하고 가라며 마음 졸였고 다시 만날 약속을 들었을 때는 온 몸에서 불이 날 지경이었다.’라고 썼다.     

“안 된다.”

“..예?”

“전라도는 안 된다.”

“저는 본관이 경북 선산이고 선조들이 삼백년 전에 거문도로 귀양을 가서 지금까지 거기서만 살았...”

“또 있다. 하사관한테는 내 딸 못 준다.”

“..제가 지금 창원대학 법대 야간을 다니면서 법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졸업장 받으면 제대해서..”

“해군사관학교 가라. 해사 붙으모 다시 온나.”

말을 마친 김대령은 벌떡 일어나서 방을 나가버렸다. 무릎을 꿇고 있던 원세와 귀자는 다리가 저려 따라 일어나지도 못하고 자리에 다시 주저앉았다. 원세는 저린 다리를 절뚝거리며 다다미방을 나와서 마루에 걸터앉아 구두끈을 맸다. 귀자의 엄마도 부엌에 앉은 채 원세를 배웅해주지 않았다. 원세는 ‘귀한 따님을 제게 주시면 평생 후회없이 행복하게 해줄 자신이 있다’는 준비된 말의 첫마디도 꺼내지도 못하고 문전박대를 당했다.     


귀자는 짐을 싸서 도망을 쳤다. 원세가 살던 자취방으로 뛰어갔다. 원세는 귀자를 집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무지 애를 썼다. ‘내가 해군사관학교 시험을 쳐서 꼭 붙을테니 붙고 나서 다시 아버님을 찾아가자’ 간곡히 설득했다. 하지만, 속 깊은 아이들의 어려운 한번 결심이 항상 그렇듯 귀자의 결정은 돌이킬 수 없이 단호하고 명확했다. ‘당신이 해군사관학교를 붙어도 아부지는 허락 안 할거라예. 그때 되모 전라도 사람이라고 또 안 된다 할낍니더.’ 설득을 당한 쪽은 오히려 원세였다. 둘은 그날밤 물 한 그릇 떠놓고 촛불 하나 밝힌 채 둘만의 혼례를 치렀다. 원세는 스물일곱, 귀자는 스물하나였던 1월 추운 어느 겨울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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