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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욕심많은워킹맘 May 06. 2018

3년 만에 '집 대출금 완납'...

맞벌이의 함정에 빠지다

2007년 서른 살 부산 남자와 스물넷 대구 여자가 만나 8개월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콩깍지가 단단히 씐 사랑과 젊음이라는 무기를 혼수품으로 삼아 시댁에서 신혼을 시작했다. 워낙 없이 시작했던 결혼이라 맞벌이 수입으로 알뜰살뜰 저축했고 양가 어른들 도움 없이 둘의 힘으로 결혼 1년 만에 내 집 마련에 성공했다(부산 외곽 아파트라 전세가와 매매가 차이가 별로 없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내 집 마련으로 인한 대출금 신청을 하고 서류 작성을 하던 날, 대부계 은행 직원이 우리에게 '젊은 신혼부부인데도 일찍 내 집 마련에 성공했다'며 축하 인사말을 건넸다. 하지만 그 말이 마치 '너희는 이제 신용불량자야'라는 메시지로 들렸다. 

인생에 가장 큰 쇼핑이라는 집 구입은 우리들의 결혼만큼이나 무모하지 않았나 싶다. 일찍 결혼했고, 일찍 내 집 마련을 했던 터라 같은 처지인 지인들에게 어디 고민을 터놓을 곳도, 말할 곳도 없었다. 주위에 먼저 경험한 선배가 없었다. 오직 재테크 도서가 전부였다. 당시 집값의 66%를 대출받은 것인데, 평생을 채무자로 살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스물다섯 살 여자와 서른 한 살 남자는 참으로 어리고 겁 많은 신혼부부였다.

  내 집 마련 후 2달 반 만에 큰 아이가 태어나 계획에도 없던 외벌이가 되었다. 나는 두 달에 한 번씩 남편 보너스가 나오면 중도 상환 수수료를 물어가면서까지 대출금 갚기에 안간힘을 썼다. 그렇게 대출에 대한 부담감을 없애려고 아등바등 살았다. 나를 위한 꾸밈비라는 것은 잊은 지 오래였고 미혼인 여동생에게 매번 옷을 물려 입었다. 그렇게 나를 잊고 지금의 행복을 유보하면서 대출금 갚기에만 몰두했었다. 큰 아이가 생후 24개월이 지난 후 맞벌이를 시작해 내 집 마련 3년 반 만에 대출금을 모두 갚았다.

그때 알았다. 대출금이 없는 내 집이 있다는 것이 그렇게 큰 행복이 아니라는 것을. 대출금을 갚기 전과 후 모두 우리 집이었고, 달라진 게 없었다. 우리는 그동안 대출금의 노예로만 살았다는 기억밖에 없었다.

'욜로족'처럼 살았는데... 남편 월급이 끊겼다

            

▲  "대출금은 온전히 다 갚은 그 날 이후 캠핑 여행을 시작했다.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을 다 누렸던 것 같다." 

ⓒ unsplash



대출금은 온전히 다 갚은 그 날 이후 캠핑 여행을 시작했다.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을 다 누렸던 것 같다. 마치 신혼 3년 동안 아등바등 살았던 과거를 보상이라도 받겠다는 심산으로 걱정 없이 살았다. 요즘 유행하는 '욜로(YOLO)족'이었던 셈이다. 

더 이상 미래의 목표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유보하고 고달프게 살지 않고 싶었다. 지금 여기서 당장 행복을 선택해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변화했다. 결혼기념일이라는 핑계로 남편에게 명품 백과 지갑을 선물 받았고, 새 차도 뽑았고. 새 아파트도 분양받아 입주했다. 맞벌이라는 핑계로 외식도 자주 했고, 일 년에 두 번씩 해외여행을 다녔다. 사교육만 안 받는다뿐이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교재와 교구들을 사고 있었다. 

신혼 후부터 7년을 써온 가계부는 둘째 낳고 흐지부지해졌다. 돈이 어디로 어느 만큼 흘러가고 들어오는지 전혀 가늠되지 않았다. 21일 습관법, 66일 습관법은 사실상 중요하지 않다. 7년을 써온 가계부도 손 놓으면 올이 풀린 진주 목걸이처럼 어느샌가 풀어지고 만다. 습관이라는 것은 형성되기도 쉽고 무너지기도 쉽다. 

국민연금연구원은 지난 2016년 자녀가 있는 부부 가구를 맞벌이와 홑벌이로 구분해 소득 분위별로 저축 실태의 차이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전체 생애를 통틀어 총저축액과 저축 비율에서 홑벌이가 맞벌이보다 높거나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중간 소득 수준인 3분위 기준). 맞벌이와 외벌이의 저축액에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나 역시도 오히려 아이를 낳고 외벌이로 살았던 2년간의 시절에 더 많이 대출금을 상환했고 아껴 살았다. 신혼 시절 대출금의 노예로 살았던 흑역사의 기억이 지금은 풋풋한 추억이 되었다. 만 원의 행복을 느낄 줄 알았고, 한 달 가계부를 들여다보며 식비와 경조사비가 많이 나간다는 것에 한숨을 쉴 줄도 알았으며, 줄어드는 대출금 잔액 숫자를 보며 뿌듯해했던 기억이다.

몇 년 전부터 일본에서 시작된 미니멀 라이프, 심플 라이프가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별 감흥 없이 지냈던 터라, 비움의 행복을 체감하지 못했다. 요즘에는 김생민의 영수증을 접할 때마다 '이제 나는 이렇게는 못 살아'라고 단념했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마흔 춘기를 앞둔 남편이 몹시 방황하더니 13년 6개월을 다닌 평생직장과도 같았던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결혼 생활 10년 동안 단, 하루도 지연된 적 없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25일이면 입금되었던 남편의 월급이었다. 

이제는 칼같이 입금되던 남편의 월급은 없다. 마흔에 사업을 시작한 남편의 수입은 이제 들쑥날쑥 예고도 없이 입금되고, 무입금되는 달도 생겼다. 욜로족의 달콤한 환상에서 벗어나 현실을 보았다고 해야 할까? 

이렇게 사는 게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솝우화의 개미와 베짱이 중, 베짱이의 삶이 지금 우리의 모습 아닐까 싶었다. 지난 시절, 젊음과 사랑으로만 혼수로 시작한 우리는 이렇지 않았는데 말이다. 

이렇게 살아서는 우리의 미래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미래도 보장이 없었다. 10년간의 삶이 변함없었다고 해서 앞으로의 우리 미래가 변함없으리라고는 아무도 보장하지 못한다. 바뀌어야 했다. 아니, 바뀌어야만 한다. 조금 더 일찍,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미래를 대비했더라면 이렇게 공허하지는 않을 텐데… 지금부터라도 바뀌어야 한다. 

'냉파'가 우리 가족에게 남긴 것

            

▲  가계부(자료사진) ⓒ 조영주



저축과 절약을 위해 아래와 같은 도전을 시작했다.

1. 일일 식비 △000원, 별도로 저축하기
2. 지출 안 한 날은 달력에 '참 잘했어요' 도장 찍기
3. OK캐쉬백 포인트 적립하기
4. 신용카드 할인 혜택 제대로 파악하기
5. 냉장고 파먹기 (외식은 금, 토, 일 중으로 한정)
6. 가계부 일주일에 한 번씩 기록하기
7. 냉장고 문짝에 구비된 음식 목록 체크

지금 우리는 뭐가 잘못됐는지 하나하나 찾아보니, 현재는 신용카드 할인 혜택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냥 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사용하는 신용카드는 유류 할인과 커피 할인이 돼서 미팅과 외근이 잦은 남편에게 적합했다. 그럼에도 반년 넘게 그런 할인 혜택조차 생각하지 않았다. 내 명의로 된 카드고 내 급여 통장에서 빠져나가니까 내가 쓰고 있었다. 신용카드 앞면에다 할인 가능한 혜택을 붙여놓고 내 카드를 남편에게 줬다. 

신혼 때는 OK캐쉬백도 적립해서 5만 원이 넘으면 통장으로 입금해 현금화했는데 언제부터인가 '그거 얼마 된다고'라는 생각으로 아무 생각 없이 버렸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맞벌이의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 

우리 회사는 출근 일수에 맞춰 1일 식비를 6천 원씩 계산해 월급으로 입금된다. 지난달부터 점심시간을 활용해 영어 공부를 시작하면서 점심은 혼자 간단하게 해결하고 있다. 식비가 들어가지 않는 셈이다. 그런 날에는 식비를 아낀 만큼 통장 지갑에 6천 원씩 저금하고 있다. 이렇게 식비를 아낀 날에 저금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마치 흡연자들이 금연 선언을 하고 담뱃값을 저축하는 기분이 이런 걸까? 식비를 절약한 금액으로 ETF(상장지수펀드) 투자를 시작했다. 

냉장고 파먹기를 일명 '냉파'라고 줄여 말한다. 냉파를 실천하는 요즘, 자연스럽게 집밥을 자주 먹게 되고, 냉장고 안이 많이 간소해졌다. 냉장고가 텅텅 비어있는 요즘은 삶의 방식도 많이 변화됐다. 음식물로 가득 찬 냉장고가 아니라서 냉장고 안에 무엇이 있는지 머릿속에서 바로 스캔이 될 정도다. 

구운 김이 냉동실에 있는데도 생각 못 하고 시장에서 또 충동구매한다거나, 집에 배달 음식으로 먹다 남은 통닭이 있는데 또 마트에서 통닭을 또 구입하는 불상사도 덕분에 없어졌다. 이전에는 냉장고가 꽉 차 있어서 뭐가 있는지, 뭐가 없는지를 일일이 파헤치지 않으면 몰랐다. 심플해진 냉장고 덕분에 소비도 심플해졌다.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하는 요즘, 소비도 단조로워지고, 삶도 단순해지는 것을 우리 집 식문화에서부터 느낀다. 텅텅 비어있는 냉장고를 볼 때마다 가슴이 뻥뻥 뚫리는 것 같아 몇 번이고 냉장고를 열어보기도 한다. 결혼한 지 10년이 지나도록 요즘처럼 냉장고를 이렇게 단조롭게, 단순하게 유지시킨 적이 없었다. 냉장고 정리를 할 때면 먹다가 안 먹는 반찬들은 모조리 다 꺼내서 버리는 게 냉장고 정리의 첫걸음이었는데 요즘은 냉장고가 텅텅 비어서 버릴 반찬조차 없다. 

남편에게도 선전포고했다. 십 년 전 '짠순이' 새댁으로 돌아갈 거라고. 다행스럽게도 남편은 요즘 나보다 더 알뜰히 마트에서 장을 본다. 신혼 시절 우리로 돌아가기라도 한 것처럼 알콩달콩 맛있는 것을 해 먹고, 만원의 행복을 느끼고 있는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 집밥 먹는 횟수가 잦아지면서 건강한 식탁이 늘 함께하고 잘 먹는 두 아들을 보면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른 느낌이 든다. 

일하느라 아이들에게 부족한 손길을 대신한다는 핑계로 기념일에 으레 장난감이나 교구를 사줬던 소비 패턴도 달라졌다. 아직 산타 할아버지가 있다고 믿는 두 아이의 동심을 파괴할 수는 없어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했다. 큰 아이는 요즘 색종이로 한창 종이접기에 빠져있어서 만 원짜리 종이접기책을 준비했고, 작은 아이에게는 학습의 재미를 높여주는 만 원짜리 액티비티 학습지를 구입했다. 

            

▲  "집밥 먹는 횟수가 잦아지면서 건강한 식탁이 늘 함께하고 잘 먹는 두 아들을 보면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른 느낌이 든다." ⓒ unsplash



작은 실천, 작은 행동 하나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뿌듯함을 느낀다. 신혼 때는 대출금의 노예로 살았다고 느꼈지만 지금은 어디론가 새고 있는 돈 구멍을 막고 있는 기분이랄까? 과거에는 '절약'이라는 중심 키워드로 인생을 살았다면 지금은 '자제력'을 훈련하는 인생이다.

맞벌이의 함정에서 벗어나 절제를 즐기는 나의 새로운 삶을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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