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 두 걸음, 삶의 지문이 되다.
때로는 출장으로 때로는 답사로 지난 20년 동안 지구 이곳저곳을 다녔다. 그 여정에서 가장 큰 관심사는 커뮤니티, 지역사회, 공동체였다. 영어로는 하나의 단어로 관통하는 community이다. 이 단어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냥 좋아서다. 이해관계자로서의 인간, 개인주의자로서의 인간보다는 조금이라도 공동체를 지향한다면 모두가 행복해지지 않을까? 인간이 동물인가 아니면 사회적인가라는 질문 앞에 동물보다는 사회적인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커뮤니티에 집착한 듯하다.
도시를 연구하는 날치기 공간사회학자의 알량한 자존심으로 그냥 말없이 삼삼오오 동료와 함께 때로는 친구 또는 가족과 동행했다. 다닐 때는 각자의 시선으로 현장을 보고 현장에서 받은 느낌과 여운은 개인의 몫으로 남겼다. 마음 한 곳에 자리한 여운과 느낌이 흩어지기 전에 무언가 남겨야 할 거 같아 이곳에 삶의 지문과 같은 여정을 사진과 글로 남긴다. 이곳에 남기는 글과 사진은 온전히 나를 위한 또 하나의 여정이다. 깊은 가을밤 가녀린 피아노 선율에 맞추어 울리는 허스키한 중저음의 젊은 여자 가수 노랫소리처럼 깊은 잔잔함을 전하고 싶은 욕심에 시작하는 또 하나의 달달한 글 노동이다.
세계 곳곳을 무작정 걷듯이 다닌 여정들…어느 때부터인가 한 해를 돌아보고 다음 한 해를 위해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그렸다. 그 시작은 거의 하얀 눈 가득한 겨울이었다. 계절의 시작이자 끝이기도 한 겨울은 머지않아 다가 올봄의 전령을 기다리는 기다림의 시간이기도 하다. 겨울은 차가운 시간이기도 하지만 따스함을 가져 올 온화한 시간이기도 하다. 이래서 겨울의 여정은 늘 아름답고 황홀하다.
남들은 말한다. "아니, 북유럽은 해도 일찍 떨어지는데 그 우중충한 곳은 왜 다녀"라고 묻는다. 그냥 웃으며 하얀 겨울, 이쁘잖아라고 답한다. 더운 여름날 광기 어린 관광지보다 우리가 선택 한 곳 그 자체가 우리에게는 호사 스런 일이었고 그 속에서 아슬아슬한 긴장과 재미도 느꼈다, 하얀 눈 내리는 날, 영국 런던에서 스코틀랜드 스카이 섬까지 자가운전으로 대장정을 시작했다. 스카이 섬을 향하던 어느 산등성이 고갯마루에 만난 찰나의 눈의 휘날림에 이어 언제 그랬지라고 하듯 화창하게 뜨고 지고 다시 뜨는 겨울 햇살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하얀 눈발은 가던 길을 멈추게 할 만큼 내 생의 황홀하고 섹시한 풍경이었다. 이탈리아 로마를 시작으로 피렌체, 볼로냐, 밀라노 그리고 알프스 산맥을 끼고 베니스로 향하는 대장정 도중에 알프스 산맥에 쌓인 눈 사이로 비추는 햇빛의 찬란함은 자연이 주는 선물 그 자체였다. 에코뮤지엄을 주제로 독일 뮌헨에서 프랑스 아를까지의 대장정, 하얀 눈 펑펑 내리는 날 겁도 없이 구글 네비만 믿고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던 미주의 여정도 깊은 여운으로 남아 있다.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출발하여 캐나다 토론토를 지나 퀘벡 그리고 다시 뉴욕으로 이어진 여정은 지금도 내 삶에 깊이 새겨진 지문이다. 여정 중 눈앞에 펼쳐진 자연의 파노라마는 가던 길을 멈추게 했고 그런 상황이면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아무 말없이 취하기 일쑤였다. 캐나다 토론토를 지나 퀘벡으로 향하던 야간 운전 중에 만난 블루문은 잊지 못할 장관이다. 이렇듯 지난 시간 켜켜이 쌓아온 여정은 늘 황홀한 순간의 연속이었다.
지난 시간 다닌 여행지는 마음에 그린 그림 같은 것이었다. 그 그림을 사진과 글로 세상에 내놓는다. 첫 시작이 영국편이다. 부끄럽고 두렵지만 나를 위한 기록으로 남기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