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군함 717
“여보~~~! 여보~~~!!”
광에서 들려오는 아빠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진이는 다다미방 한중간에 대자로 뻗어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넓디 넓은 적산 가옥에서 울려퍼지는 아빠의 비명은 점점 커졌다. 으으으, 졸린 눈을 힘겹게 뜬 진이는 뭔가를 깨달은 듯 ‘아, 크일 났다!’하며 벌떡 일어나 광으로 달려갔다.
광에는 아빠가 뒤집어진 휠체어에 누워서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뒤로 넘어지며 머리를 찧었는지 뒤통수에서는 피가 나고 있었다. 광은 고작 한두 평 남짓한 좁은 공간인데 한쪽엔 목공 작업대가 있고 그 위로 대패며 톱이며 망치며 끌이며 목공 장비들이 널려있었다. 아빠는 거기서 해군 군함 717을 만들고 있었다. 광의 바닥엔 대패밥과 톱밥이 잔뜩 쌓여있어 아빠의 얼굴은 피와 땀, 대패밥과 톱밥에 범벅이었다. 휠체어를 탄 사람들은 하체가 말라 무게 중심이 상체에 있기 때문에 대패질을 한다며 지나치게 힘을 쓰던 아빠의 휠체어가 뒤로 발라당 넘어간 것이었다.
“아빠!!”
“진아, 아빠 쫌 일으키바라.”
진이 넘어진 아빠를 일으키려 손을 잡고 끙, 끙하고 힘을 써보지만 역부족이었다.
“쫌만 기다리세요.”
진이는 광을 나가 본채로 뛰어들어갔다.
“할무이~ 할부지~”
어른들을 찾지만 본채는 텅 비어있었다. 아 씨, 하며 본채 뒷문을 열고 골목으로 뛰어나갔다. 아이는 골목을 가로질러 황금댁으로 뛰어들어갔다. 오후 두세 시에 외할부지는 항상 황금댁에서 군대 부하였던 정식이 할부지와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지이 왔나~”
황금댁은 언제나 그랬듯 진이의 ‘ㄴ’을 빼고 진이를 불렀다. 황금댁은 진이에게 다가와서 술지게미 냄새나는 손으로 진이의 볼을 주물거렸다. ‘아 쪼옴,’ 황금댁의 손을 뿌리친 진이는 황금댁 안의 VIP룸으로 뛰어갔다. VIP룸이라고 해봤자 깡통 서너 개를 놓은 길쭉한 막거리집의 제일 끄트머리 움푹 꺼진 벽면에 투박한 통나무 탁자 하나 놓은 곳이었지만 외할아버지는 그곳을 ‘제일 높은 자리’라며 이른 오후부터 자리를 잡고 앉아 막걸리를 마셔댔다.
“할부지, 할부지!”
다급한 진이의 외침에 할아버지는 진이를 쳐다보았다.
“오, 진이 왔네? 우리 애손지.. 근데, 애손지는 다~ 필요엄따. 지가 내 제사를 지내줄끼가, 우짜끼고? 아무 때도 씰 데가 엄따!”
아, 외할아버지 취하셨다. 또 외손주 무용론이었다.
“할부지, 아빠가 또 넘어지써요. 빨리, 빨리!”
“뭐, 오데서?”
“광, 광~”
“하이고오, 문디 섀끼..”
외할아버지는 끙,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했다. 하지만, 이내 중심을 잃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내가 가께, 내 간다.’ 외할아버지는 일어나려고 애를 쓰며 허공에 손을 저었다. 함께 술을 먹던 정식이 할아버지가 외할아버지를 일으켜새워보려 했지만 외할아버지는 또 제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포기다. 진이는 황금댁을 나서서 소화전 공터 앞에 있는 영창상회로 뛰어갔다.
“아이씨, 우리 집에 좀 가주세요.”
“와?”
“아빠가 광에서 넘어지삤어예.”
“안 간다.”
“예?”
“내 느그 아빠 꼴도 보기 싫다!”
“예?”
나중에 들은 일이었지만 영창상회 아저씨는 아빠랑 바둑을 두다가 아빠가 딱 한 수를 안 물려줘서 대마가 잡힌 적이 있고 그 후로 다시는 아빠를 보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다고 했다.
“아빠 쫌 일으키 주세요, 아이씨, 예?”
“싫타이까.”
영창상회 아저씨가 팩 돌아서 방 안으로 들어가버리자 안에서 미정이 엄마가 나왔다.
“진아 와, 무슨 일이고?”
“아빠가 광에서 뒤로 넘어지삤어예.”
“아이고~ 우짜노~ 가보자!”
진이가 앞장을 서고 미정이 엄마가 진이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진이와 미정이 엄마가 광으로 뛰어들어왔다. 그런데, 광 안에서는 이미 엄마가 아빠를 일으켜놓고 잔소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빠의 뒤통수에는 피떡이 된 하얀 거즈와 반창고가 붙어있었다.
“그라이까 머하러 이거는 자꾸 만든다고 그라냐니까요!”
“이거 만들어서 마크사에 팔면 만원은 준다니까!”
“만워어언? 저번에 재료비만 억쑤로 들고 결국 오천원에 팔았잖아예?”
“이번엔 만원 준다캤다!”
“치료비가 더 들겠다!”
“717 이거는 이만원도 줄 수 있다 캤다니까!”
“넘어진 기 벌써 몇 번쨉니꺼, 버틸 힘도 없으면서 뭘 그래 자꾸 한다고..”
“그러면? 그럼 나는 머하까? 나는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가만이 숨만 쉬고 있으까?”
“운동을 하든가, 바둑을 두든가, 고마 딴 거를 하이소.”
“니 지금, 니까지 내 몸 아프다고 구박이가!”
“아이고 차암, 내 말은 그기 아이잖아요~ 그거 하다가 맨날 뒤로 넘어가잖아요, 내 없었으모 우쨌을 뻔 했습니꺼? 또 피 질질 흘리다가 기절할라꼬!”
아빠와 엄마의 팽팽한 말싸움에 미정이 엄마는 슬슬 뒷걸음질쳐 사라져버렸다. 진이는 오늘도 끝없는 설전을 보겠구나 싶어 그 자리에 쭈그려 앉아서 싸움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일단 광에서 나가이시더. 꺼즈도 새로 해야대고.”
“게한타, 인자.”
“에헤이, 피가 철철 난다캐도!”
엄마는 완력으로 광에서 아빠의 휠체어를 밀어냈다. 아빠는 끌려나가면서도 뭐라고 계속 궁시렁거렸다.
아빠는 월남전 참전 상이용사였다. 스무 살의 나이에 해군에 입대해서 직업 군인이 되었고 하사관으로 복무중이었던 스물다섯에 해군사관학교 15기 시험에 붙었다고 했다. 실컷 공부해서 시험엔 붙어놓고 나이 한참 어린 애기들이랑 동기되기 싫다고 입교하지 않았다 했다. 하사관을 하면서도 매일 세시간씩 버스를 타고 다니며 창원대학교 법학과 야간반을 다녀 법학학사 학위도 땄다고도 했다. 월남전이 벌어지자 월남 가서 돈 번 다음 그 밑천으로 사업을 하겠다며 굳이 자원을 해서 월남에 갔다 했다. 그러다 둘째인 진이가 백일 되는 날 큰 부상을 당했다 했다. 부상은 월맹군과의 전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했다. 시내에 나가서 술이 떡이 되게 마신 미친 국군 소령이 군용 트럭을 몰고 귀대하다가 자기 부대 초소를 덮쳤는데 하필 그 안에 아빠가 당번을 서고 있었다고 했다. 아빠는 허리뼈 T11,T12,L1,L2가 모두 으스러졌고 현지에서 치료를 할 수 없어 즉시 한국으로 이송되었다고 했다. 허리가 으스러진 엄청난 고통 때문에 똑바로 눕혀 이송할 수가 없어서 비행기에 거꾸로 매달아 후송했다고 했다. 소령의 사건 은폐 공작 덕분에 아빠의 부상은 치열한 전투중 부상으로 각색되었고 덕분에 아빠는 큰 훈장을 받았다 했다. 진이는 한번도 그 훈장을 본적이 없는데 그 이유는 아빠가 그 훈장을 불살랐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홀로 남겨진 진이는 아빠가 만들어놓은 717함의 본체을 가만히 보았다. 참 잘 만들었다 싶었다. 배의 본체 위에 조종실과 함포만 붙이면 아빠가 광의 벽면에 붙여놓은 진짜 717함 그림과 똑같아 질 것도 같았다. 엄마가 아빠를 무시해서 그렇지 완성만 되면 정말 이만원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뒤로 안 넘어가는 휠차는 세상에 없나..”
뛰어다니는 통에 땀범벅이 된 진이는 다시 살짝 졸리기 시작했다.
광 옆에 서 있던 어린 벚나무 가지에는 붉은 색인지 하얀 색인지 빛깔을 알수 없는 벚꽃 잎이 수줍게 고개를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