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늘 막내입니다> 3부
뭘 하고 싶은지 정해지기 전까진 이력서를 쓰지 않기로 했다. 불안한 마음에 이력서를 쓰기 시작하면 똑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으니까. 회사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상처받으며 그만두는 상황은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 지금은 이렇게 결정했어도 친구를 만나고 부모님 걱정을 듣다 보면 어느새 이력서를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최대한 조급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르바이트를 찾아보기 위해 알바몬을 켰다. 난 28살이다. 직장에서도 늦은 나이라고 하는데 아르바이트 역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그러다 한 베이커리 매장에서 연락이 왔다. 20살 때부터 커피와 베이커리 쪽에서 일한 경력 때문이라는데 만약 경력이 없었으면 다른 일을 했겠지. 함께 일하는 동료들 나이는 20살 21살. 내 또래는 없었다. 나보다 어린 동생들과 일하면서 28살에 아르바이트하는 나를 어떻게 볼지 신경 쓰이고, 위축됐다. 그동안 여행 다니고 여러 일을 해봤다면서 묻지도 않는 말을 했다. 난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란 얘기를 종종 듣는다. 친근하다고. 칭찬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일을 겪고 나서 마냥 좋은 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같이 일 했던 4살 어린 동생은 내가 편하단 이유로 이모와 동생들 있는 곳에서 내 이름을 부르거나 “지나 잘하지”라고 말했다. 장난인 건 알지만, 정도가 심했다. 어이없어서 말문이 막힌다고 해야 하나. 장난으로 한 말을 기분 나쁘다고 하면 속 좁은 사람으로 보일까 봐 참았던 것 같기도 하다. 잘 모르겠다. 순간 할 말을 잃었고 조용해진 분위기 속에서 해야 할 일이 생겼다. 그렇게 조용히 넘어갔다. 내가 기분 나쁨을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일은 계속됐다. 나의 이 소심함!
생각해 봤다. 나는 왜 이런 말을 꺼내지 못할까. 내가 기분 나쁘다고 말하는 게 상대방과 싸울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일까. "네가 한 말이 기분 나빴어.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좋게 말하는 건데. 만약 기분 나쁘단 걸 표현했음에도 불구하고 평소와 다르지 않다면 화내도 된다. 한 번 더 무시했기 때문에. 기분 나쁜 걸 말하지 않았어도 이미 그 사람에게서 상처받았기 때문에 난 그 사람을 보지 않을 거다. 그럼 표현 정도는 할 수 있어야 덜 억울하지 않을까. 참는 것에 익숙하다. 그래서 이런 간단한 말조차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렵다. 싫은 소리 하기 싫다. 상대방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줬으면 좋겠다. 방법은 있다. 표정으로 말하는 것. 다만 좋은 방법은 아니다. 갑자기 어두워진 내 표정에 차가워진 분위기는 주변 사람도 느낄 수 있다. 둘이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커졌다. 주변에서 눈치 보기 시작했다. 그 눈치에 나도 불편하다. 오히려 오해가 커질 수 있다. 어두워진 표정으로 “갑자기 나한테 너무 차갑게 대한다면서” 누군가에게 말하고 또 말하겠지. 나한테 더 마이너스일지도 모른다. 차라리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에 말하는 게 좋을 수도 있다. 같은 일이 계속 반복되기 전에. 친구들끼리 말한다. "우린 서로에겐 하고 싶은 말은 잘하는데 다른 사람 앞에서는 참게 돼, 우리 왜 이렇게 소심한 거야?"
그래서 마음의 벽을 만든 것 같다. 상처받지 않으려고. 적당히 풀어주면 이와 같은 상황이 생기고 의도치 않게 한 사람을 잃게 되니까. 그렇게 되면 내게 다가오는 사람도 줄어들 수밖에 없는데. 사람 관계가 너무 어렵다. 말하는 것은 결국 나를 지키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어떤 말을 해도 괜찮은 사람이 될까 봐 걱정된다. 신입으로 입사했을 때 나이가 적든 많든 소통 하는데 문제가 있으면 적응하기 어려울 수 있다. 점점 의기소침해진다. 재미있는 일과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은데, 쉬운 일이 아니라니. 하고 싶은 분야에서 일해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할 때가 많다. 초반엔 여러 의견을 제시하지만 의견을 말해도 소용없음을 알게 되면 시키는 일만 하게 된다. 이런 경우가 잦으면 내가 이 회사에 필요한 사람이 맞는지 이 일을 왜 하고 있는지 등 슬럼프가 오기 마련이다. 그럴 때면 잘하고 있어 혹은 그 사람이 문제야라고 내 말에 공감해 줄 사람이 너무 그립다.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는 친구보다 직장동료가 더 잘 알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회사 내에서 등을 토닥여주는 사람, 같이 성장해 나갈 사람만 있으면 잘 적응해갈 수도 있다. 사람이 어려워서 사람을 밀어내고 있는데, 결국 사람이 필요하다니. 참 어렵다. 이렇게 뭘 하고 싶은지, 누구랑 일하고 싶은지 따지다 보면 막막해진다. 좋은 사람 몇 명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 큰 희망사항임을 알아버렸다. 좋아하는 일을 하더라도 그 안에 있는 사람까지 좋길 바라니까. 아, 일하고 싶다. 진짜 내 일. 좋은 사람들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