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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욕심많은워킹맘 May 13. 2018

엄마를 입었다고 여자를 벗지 말자

남편이 출근할 때 입을 옷이 없다며 백화점을 방문했다.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남성 매장 옷이 아니라 화려하고 화사한 색깔의 여성 옷이었다. 지금은 겨우내 칙칙한 어두운 색상에서 봄이 왔음을 알리는 밝은 색상이었다. 여성복 매장에서 봄이 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남편이 탈의실에서 옷을 바꿔 입는 사이 내가 예쁜 옷을 몇 번이나 만지작거렸을까? 그런 내 모습을 본 남편이 마음에 들면 사라고 권하지만 망설임도 잠시 이내 뒤돌아서고 만다. 이렇게 예쁜 옷을 구입해도 일 년 중 몇 번이나 입어볼까? 막상 옷장에서 고이고이 잠들어있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과연 내가 이 옷을 입고 외출할 일이 몇 번일까, 결혼식이나 돌 잔치 때나 겨우 꺼내 입을까, 본전도 찾지 못하는 충동구매라며 애써 얼버무리며 남편에게 어울리는 옷을 봐준다.

     

가끔 은행을 방문할 때는 창구 직원의 옷차림새를 빤히 쳐다보게 된다. 화려한 손톱과 깔끔한 손목시계를 액세서리용으로 차고 있는 모습을 보면 어찌나 당당하고 멋져 보이던지. 자신을 예쁘게 꾸민 모습이 내게는 너무나도 당당한 여성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노라면 아름다움과 추함을 떠나서 나 자신을 돌보지 않고 방치한 느낌이 든다. 거울에 비친 서글픈 내 모습이 마치 아픈 사람처럼 핏기가 하나도 없다. 그렇지 않아도 기운 빠지는데 밋밋한 나의 얼굴은 더욱 초라하게 보인다. 이런 날이면 길을 걷다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왜 그렇게 민망한지 서둘러 인사를 하고서 황급히 자리를 이동하기도 한다.

     




예전 직장에서 초등학생 두 남매를 키우면서도 매일 아침 화려하게 화장을 하고 출근하는 40대 선배가 있었다. 출근 전 두 아이를 등교 준비하는 것도 바쁠 텐데 매일 아침 예쁜 메이크업으로 완벽할 만큼 나서는 선배가 대단해 보였다. 아침이면 정신없이 바쁠 시간에 매일 아침 그렇게 준비하고 나서는 일이 힘들지 않냐는 나의 질문에 그녀의 대답은 이렇게 했다.

     

아침에 당연히 정신없지. 그런데 이렇게 화장을 하고 차려입고 집을 나서는 그 순간부터 기분이 좋아. 하루 중 내 얼굴을 가장 많이 들여다볼 사람이 나잖아. 나를 위해서 화장하는 거야. 화장도 옷도 내 마음에 들도록 꾸미고 가꾸는 거니까 나를 위한 관리고 나를 위한 화장이야. 그리고 몸가짐에 마음 쓰는 만큼 마음가짐도 달라져.”

     

선배의 대답은 내 뒤통수를 칠만큼 왜 나를 예쁘게 가꿔야 하는지의 본질을 깨닫게 했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나는 남에게 잘 보이려고 아니, 남에게 민낯을 보이기 부끄러워서 체면치레 화장을 했었다. 선배 말처럼 나는 그동안 남을 위한 화장을 한 셈이다. 그래서 출근 전 화장하는 시간이 귀찮고 번거롭게만 생각했었다. 그러니 집에 있으면 나태해진 모습으로 늘어져 있었고 밖에 나갈 때도 오늘은 귀찮다며 민낯에 모자만 대충 눌러 쓰고 나서는 일이 태반이었다. 누구를 위한 행동이냐에 따라 하기 싫은 숙제가 되고 반대로 나를 위한 축제가 되기도 한다.

     

둘째를 낳고 육아 휴직 기간에 일부러 화장했다. 남들은 아이에게 묻으면 좋지 않다며 스킨 조차도 마다한다지만 나는 나를 위해서 화장했다. 아들 둘을 키우느라 피폐해진 삶에서 단 10분 만이라도 나를 챙길 여유를 갖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아이를 안고 보듬느라 예쁜 옷을 입는 건 불편했고, 모유 수유하느라 수유 티셔츠가 가장 편한 옷이 되었다. 어느 날 문득 양치질하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자, 눈가의 주름과 피어오르는 기미로 푸석해진 피부를 가진 맞은편에 있는 여자가 참 낯설다. 거울에 비친 여자가 영락없는 아줌마로 보이는 건 한순간이구나 싶었다. 이렇게 나를 무관심하게 바라보고 살았다는 건 인정해야 했다. 내가 봐도 이렇게 기운 없는 모습인데 남편이 보기엔 오죽할까 싶어 처음에는 남편 퇴근 시간에 맞춰 미리 화장했다. 남편이 퇴근해서 집에 도착하기 전, 낮에 마치 약속이 있었던 듯 예쁜 옷을 입고 화장을 했다. 그런 날에는 "오늘 어디 갔다 왔어? 예쁘네. 오늘 저녁은 집에 있기에 아까운 날이네. 나가서 저녁 먹자"라는 말이 그렇게도 좋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남편 퇴근 시간에 맞춰서 하던 화장에서 이제는 아침 일찍부터 예쁜 화장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선배의 말처럼 이제는 진짜 나를 위한 화장이 시작되었다. 흐릿한 눈매가 또렷해지고 생기 있어 보이는 입술이 되자 '아줌마'가 아니라 '여자'로 살아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남들에게 인정받은 예쁨이 아니라 스스로를 토닥토닥 챙겨주는 느낌이 나를 사랑하도록 만들었다.

     

어느 육아서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신의 외모에 대한 이미지가 자아 존중감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자아 존중감은 자신의 능력과 가치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와 태도를 의미하는 심리학적 용어다

.

여기서 자아 존중감은 남이 보는 내가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에게 느끼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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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존중감을 통해 내면에서 자신감이 커지면 그것이 고스란히 외모에 반영된다

.

바꿔 말하면 자아 존중감이 높은 사람은 자신을 관리할 줄 알고 가꿀 줄 안다는 뜻과 같다

.  

     

나는 출근 전, 매일 아침 나를 위한 화장을 하고 되도록 예쁜 옷을 입고 나선다. 그리고 보기에 조금 더 편하고 예쁜 구두를 꺼내 현관문을 나선다. 출근 후 업무 중에도 종종 사무실 책상 위에 놓인 탁상 거울의 비친 내 모습을 들여다본다. 선명한 눈매와 뚜렷해진 이목구비를 다시 한번 체크한다. 살짝 미소를 지으며 거울을 쳐다보는 기분은 일하면서 예쁘게 가꾼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된다. 마치 예쁜 꽃이 따사로운 햇빛을 보는 것처럼 주기적으로 거울을 보며 광합성 작용을 한다.

     

예쁜 꽃도 무관심하게 버려두면 잡초가 되고, 물을 주고 햇볕으로 광합성 작용을 하면 아름다운 꽃이 된다. 나도 가꿔야 내가 사랑하는 내가 된다. 세상에서 내 얼굴을 가장 많이 들여다보는 사람은 바로 나이니까 말이다. 남에게 보기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나의 만족을 위해서 출근길에 나를 위한 시간 투자를 하는 것! 매일 아침 나를 사랑하는 또 하나의 비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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