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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샤인 Apr 10. 2021

체리엔딩

제 3 장 강철어깨

“옴마가 골목에서 공 던지지 말라 켔나 안 켔나?!”     

엄마는 싸리 빗자루를 들고 씩씩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진이의 형인 형도가 황의원집 유리창을 또 깨먹은 것이었다. 매번 크게 야단을 맞고 매도 맞았지만 형도는 하루가 멀다하며 이 집 저 집 유리창을 깨먹고 다녔다. 엄마는 형도가 깨먹은 유리창 값이면 집도 한 채 샀을 거라 했다. 게다가 오늘은 공을 던져 골목에 마주하고 있는 황의원집 주방의 유리창을 깼는데 하필 그 때 의원의 사모님이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깨진 유리 파편은 귀한 사모님의 손목을 내리쳤고 설거지 통은 피바다가 되었다. 국회의원은 이 지역 출신이었지만 아내와 자식들은 서울에 살고 있었는데 잠시 남편을 보러 왔던 사모님이 하필이면 형도가 공놀이를 하는 시간에 설겆이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귀하신 국회의원 사모님은 동맥이 끊어져 손에 피를 철철 흘리며 엠뷸런스에 실려갔고 국회의원은 외할아버지 집에 쳐들어와 손자 관리 잘하라며 길길이 날뛰었다. 만약 형도가 퇴역한 해군제독의 손자가 아니었다면, 진이의 외가에 열 명(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외삼촌 넷 이모 둘에 진이 부모까지)의 유권자가 없었다면 형도는 오늘 국회의원 집에 끌려가 주리가 틀렸을 것이다. 

“큰 길에서는 차 때메 위험하다고 못 놀게 하고, 학교는 멀다고 못 가게 하고, 그라모 우리는 어디서 놀란 말이고?”

형도가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엄마에게 한마디했다.

“머라고오? 니 지끔 머라 캤노? 이기 지끔 머 잘했다꼬 악다구고?!”

"이 씨.." 

"이 씨? 이 씨이이?  옷 벗어, 옷 싹 다 벗고 집 나가!!!"

엄마는 빗자루를 거꾸로 들고 형도를 향해 휘두르기 시작했고 형도는 울음기에 가득차 옷을 벗기 시작했다. 형도의 곁에 있었던 진이도 덩달아 엄마에게 쫓기는 꼴이 되버렸다. 형제는 엄마의 매를 피해 중앙 정원을 지나 별채 창고를 지나 감나무와 오동나무를 뱅뱅 돌다가 큰 대문 앞까지 도망가야했다. 발가벗은 형제는 엄마의 광분에 신발도 못 신은 채 쫓겨나왔다. 진이는 별다른 잘못도 없이 형도와 같이 쫓겨나왔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유리창을 깬 건 형돈데 나는 왜 발가벗은 채 쫓겨나야하나, 억울해 죽을 지경이었다. 

“옴마, 잘못했어요. 옴마, 내 춥다~”

하지만, 진이의 말은 마음과는 다르게 나갔다. 마음은 억울했지만 머리가 ‘이 위급한 상황을 빨리 모면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말뿐 아니라 두 손도 한데 모아 싹싹 빌고 있었다.

“니는? 니는?!”

엄마의 빗자루 끝은 형도를 향했지만 형도는 입을 꼭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빨리 잘못했다 안 하나?!”

“..싫다!”

“머어? 싫어? 이노모 새끼가 지금, 잘못했다케라, 빨리!”

“이 씨, 유리창 한 장 깬 거 가지고 씨,”

“이기 진짜!” 

화가 머리 꼭지까지 뻗힌 엄마는 형제를 향해 싸리 빗자루를 거꾸로 들고 마구 휘둘러댔다. 형제는 고개를 숙이고 아아아아, 비명을 지르며 날아오는 엄마의 빗자루를 두 손으로 막았다. 

     

형도는 타고난 어깨가 남달랐다. 남다른 정도가 아니라 경상남도 국민학생중에서는 최강 어깨였다. 국민학교 4학년부터 소년체전 대표선수로 선발되어 멀리 던지기 부문에서 1등을 했고 나중에는 결국 롯데 자이언츠의 투수가 되었다. 그렇게 쎈 놈이 골목에서 공을 던졌으니 아무리 물렁물렁한 테니스 공으로도 유리창은 펑펑 깨져나갔다. 국민학교 4학년생이 이미 6학년생들을 때리고 다녀서 맞은 녀석들 부모가 집에 찾아온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나이는 진이보다 두 살 위였지만 완력은 이미 어른 수준이라 엄마도 힘으로는 이길 수가 없었다. 형도는 엄마가 매를 들면 자꾸 매를 붙잡고 버티는 바람에 몇 대에 끝날 매를 수십 대로 늘였고 엄마의 화를 끝까지 돋구어 애꿎은 진이까지 채벌 현장에 동참시켰다. 고집도 세서 쉬이 잘못을 인정하는 법이 없었다. 그 고집은 엄마로부터 내림이라 엄마도 형도를 꺾어놓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쌍방이 탈진상태에 이르러서야 사태가 끝나곤 했다. 오늘만해도 엄마는 형도가 잘못했다고 싹싹 빌기만 했다면 매질을 할 생각이 없었다.     

“마이 아팠드나..?”

“응.”

“..옴마가 미안하다.”

“유리창은 언니가 깼지, 내는 잘못한 거 엄썼자나.”

“그래, 니는 잘못엄따.”

“그라모 언니만 때리고 내는 안 때리야 되잖아.”

“그래.. 인자 엄마가 안 때리께..”

이모들이 엄마에게 언니라고 부르는 걸 본 진이는 어렸을 때부터 형도를 언니라고 불렀다. 집에서만 언니라고 불렀기 때문에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진이의 오른편에 여기저기 멍든 상처에 번들거리는 바세린을 바른 진이의 언니 형도가 잠들어 있고 왼편에 엄마가 누워 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안방에서 아빠의 코고는 소리가 낮게 들려왔다. 진이가 갑자기 엄마의 윗품에 손을 집어넣고 젖가슴을 만졌다.

“니 지금 머하노오~?”

“내 지금 머어한다~”

“니 지금 몇 살인데~?”

“내 지금 아홉 살이지~”

“아홉살이, 누가 옴마 찌찌를 만지노오?”

“아홉살이, 내가 옴마 찌찌를 만지지이?”

“열살 되모 안 된다~”
 “싫다 백살까지 만지끼다~”

“아,아,아! 아프다 쪼옴! 옴마 그만 쫌 때리라~!”

형도가 자다가 갑자기 잠꼬대를 했다.

진이가 큭큭큭큭 웃었고 엄마도 하,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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