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_잡학스런 공동체이야기
13_잡학스런 공동체이야기
아리스토텔레스 공동체론
인간은 본성적으로 공동체적 존재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인간을 “정치적 동물”(zoon politikon)이라고 불렀다. 인간은 혼자서는 본래의 성품을 온전히 드러낼 수 없으며, 반드시 공동체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의미다. 그에게 공동체(코이노니아, koinonia)는 단순한 집합체가 아니다. 그것은 자연이 지닌 목적(텔로스, telos)을 실현하는 살아 있는 결합체, 곧 유기체적 구조였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렇게 본 이유는 인간이 말과 이성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단순히 함께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정의롭고 선한지를 서로 이야기하고 결정할 수 있다. 그는 이러한 토론과 판단의 과정을 통해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인간다운 삶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공동체는 단순히 모여 사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이 가치와 생각을 나누며 더 나은 삶을 함께 만들어 가는 유기적 공간이다.
가정(oikos): 공동체의 시작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가정은 공동체의 가장 작은 단위였다. 남녀가 만나 생활을 꾸리고 자녀를 낳으며 생존을 이어가기 위해 만들어진다. 가정은 의식주를 해결하고 생계를 유지하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사랑과 돌봄, 책임과 질서를 배우는 최초의 장이다. 그러나 가정은 생존의 필요를 충족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정의나 덕을 논하고 정치적 삶을 실현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따라서 그는 가정을 더 큰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으로 보았다.
오늘날로 치면 가정은 소규모 자급적 생활 단위와 연결된다. 도시 농업, 텃밭 가꾸기, 에너지 절약형 주택 같은 생활 실천은 가정 단위에서 이루어지는 작은 실험이다. 트랜지션 타운에서도 집 단위에서부터 에너지 절약, 재생 가능 에너지 설치,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같은 실천이 시작된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자연적 필요의 충족 단계와 맞닿아 있다.
마을(kome): 생활 공동체의 확장
여러 가정이 힘을 합쳐 필요를 채우고 안전을 지키면 마을이 형성된다. 마을은 혈연, 혼인, 우정 같은 유대 관계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며, 가정만으로는 할 수 없는 기술의 분업, 공동 방어, 교육과 제례 등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마을은 여전히 완전한 공동체가 아니다. 물자와 제도, 문화적인 부분에서 외부에 의존해야 하고, 법과 제도를 토론하고 결정하는 정치적 공간으로 기능하기에는 부족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을을 도시국가로 가는 중간 단계, 즉 생활 공동체이자 정치 공동체의 준비 단계로 보았다.
오늘날의 마을 공동체, 협동조합, 지역 네트워크는 이와 닮아 있다. 예컨대 공동체 태양광 발전소, 지역 화폐, 공유 공간(community hub) 같은 시도는 개별 가정이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를 마을 단위에서 해결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현대의 마을 공동체 역시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적한 것처럼 정치적 완결성을 갖지 못한 채, 더 큰 체계와 연결되어야 하는 한계를 지닌다.
도시국가(polis): 완전한 공동체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의에서 마지막 단계는 여러 마을이 결합해 형성되는 도시국가(polis)이다. 그는 도시국가를 “완전한 공동체(koinonia teleia)”라고 불렀다. 도시국가는 인간이 자연스럽게 도달해야 할 최종 단계이자 본성을 완성하는 자리이다.
도시국가의 완전성은 단순한 규모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급자족이 가능하고, 공동선을 추구하며, 시민들이 정의와 덕을 실천할 수 있는 제도적·공간적 조건을 갖췄을 때 실현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러 마을이 하나의 완전한 공동체로 모여 자족적인 삶을 살 수 있을 때, 비로소 국가가 생겨난다”라고 강조했다.
여기서 시민들은 단순히 생존을 위해 모이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지를 함께 논의하고, 법과 제도를 만들며, 정의를 실현한다. 도시국가는 인간이 ‘좋은 삶’을 실현하기 위한 자연적 귀결이자 목적 공동체이다.
현대의 트랜지션 타운도 이와 비슷한 목표를 지향한다. 에너지, 먹거리, 경제, 문화 영역에서 지역이 스스로 자립하고 회복력(resilience)을 갖도록 하고, 주민들이 함께 토론하며 지역의 미래를 결정하는 정치적 과정에 참여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도시국가가 좋은 삶을 실현하는 공간이었다면, 트랜지션 타운은 이를 지속가능한 현대적 방식으로 이어가는 실험이라 할 수 있다.
필요에서 목적까지
아리스토텔레스의 공동체론은 단순한 역사적 설명이 아니다. 그는 가정과 마을이 자연적 필요에서 비롯된 공동체라고 보면서, 도시국가는 좋은 삶과 덕을 실현하기 위한 목적 공동체라고 강조했다. 오늘날 생태공동체와 트랜지션 타운도 단순히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구조를 넘어서, 더 의미 있고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목적을 지닌 공동체를 지향한다.
오늘날의 의미와 한계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유는 현대적 시도에 중요한 통찰을 준다. 작은 생활 단위에서 자급과 협력이 이루어지고, 그것이 더 큰 자치적 정치 질서로 확장된다는 그의 구상은 지역 재생과 생태적 전환을 모색하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하지만 그의 이론은 한계도 있다. 고대 그리스의 소규모 폴리스를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현대의 거대하고 복잡한 도시에는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또한 그는 노예제와 여성 배제를 자연의 질서로 받아들였는데, 이는 오늘날의 평등과 인권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따라서 그의 사유는 현대에 맞게 비판적으로 재해석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트랜지션 타운으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마을은 단순히 사람들이 모여 사는 생활의 터전이 아니라, 도시국가라는 완전한 정치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한 필연적인 중간 단계였다. 그는 가정에서 시작된 작은 실천이 모여 마을 공동체를 이루고, 여러 마을이 다시 연결되어 더 큰 사회적 질서를 형성하며, 결국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아간다고 보았다.
이러한 사유는 오늘날 생태공동체 운동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가정은 생활 단위에서의 작은 실천을 통해 출발점을 마련하고, 마을은 협력과 자급을 이루는 중간 단계로서 역할을 한다. 그리고 도시국가는 공동선을 추구하고 정치적 자치를 실현하는 완성된 공동체로 자리한다. 이러한 단계적 구조는 곧 오늘날 트랜지션 타운이 지향하는 지역 기반의 생태적 전환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2천년 넘게 국가와 정치 그리고 행복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책
아리스테텔레스(천병희 번역 / 도서출판 숨)의 <정치학> 꼭 한 번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