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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린 산천어 Jul 24. 2023

의, 운전대 잡기

마땅히 해야 할 것,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할 것

'유로트럭'이라는 게임입니다. 예전에 저희 아버지께서 게임용 운전대를 가져오셔서 저한테 매일 시켜주셨는데 막상 어른이 되니까 별로 관심이 안 가더라고요ㅎㅎ...




운전-대1
 발음[운ː전때]
「명사」
기계, 자동차 따위에서 운전을 하기 위한 손잡이.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의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
제2장 제1절 제24조(운전자의 좌석)
① 운전자의 좌석은 다음 각 호의 기준에 적합하여야 한다.
1. 운전에 필요한 시야가 확보되고 승객 또는 화물 등에 의하여 운전조작에 방해가 되지 아니하는 구조일 것
2. 운전자가 제13조 제1항에 따른 조종장치의 원활한 조작을 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될 것
3. 운전자의 좌석과 조향핸들의 중심과의 과도한 편차로 인하여 운전조작에 불편이 없을 것




 의(義)는 도라는 길 위에서 운전대를 잡습니다. 자동차의 부품으로 치면 의는 바퀴입니다. 엔진에서 나오는 힘을 바퀴의 회전력으로 바꿔야 자동차는 비로소 나아갑니다. 덕의 바퀴 축을 고정하거나, 직진하고, 좌회전, 우회전하는 일은 모두 의의 몫입니다. 해야 할 일은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지 말게 합니다. 마땅한 일을 마땅하게 받아들이고 마땅하게 해내는 마음입니다. 로써 우리는 어진 마음을 십분 활용해 도를 따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의롭지 않은 짓을 할 때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내 행동이 덕과 맞지 않을 때 생기는 마음이 부끄러움입니다. 불의(不義, 의롭지 않음)에 대한 꺼림칙함입니다. 의는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덕을 거스르지 않는 일입니다. 뭇사람은 부끄러움을 싫어하고 숨기고 싶어 하지만 오히려 마땅하게 여기며 지켜야 합니다. 실천으로서 덕과 자신이 맞게 되었을 때 말 그대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럽지 않은'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정의(正義, justice)라는 말이 있지만 의와는 비슷하면서도 다릅니다. 정의는 사람마다 말하는 바가 다를 수 있습니다. 누구는 권선징악이 정의라 말할 수 있고, 누구는 세계평화가 정의라 말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 선을 말하지만 잣대가 사람마다 다릅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왕정과 민주는 서로만이 선이고 정의라 우깁니다. 그러나 의에 맞을 수는 있어도 의인 것은 아닙니다. 의는 특정 집단이 아니라 뭇사람이 마음속 깊숙이에서부터 옳다고 느껴야 합니다. 의는 오로지 덕에서 비롯해 도를 따릅니다. 사람이라면 꼭 옳다고 여길 일만이 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는 돈의 흐름과 나라의 주인이 달라질지라도 바뀌지 않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는 꼭 있는 것이 의입니다.


 의는 인과 짝지어져 도덕의 큰 줄기입니다. 인이 나무의 뿌리라면 의는 가지입니다. 인이 불씨라면 의는 불꽃입니다. 인과 의는 서로 가까워 떨어지지 못합니다. 사랑한다면 보여줘야 하고, 보여주어야 사랑입니다. 바퀴가 없다면 자동차는 나아가지 못합니다. 사람이 의를 버린다면 사람답게 살 수 없습니다. 의라는 바퀴는 돌면돌수록 탄성을 받고, 회전력에는 관성이 생겨 멈출 수 없습니다. 의는 사람을 사랑하는 인의 힘을 받습니다. 오르막길을 갈 때에도 내리막길처럼 가속도가 붙어 힘차게 나아갑니다. 사람을 돕고 구하지 못함을 부끄럽게 여기고 또 마땅히 도와 구해냅니다.




이인 10, 

子曰 君子之於天下也 無適也 無莫也 義之與比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세상에 꼭 해야 한다, 절대 말아야 한다 할 게 없지. 의를 따를 뿐이야.”

계씨 11

孔子曰 見善如不及 見不善如探湯 吾見其人矣 吾聞其語矣 隱居以求其志 行義以達其道 吾聞其語矣 未見其人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선을 보면 닿지 못할 듯, 불선을 보면 끓는 물에 손대듯 하는 사람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있다만. 숨어 살면서도 뜻을 구하고, 도에 의롭게 나가는 사람은 아직 본적도 들은 적도 없어."


 운전할 때 신호등을 만나면 적색등에 멈추고 녹색등에 갑니다 직선도로에서 직진합니다. 코너에서는 좌회전, 우회전합니다. 마땅하게 꼭 해야 하고, 감히 하지 말아야 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적색등에 나아가야 하고 녹색등에 멈춰야 할 때가 있습니다. 어떨 때는 유턴하거나 급정거합니다. 일상의 작은 일이나 세상의 큰 일도 칼로 자른 듯 딱 맞게 떨어지는 일이 드뭅니다. 사람은 규칙이나 법의 잣대로 틀에 콕 박혀 살기 어렵습니다. 군자는 법이 아니라 의를 따르는, '법 없이도 사는 사람'입니다.


 의는 무엇보다 마땅합니다. 덕을 거스르지 않고, 도에 맞습니다. 의를 따르며 살면 언제 어디서든 막힐 게 없습니다. 불규칙하고 예측불가능한 세상을 물 흐르듯 살 수 있습니다. 목마른 사람은 물을 깊이 바라기에 작은 물방울이 떨어지면 소중하게 받고, 물이 펄펄 끓는 솥 근처에 서면 누구라도 데이지 싫어 멀찍이 떨어집니다. 의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의가 없다면 목이 말라도 침을 찍찍 뱉고, 뜨거운 국물에 팔을 담그게 됩니다.


 의가 나몰라라 당하고 불의가 마치 진짜 의인양 받아들여지는 요즘입니다. 의롭지 않은 세상에서는 부모가 마땅히 자녀를 보살펴야 함에도 젖을 먹이지 않습니다. 늙은 부모에게 목소리를 높입니다. 스승의 가르침이 끊기고, 제자는 스승을 모시기는커녕 무시합니다. 올바른 세상을 되찾는 방법은 오직 의입니다. 덕을 지키고 도를 따른다면 의의 폭이 넓어져 선이 점점 커지게 됩니다. 의를 가뭄의 단비처럼 받들고 불의를 펄펄 끓는 물처럼 피해야 합니다.




이인 16, 

子曰 君子는 喩於義 小人 喩於利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의를 좋아하고, 소인은 이익을 좋아하지.”

술이 15, 

子曰 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맨밥에 물만 마시고, 팔베개를 베고 자도 그 가운데에 즐거움이 있지. 내게 있어서 의롭지 않은 부귀는 뜬구름 같네.”

자장 1, 

子張曰 士見危致命 見得思義 祭思敬 喪思哀 其可已矣

자장이 말했다. “선비로서 나라가 위기에 빠지면 목숨을 바치고 얻기보다 의를 생각하며, 제사 지낼 때는 섬기리라 생각하고 상사 때는 슬프게 생각하면 괜찮다고 할만합니다.”

헌 문 13

子路問成人 子曰 若臧武仲之知 公綽之不欲 卞莊子之勇 冉求之藝 文之以禮樂 亦可以爲成人矣. 曰 今之成人者 何必然 見利思義 見危授命 久要 不忘平生之言 亦可以爲成人矣

자로가 성인(도를 이룬 사람)에 대해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이익을 보면 의를 생각하고 나라가 위기에 빠지면 목숨을 바치며, ••• 도를 이뤘다고 할 수 있겠지."


 사람의 덕은 의를 좇고 욕구는 이익을 좇습니다. 군자의 의는 사람 모두를 이롭게 하지만, 소인의 욕구는 나 하나만 배부르게 먹고살면 그만입니다. 도덕과 욕구는 모두 사람의 본성입니다. 사람은 돈을 많이 벌고, 좋은 대우를 받는 자리에 오르기를 좋아합니다. 군자라고 돈 많이 벌기 싫고, 대접받기 싫어하는 게 아닙니다. 도덕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욕구도 마땅히 옳습니다. 먹고 싶은 욕구, 자고 싶은 욕구, 놀고 싶은 욕구가 없다면 사람이 어떻게 살 수 있나요? 군자는 도덕과 욕구가 고릅니다. 작은 의를 생각하나 몸을 망쳐 도에 벗어나지 않고, 큰 이익을 노리다 남을 해쳐 덕을 거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군자에게 의를 해치는 이익은 뜬구름처럼 잡을 수도 없고 잡기도 싫습니다. 도에 벗어나기가 죽기보다 싫습니다. 이익을 버려서 의를 얻을 수 있다면 꼭 그렇게 합니다. 히어로 영화에서 영웅이 악당에 맞서 지구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칩니다. 하지만 슈퍼히어로가 아니라도 칼 든 강도가 소중한 사람을 위협하는 상황이라면 목숨이 깃털보다 가벼워집니다. 건물에 불이 났을 때 제 아이를 불길로부터 지키는 어머니의 의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그들을 구조하기 위해 불나방처럼 화재 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소방관의 의는 알맹이가 같습니다. 소인조차 의에 목숨을 걸 때가 있습니다. 작은 의를 점점 키운다면 반드시 커다란 의가 되어 군자가 될 수 있습니다.




위령공 16

子曰 群居終日 言不及義 好行小慧 難矣哉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하루종일 모여있으면서 의로운 말은 토씨하나 없고, 작은 꾀나 부리기를 좋아한다면 어쩔 수가 없지.”


 하루종일 운전하는데 한 번도 신호를 지킨 적 없이 어떻게든 빠져나갈 생각만 하며, 한 번도 속도를 지킨 적 없이 어떻게든 빨리 갈 궁리만 한다면 제정상이 아닙니다. 미친 사람입니다. 의로운 말은 꼭 세상을 구원하리라 거창한 말이 아닙니다. "밥 뭐 먹지", "뭐 하고 놀까"하는 시시껄렁한 이야기 안에도 의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함께 밥을 먹는 사람이 먹지 못하는 음식이 있다면 배려해 다른 메뉴를 고르고, 나만이 아는 좋은 장소에 데려가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면 이 가운데에 반드시 의가 있습니다. 의는 어렵고 멀지 않습니다. 여러 사람이 하루종일 붙어있으면 의에 닿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주변의 의를 찾아 그대로 해나간다면 도를 이룰 수 있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밥만 먹고 돈이나 쓰며 사나요? 의가 있어야 삽니다.




미자 7

 ... 子路曰 不仕無義 長幼之節 不可廢也 君臣之義 如之何其廢之 欲潔其身而亂大倫 君子之仕也 行其義也 道之不行 已知之矣

 (자로가 길을 잃어 어떤 심상치 않은 노인의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졌습니다. 공자는 이 일을 듣고 노인이 은자라고 합니다. 자로는 다시 노인을 찾았지만 외출 중이라 그곳에 없었습니다.) ... 자로가 말했다. “벼슬하지 않으면 의가 없어집니다. 나이가 많고 적음의 예절도 버릴 수 없는데, 임금과 신하의 의를 어찌 버릴 수 있겠습니까? 혼자 깨끗해지려고 큰 윤리를 어지럽히는 짓이죠. 군자는 벼슬로서 의를 실천합니다. 도가 따라지지 않으리라 이미 알고 있어도요.”


 은자(隱者, 숨은 사람)는 무도한 곳을 피해 숨은 군자입니다. 덕은 군자이지만, 도는 군자답지 않아서 반쪽짜리 군자입니다. 군자라면 할 수 있는 일을 마땅히 해야 합니다. 군자는 내가 가진 능력이 의를 돕는데 쓰일 수 있는데도 도가 없는 세상이라는 핑계 하나로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무도를 도로 바꿀 수 있는 적은 가능성이라도 보인다면 군자는 의롭게 바깥으로 나서야 합니다. 큰길 가운데에서 누군가 이유 없이 맞고 있다면 맞아 죽기 전에 말려야 합니다. 또 강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사람이 있다면 손을 뻗어 물밖로 꺼내줘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을 돕지 않고 숨어버린다면 내가 직접 사람을 때려죽이거나 물에 빠뜨려 죽인 것과 다를 게 없습니다. 선거철에 내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다는 이유로 투표를 하지 않는다면, 내가 투표하지 않은 사람이 당선되어 나라를 어지럽히더라도 내 손으로 나라를 어지럽힌 것과 다를 게 없습니다. 112나 119에 신고를 하던지, 기권표라도 넣고 오는 게 마땅히 의에 맞습니다. 불의와 멀어진다고 곧 의인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의롭게 도를 따라야 하고, 자동차는 바퀴를 굴려 도로 위를 달려야 합니다. 덕은 도를 따르지만, 덕이 달리는 곳이 곧 도이기도 하기에 도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의롭게 나아간다면, 도는 언제나 우리 마음속에 덕으로 살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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