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의 엔진과 사람의 사랑, 덕의 인.
자동차관리법 제2조 1의2.
“원동기”란 자동차의 구동을 주목적으로 하는 내연기관이나 전동기 등 동력발생장치를 말한다.
엔진(engine)
「명사」
열에너지, 전기 에너지, 수력 에너지 따위를 기계적인 힘으로 바꾸는 장치. 주로 열에너지를 이용하는 열기관을 이른다.
자동차는 엔진의 힘으로 움직이고 사람은 사랑의 힘으로 움직입니다. 덕이라는 자동차의 엔진은 인(仁), 즉 사랑입니다. 엔진이 자동차의 부품이듯 인은 덕의 부품입니다. 엔진 없는 차가 움직이지 못하는 고철덩어리에 불과하듯 인이 아니라면 덕은 덕이라고 부를 수 없게 됩니다. 우리가 부모와 형제를 사랑하고, 친구와 연인을 사귈 수 있는 까닭은 인입니다. 사람 두 명을 그린 글자의 모양이 말하듯, 인은 사람을 관계 맺게 합니다. 인이 없다면 사람은 관계를 맺을 수 없고, 따라서 사람이라고 부를 수 없게 됩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까닭은 모조리 인에서 나옵니다.
도로를 잘 달리는 자동차가 있다면 무엇보다 엔진의 출력이 좋기 때문일 겁니다. 도를 잘 따르며 덕망과 인간미가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어질어서입니다. 어진 사람은 가난하고 궁하며 심지어 천하더라도 도를 잘 따를 수 있습니다. 군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인은 덕의 뿌리입니다. 보닛이 구겨지고, 차창에 금이 가고, 여기저기 흠집이 나서 외관상 엉망진창이 된 자동차라도 엔진만 멀쩡하다면 주행할 수 있습니다. 물론 외관도 중요하겠지만 내면에 빗대지는 못합니다. 군자는 알맹이에 힘쓰기 때문에 인을 가장 먼저 생각합니다.
무릇 엔진 같은 기계는 시간이 흐르고 쓰면 쓸수록 고장이 잦아지고 약해지지만, 인은 도가 마칠 때까지 나날이 커지며 강해집니다. 쓰지 않고 내버려 둬서는 안 됩니다. 먼지가 쌓이고 녹이 스는 엔진처럼 마땅히 어질어야 할 때 어질지 못하게 됩니다. 언제나 어진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또 엔진에는 연료가 필요하나 인은 끝없는 마음인 덕에서 우러러 나오기 때문에 어질고자 하면 어질게 될 뿐이고, 우리의 본성이기 때문에 거스를 게 없습니다.
그러나 이걸 꼭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인은 제한 없는 사랑이지만 조건 없는 사랑은 아닙니다. 바보같이 지고지순한 사랑이지만 호구같이 어리석은 사랑은 아닙니다. 인은 순서와 차례에 따라 그 사랑이 닿고, 그 사랑의 크기도 다릅니다. 엔진 출력을 높여서 온 힘을 쏟아야 할 때는 태풍처럼 질주하고, 때로는 고요한 봄바람처럼 서행합니다. 어미새는 아기새에게 먹이를 물어다 줄 때 자기 배고픈 줄도 모르지만, 둥지 밑에 이리가 굶주리는 데는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비록 사람은 금수가 아니기에 내 자식이 아니더라도, 하물며 미물에게도 연민을 느껴 사랑하지만 내 자식보다 앞줄에 놓지는 않습니다. 아들딸보다도 앞마당의 개를 더 사랑한다면 인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당연히 도에 어긋납니다. 오직 인이라야 세상을 조화롭게 만들 수 있습니다.
조화로운 세상은 서로 사랑하는 세상입니다. 인은 끊임없이 커져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른 어른을 사랑하고,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른 아이를 사랑하고, 친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게 해서 결국은 세상사람 모두를 사랑하게 합니다. 인은 다름을 인정하되, 같아짐에 한없이 근접해집니다. 바로 공자가 바라던 대동(大同, 크게 같아짐) 사회입니다. 유교가 바라는 이상향은 자기 주변을 사랑하면서부터 시작합니다. 인의 도움을 받는다면 우리는 군자가 됨을 넘어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습니다.
안연 22
樊遲問仁 子曰 愛人 問知子曰 知人
번지가 인에 대해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을 사랑해야지.” 지에 대해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을 알아야지.”
사람을 사랑하며, 사람의 선한 마음을 사랑하면 인입니다. 사람이 덕을 지키고 도를 따르는가를 알아야만 비로소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알아야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냇가에 빠진 갓난아이를 봤을 때 허둥지둥 달려가 구하려는 사람은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위험에 빠진 이를 가엽게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을 지녔기에 또한 사랑받을 수 있습니다. 만약 반대로 갓난아이를 냇가에 내던지려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든 결코 사랑하고 싶지 않습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본능적으로 알 수 있는 바가 있는 반면, 배워야 아는 바도 있습니다. 앎은 자동차로 치면 연료여서 앎이 없다면 인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연료 없이는 엔진에 시동을 걸 수 없습니다. 덕은 도를 따르기에 도에 부합하지 않는 무도한 사람을 사랑한다면 인이 아닙니다. 욕정이나 열병, 변덕에 가깝습니다.
술이 29
子曰 仁遠乎哉 我欲仁 斯仁 至矣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인이 멀리 있겠나? 내가 인을 바라면 인 가까이에 이르지.”
내가 태어나 처음 어머니의 손가락을 잡고, 아버지가 환한 미소를 나를 맞이하는 순간부터 인은 내 곁에 있습니다. 인이란 세상을 자연스럽고 평범하게 바꿀 뿐, 깨우치기만 하면 단숨에 세계평화를 도래케 하는 대단한 진리가 아닙니다. 내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이룰 수 있습니다. 내가 인을 가져서 군자가 되거나 인을 떠나 소인이 됨은 모두 나에게 달렸습니다. 군자는 되고자 하면 될 수 있습니다. 마음먹기에 따라 어려움이 전혀 없습니다.
위령공 32
子曰 知及之 仁不能守之 雖得之 必失之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지(앎)가 닿더라도 인으로 지킬 수 없다면 얻더라도 반드시 잃지."
앎만 가지고는 선하기 어렵습니다. 한 번 선하더라도 인이 없다면 계속해나갈 수 없습니다. 앎이 이성이라면 인은 감성입니다. 새는 왼쪽과 오른쪽의 두 날개로 납니다. 너무 앎에만 매달리면 고집이 생기고 인에만 매달려서는 엉뚱한 곳에 마음을 쓰게 됩니다. 때로는 현실을 바로 볼 줄 알아야 하지만 마음을 다해야만 현실을 바꿀 수 있습니다. 이성과 감성을 두루 갖춰야 덕을 쓸 수 있습니다. 가령 우리에게 누군가을 사랑하라 강요한대도 겉으로만 사랑하는 척할 뿐 마음을 움직이기란 힘듭니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가 남에게 살갑게 굴고 나에게 정답게 대한다면, 곧 그 사람의 인이 나의 마음을 사랑으로 이끕니다. 앎과 인이 함께해야만 덕이 움직입니다.
위령공 34
子曰 民之於仁也 甚於水火 水火 吾見蹈而死者矣 未見蹈仁而死者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에게 있어 인은 물과 불보다 쓸데가 많거늘, 물과 불에 뛰어들었다가 죽는 사람은 봤어도 인하여 나가다가 죽은 사람은 못 봤네.”
사람은 물이 없다면 탈수로 죽고, 불을 이용해 날것을 익히지 못하면 식중독으로 죽습니다. 내게 물과 불이 없으면 말 그대로 물불 가리지 않을 테지만, 인이 없다면 그게 무에 쓸모 있냐며 콧방귀를 칠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인이 세상에서 별안간 사라져 버리면 사회가 주는 이로움을 누릴 수 없습니다. 인이 없으면 농부가 짓는 쌀을 얻을 수 없고, 목수가 짓는 집에서 살 수 없으며, 제단사가 짓는 옷을 입을 수 없습니다. 당장 인이 없다면 물과 불도 얻을 수 없습니다. 내 삶과 이리도 가깝고 꼭 있어야 하는 인입니다.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든다면 해로울 따름이지만, 인에 뛰어든다면 이로울 뿐입니다.
이인 4,
子曰 苟志於仁矣 無惡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참으로 인에 뜻이 있다면, 악이라고는 없지.”
이인 6 ☆
子曰 我未見好仁者 惡不仁者 好仁者 無以尙之 惡不仁者 其爲仁矣 不使不仁者 加乎其身 有能一日用其力於仁矣乎 我未見力不足者 蓋有之矣 我未之見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아직 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며 불인을 싫어하는 사람을 못 봤네. 인을 좋아하는 사람은 더할 나위 없고, 불인을 싫어하는 사람은 인에 있어서 불인이 몸에 털끝이라도 닿지 못하게 하지. 하루라도 인에 힘을 쏟은 사람이 있을까? 나는 아직 힘이 모자라서 인에 힘을 쏟지 못한 사람은 못 봤네.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아직 못 봤어.”
이인 2
子曰 不仁者는 不可以久處約 不可以長處樂 仁者 安仁 知者 利仁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질지 못한 사람은 힘든 일을 오래 견디지 못하고 즐거움도 오래 누리지 못하지. 어진 사람은 인을 편히 여기고 (덕을) 아는 사람은 인을 이롭게 여기네.”
불인(不仁, 인하지 않은 것)과 악을 싫어하는 소극적 자세와 인과 선을 따르는 적극적 자세가 있습니다. 불인을 싫어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깨끗하게 하지만 그뿐입니다. 오로지 내 작은 덕에만 붙들려있습니다. 하지만 인은 결국 사람과 더불어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어서 남을 떼어놓고 생각하다 보면 꼭 모자란 점이 생깁니다. 바깥에서 나에게로 닥쳐오는 일에 쉽게 흔들릴 위험이 있습니다. 즉 가난, 굶주림, 피로, 추위와 더위 등에 의해 마음이 쉽게 지치게 됩니다. 아무리 가파르고 울퉁불퉁한 길이라도, 비바람이 쏟아지는 날씨라도 어떤 자동차는 나아가지 못하지만 어떤 자동차는 나아갑니다. 엔진 성능의 차이입니다. 보닛이 조금 찌그러지고 차창에 금이 가더라도 길을 가는데에는 문제가 없듯, 사람에게도 어진 마음이 있다면 얼마든지 덕을 갖추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인을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큰 상관없이 적극적으로, 덕을 넓게 씁니다.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며 인을 내 터전 삼습니다. 덕의 즐거움을 안다면 판잣집에 살고 수돗물을 마시며 숨을 이어나가더라도 불평불만이 없습니다. 군자는 덕을 알기에 즐겁고 늘 편안합니다.
이인 3,
子曰 惟仁者 能好人 能惡人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인한 사람이어야 사람을 잘 좋아하고, 잘 미워하지.”
자로 24
子貢 問曰 鄕人 皆好之 何如 子曰 未可也 鄕人 皆惡之 何如 子曰 未可也 不如鄕人之善者好之 其不善者惡之
자공이 여쭸다. “마을 사람이 모두 좋아하면 어떻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안 되지” “마을 사람이 모두 미워하면 어떻습니까?” “안 된다. 마을 사람 가운데 선한 사람은 좋아하고 불선한 사람이 미워하느니만 못하네.”
군자는 어진 사람을 좋아하고, 소인은 어질지 않더라도 제멋대로 좋아합니다. 인은 인을 끌어당기고, 불인은 불인끼리 붙어먹습니다. 어진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은 덕으로 도를 따를 줄 아는 사람입니다. 어질지 않은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은 어버이와 연을 끊고 살고, 아내자식을 버렸대도 나에게는 보탬이 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어진 사람은 모든 사람을 좋아할 수도, 모든 사람이 좋아할 수도 없습니다. 어진 사람 앞에서는 어진 척하고 어질지 않은 사람 앞에서는 알랑이며 비위 맞추는 사람은 덕을 알지 못합니다. 차라리 모든 사람이 싫어한다면 모두에게 똑같이 못되게 구는 사람은 한결같다는 면에서 덕에 더 가까울겁니다. 군자는 줏대없이 두루뭉술하지 않습니다. 사람에 대해 바로 알고, 좋고 싫음을 꼭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