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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린 산천어 Jul 24. 2023

용, 엑셀 밟기

급발진? 씩씩하게 나아가는 덕으로




급발진[急發進]
형태[=急+發進]
1. 자동차나 선박, 항공기 따위가 정지된 상태에서 급작스럽게 출발하여 나아감.
2. 차량이 운전자가 의도하지 않은 대로 급가속하는 현상.(Sudden Unintended Acceleration, SUA)




 용(勇)은 용감하고 앞뒤 헤아림 없이 마땅한 일에 거침없이 뛰어드는 씩씩함입니다. 액셀을 밟으면 자동차는 속력을 높입니다. 액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지 않듯이 용에는 티끌만큼의 두려움도 섞이지 못합니다. 용은 두려움과 머뭇거림을 이겨내게 합니다. 씩씩한 사람은 할 수 없어 보이는 일도 결국 해내며, 어려운 문제에도 금방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앞으로 나아감에 무서워하지 않으며, 자신을 돌보지 않습니다. 용이 없는 사람은 의를 이루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액셀을 너무 밟아대면 커브길, 방지턱, 횡단보도, 비탈길, 내리막길에서 속도를 줄이기 힘듭니다. 자동차가 전복(覆, 차나 배 따위가 뒤집힘)될지도 모릅니다. 무작정 속력을 높이는 게 모범운전의 기준은 아닙니다. 용감한 사람은 도에 맞지만, 만용(勇, 가림없이 함부로 날뛰는 용)을 부리는 사람은 도를 어지럽힙니다. 결단이 있는 사람은 카리스마가 있지만, 속단하는 사람은 가볍고 점잖지 못합니다.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갖는 것도 좋지만, 부족함을 알고 한 발짝 물러서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의로운 사람은 용감하고 무모한 사람은 의롭지 않습니다. 용기와 무모함은 한 끗 차이입니다.


 의에 바탕을 두는 용이어야 군자로서 덕을 지키고 도를 따를 수 있습니다. 의롭지 않으면 용은 제대로 쓰일 곳을 찾지 못하고, 용이 없으면 의를 이룰 곳이 없습니다. 의와 용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하나입니다. 씩씩한 사람이 없는 세상은 무엇하나 제대로 일이 나아가지지 않아 갑갑합니다. 그렇다고 의롭지 않되 용만 믿는 사람이 많다면 세상은 난리부르스가 됩니다. 용은 만능이 아니지만 의를 갖춘다면 말 그대로 두려울 게 없습니다. 운전을 하려면 액셀을 밟아야 하며, 군자가 되기 위해서는 용감하고 씩씩해야 합니다.




자한 28, 

子曰 知者不惑 仁者不憂 勇者不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슬기로운 사람은 흔들리지 않고, 어진 사람은 걱정하지 않고, 씩씩한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지."

헌문30

子曰 君子道者三 我無能焉 仁者 不憂 知者 不惑 勇者 不懼. 子貢曰 夫子自道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의 도가 세 가지인데 나는 잘하는 게 없네. 슬기로운 사람은 흔들리지 않고, 어진 사람은 걱정하지 않고, 씩씩한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지.” 자공이 말했다. “선생님은 당신께서 그러하십니다”


 사람이 나아갈 길에 빛이 없다면 슬기로 밝히고, 나아갈 힘이 없다면 사랑으로 밀며, 나아가기 두렵다면 씩씩함을 가져야 합니다. 지인용은 삼달덕(德, 어떠한 경우에도 통하는  가지의 )이라고도 합니다. 인의예지의 사덕과는 조금 다르지만 알맹이는 모두 같습니다. 삼달덕은 공자가 묶고, 사덕은 맹자가 묶었습니다. 삼달덕을 나중사람에게 쉽게 풀어 설명하기 위해 만든 게 사덕입니다. 예는 새로 넣어졌고 용 대신 의가 들어갔습니다. 예는 인의 껍데기고 의는 용의 알맹입니다. 예가 없으면 인이 아슬아슬하듯 용이 없으면 의는 부질없습니다. 예가 있어야 어질게 나아가고 용이 있어야 의롭게 나아갑니다. 지, 인, 용, 의, 예는 모두 사람의 덕이자 세상의 도입니다. 덕을 지키고 도를 따르는 사람은 믿지 않거나 어렵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위정 24, 

子曰 非其鬼而祭之 諂也 見義不爲 無勇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조상이 아닌 귀신에게 제사 지내면 빌붙는 게고, 의를 보고도 하지 못한다면 용기가 없는 거지.”

공야장 6

子曰 道不行 乘桴 浮于海 從我者 其由與 子路聞之 喜 子曰 由也 好勇 過我 無所取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뭇사람이 도로 나아가지 않으니 나는 뗏목을 타고 바다로 나아가야겠네. 나를 따라올 사람은 아마도 유겠구나.” 자로가 말씀을 듣고 기뻐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유는 나보다도 용을 좋아하지만, 용을 쓸 곳이 없구나.”


 할까 말까 할 때 하게 하고, 해도 되나 할 때 말게 하는 용기가 있기에 세상의 도덕이 지켜집니다. 의에는 용이 필요합니다. 아주 사소하고 하잘것없는 마땅함에도 용기가 듭니다. 길가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다든지, 새치기하지 않는다든지, 조용히 해야 하는 곳에서 큰소리를 내지 않는 건 마땅하지만 어딜 가나 꼭 어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더러 '겁 없다'라고 하지만 틀렸습니다. 의를 따를 용이 없는 겁쟁이일 뿐입니다. 진정으로 용기 있는 사람은 남과 다투길 무서워하지 않고, 크게 성내기를 좋아하거나, 자기 몸을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언제 어디서건 마땅히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공야장 19

季文子三思而後 行 子聞之 曰 再斯可矣

계문자는 매사에 세 번 생각하고 나서 했다. 공자께서 들으시고 말씀하셨다. “두 번이면 됩니다.”


 의롭고 씩씩한 사람은 망설이지 않습니다. 문제를 앞두고 옳고 그름을 따질 틈은 필요 없이 이미 의로 갖춰져 있고, 할까 말까 하는 머뭇거림은 이미 용으로 없어져 있어 날랩니다. 용은 곧 실천입니다. 위기의 순간 몸을 날려 사람을 구하고도 "누구라도 그 상황에서는 그렇게 했을 거예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의인(義人)입니다. 의인은 용에서 나오는 행동력으로 의를 실천합니다. 의인은 두 번 세 번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군자는 의가 몸에 배어서 한번 생각하기도 전에 이미 실천하고 있습니다. 제로백(Zero百,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킬로미터까지 가속에 걸리는 시간)이 5초도 안 되는 스포츠카처럼, 군자는 나아갑니다.




헌 문 5

子曰 有德者 必有言 有言者 不必有德 仁者 必有勇 勇者 不必有仁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덕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말이 훌륭하지만, 말이 훌륭하다고 꼭 덕이 있지는 않지. 어진 사람은 반드시 용기가 있지만, 씩씩하다고 꼭 인이 있지는 않네.”

태백 10, 

子曰 好勇疾貧 亂也 人而不仁 疾之已甚 亂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용을 좋아하면서 살림살이가 너무 어려워 힘들게 되거나, 사람이 어질지 못하다며 너무 미워하면 사회를 어지럽히지.

양화 23, 

子路曰 君子尙勇乎 子曰 君子 義以爲上 君子 有勇而無義 爲亂 小人 有勇而無義 爲盜

자로가 말했다. “군자도 용을 높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의를 더 높게 치지. 군자가 용만 있고 의가 없으면 사회를 어지럽히기 마련이고, 소인이 용만 있고 의가 없으면 좀도둑이 되네.”

술이 10 

子謂顔淵曰 用之則行 舍之則藏 惟我與爾有是夫 子路曰 子行三軍 則誰與 子曰 暴虎馮河 死而無悔者 吾不與也 必也臨事而懼 好謀而成者也

공자께서 안연에게 말씀하셨다. “나와 나만이 써주면 곧장 나가고, 버려지면 곧장 숨을 수 있네.” 자로가 말했다. “선생님께서 큰 군대를 이끄신다면 누구와 함께하시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맨손으로 범을 때려잡고 맨발로 강을 건너려다가 죽어도 뉘우치지 않을 사람과는 함께하지 않을 테다. 나는 꼭 두려워할 줄도 알고, 꾀를 꾸미기를 좋아해서 일을 이룰 사람과 함께해야겠네.”


 운전자가 액셀을 밟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가속해 버리는 자동차는 너무 위험합니다. 사람도 같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급발진하는 사람은 용기 있는 사람이라 하지 않습니다. 용을 가지되 의롭지 않고 함부로 날뛰면 만용이라고 합니다. 물불을 가리지 않는 용기와 똥오줌 분간 못하는 만용을 같다고 할 수 있나요? 의에 따라 액셀을 밟아야 용이지, 불의한데 급발진한다면 만용입니다. 군자는 용기 있지만, 용기 있다고 다 군자는 아닙니다. 삼달덕과 사덕이 다 갖춰져야 군자라 할 수 있습니다.


 용은 칼과 같습니다. 양날의 검입니다. 나를 가로막는 것을 물리칠 수도 있지만 도리어 내가 베일 수도 있습니다. 칼날로 재료를 잘라 쓸만한 물건을 만들거나 식자재를 조리해 음식을 해먹을 수도 있지만 사람을 쉽게 해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도 죽이는 것도 칼입니다. 마찬가지로 사회를 위기로부터 구하는 것도, 사회를 위기로 몰아넣는 것도 용입니다. 의인은 용이 있지만, 용이 있다고 다 의인은 아닙니다. 알량한 무력으로 사회를 어지럽히고, 쿠데타를 일으켜 나라를 뒤집고, 죄 없는 사람을 마구 죽인 사람들이 의가 없었지 용이 없었을까요? 거꾸로 그들 앞에 나서지 않고 내버려 둔 사람 가운데 의롭지 않다고 생각한 사람이 아예 없었을까요? 용만 있어도 문제요, 의만 있어도 문제입니다. 군자가 되려는 사람은 의롭고도 씩씩해야 합니다.




맹자 공손추 상

敢問夫子 惡乎長 曰 我 知言 我 善養吾浩然之氣 敢問 何謂浩然之氣 曰 難言也 … 其爲氣也 至大至剛 以直養而無害 則塞于天地之間 其爲氣也 配義與道 無是 餒也 … 是集義所生者 非義襲而取之也 行有不慊於心 則餒矣.

“감히 여쭙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무슨 장점이 있으십니까? ”

“나는 말을 잘 알며, 나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잘 기르네.”

“감히 여쭙겠습니다. 무엇을 호연지기라 합니까?"

"말하기 어렵네. … 이 기는 아주 크고 아주 강하니, 곧음으로써 기르고 해침이 없으면 하늘과 쌍 사이에 꽉 차게 되네. 이 기는 의(義)와 도(道)에 짝이 되니, 이것이 없으면 기가 굶주리게 되네. … 이 호연지기는 의를 많이 모아야 낳을 수 것이지, 나의 어떤 행동이 우연히 한 번 의에 맞게 되었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닐세. 내가 행동하고서 꺼림칙한 바가 있으면 바로 굶주리게 되는게야."


 내가 목표를 이루겠다는 뜻을 세우면, 뜻에 맞는 자발적인 생각이 들어야 합니다. 의(意, 의지)가 대장이라면 기(氣, 기운)는 졸병입니다. 의지는 덕의 엔진인 인이며, 기는 바퀴인 의입니다. 용과 깊게 이어진 직의 개념이 있는 것을 봐서 맹자가 말하는 호연지기(浩然之氣)는 용에 가깝습니다. 의로운 행동을 계속 해주지 않으면 녹슬어버리는 용기입니다. 도덕을 따르는 호연지기가 있다면 욕구를 따르는 혈기(血氣)도 있습니다.


계씨 7

子曰 君子有三戒 少之時 血氣未定 戒之在色 及其壯也 血氣方剛 戒之在鬪 及其老也 血氣旣衰 戒之在得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에게 세 가지 경계할 것이 있네. 젊을 때엔 혈기가 안정되지 않았으므로 색(色, 성욕)을 경계해야 하고, 나이 들어서는 혈기가 한창 강하므로 싸움을 경계해야 하고, 늙어서는 혈기가 쇠하므로 얻으려는 것(탐욕)을 경계해야 한다.”


 맹자가 용이 있음에도 호연지기라는 말을 만들어낸 까닭은 혈기라는 개념과 반대되는 짝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욕구 또한 마음, 생각, 의지가 있습니다.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사귀고 싶다는 의지가 되고 고백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구체화되어 실천으로 이어집니다. 남을 이기고 싶은 호승심이 싸우고 싶다는 의지가 되고 시비를 걸어야 겠다는 생각이 실천으로 이어집니다. 무언가 얻고 싶다는 욕심이 얻어야 겠다는 의지가 되고 뺏어야 겠다는 생각이 실천으로 이어집니다. 고백, 싸움, 탐욕도 용기가 있어야 하지 않나요? 용기이지만 어리석기에 만용입니다. 군자는 의롭지 않은 일을 보았을 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이 먼저 들고, 막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겠다(見危授命)'는 의지가 되고 '날래게 뛰어드는 용기(勇)'가 실천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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