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먹고살지?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저는 늘 막내입니다> 3부

by 매실

고등학교 때는 빨리 성인이 되고 싶었다. 교복을 입지 않아도 되고 자유롭게 놀 수 있기도 했으니까. 논스톱 보던 세대여서 그런지 기숙사 생활부터 술 마시는 것까지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많았다. 놀다 보면 어느새 20대 중반이 되어 있을 테고 취업해서 번듯한 직장을 갖다가 20대 후반이면 결혼할 거라 생각했다. 이 흐름대로 살아가면 30대는 정말 멋진 사람이 되어 있을 것 같았다. 상상만으로도 설레고 좋았다. 하지만 늘 그렇듯 생각대로 되기란 쉽지 않다. 가끔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이 혼란스러우면서 불안하기도 하다. 최근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수입이 생길 곳이 없으니 먹고 싶은 음식은 먹지 못하고 하고 싶은 것들을 남은 생활비를 따져가며 뒤로 미루고 있다. 직장을 그만두니 어쩔 수 없이 불안감이 생기는 것 같다.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20대 초반과 달리 20대 중반이 되니 현실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연봉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여기서 잘 성장할 수 있을까? 돈을 보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했던 적이 엊그제 같은데 따져야 할 것들이 생기다 보니 씁쓸하기도 하다. 열정 하나만으로 뭐든 할 수 있던 때가 있었는데. 직업 선택의 가치관이 필요한 것 같았다. 칼퇴가 보장되거나 직원을 존중해 주거나. 이런 가치관을 정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잘하는지 알아야 했다. 본격적인 고민이 시작됐다. 내가 잘하는 게 뭐지? 고민하는 일은 재미있었지만, 주변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뭐 먹고살지를 고민하기 전에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찾아야 할 것 같았다.



초등학교 때 장래희망은 부모님이 정해준 걸 썼고 고등학교 때는 뭘 하고 싶은지 몰라서 친구의 장래희망을 따라 적었다. 지금은 장래희망을 묻지 않는다. 다만 "요새 뭐 해?"의 질문으로 뭐 하면서 먹고 사는지 묻는다. 그냥 물었을 뿐인데 압박감이 생겼다. 직업과 연봉으로 비교당하는 기분이랄까. 그래도 내가 쟤보다는 낫구나 하면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직장 없는 내게 자꾸 뭐 하면서 지내냐는 질문이 스트레스였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사람들의 시선 없이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집중해 볼 수 있는 시간. 그렇게 라오스로 여행을 떠났다. 왜 라오스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름 자체만으로도 설레었다. 답은 라오스에만 있겠지? 한 달 동안 라오스에 살면서 잘 놀았고, 잘 쉬었으며 사람을 통해 얻은 것도 많았다.


뭘 좋아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여행에서 많은 해답은 얻은 건 아니다. 다만 마음이 편해졌다. 가끔 이런 시간도 필요한 것 같다. 휴식. 한국에 있으면 압박감에 시달려서 내가 뭘 좋아하는지 생각할 여유가 없다. 라오스에서는 불안 없이도 잘 놀았고 매 순간 집중하며 지냈다. 한국에서 뭐 먹고살지 고민했다면 라오스에서는 뭘 먹을지만 고민했다. 할 일이 없어서 숙소에 누워있으면 뜬금없는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 기억이 피식하고 웃음 나게 했고, 친구들이 보고 싶어서 연락하기도 했다.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불안 속에 살다가 생각에 틈이 생기니 어떤 걸 좋아하는지 하나 둘 생각났다.

20대 중반, 후반 이렇게 나이 들어도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불안감은 있겠지만, 어쩌면 이 고민은 지금이라서 가능한 고민인지도 모르겠다. 대학교 입학하기 전까지 어쩔 수 없이 공부했고 대학교에 입학해도 시험과 과제로 바빴다. 학교를 졸업하니 생각할 시간이 많아졌다. 그 시간이 때론 어색했고 가끔 불안했지만 당연한 시기라고 생각하면 편해진다. 20대부터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스스로를 괴롭혔던 것 같다. 남들만 날 압박한다고 생각했는데 나 역시 스스로를 압박하고 있었다. 조급함을 내려놓고 아르바이트하다가 하고 싶은 분야가 생기면 도전해 봐야지. 20살 때 학교에 25살 선배가 있으면 나이가 많아 보였고 학교에 다니는 걸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그 나이가 되니 선배의 마음을 알 것 같다. 그때 선배들도 지금의 나와 같은 생각을 했겠지? 지금은 잘 살고 있는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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