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욕심많은워킹맘 May 27. 2018

여자는 강하다. 그래서 남편이 필요해

퇴근한 남편이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큰일 났다! 이리 와봐.
회전 책장이 무너지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컴퓨터 방에 있던 내 책장이 휘어지기 시작했다. 안방에 있는 흰색 회전 책장은 남편이 조립할 당시 끼워 넣는 곳에 순간접착제로 붙여서 고정했었다. 남편과 주말 부부로 지낼 당시 혼자서 조립한 오크 색 회전 책장은 접착제 고정도 없이 단순 조립만 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책의 하중을 견디지 못해 가이드 나무가 휘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밑판이 고정되지 못해 빠지기 시작한 회전 책장을 남편이 발견했다. 그러자 남편이 공구를 들고 와 대거 보수 공사를 시작했다. 맥가이버 남편이 내게 지시한 임무는 일단 회전 책장에 있는 책들을 모조리 다 꺼내놓기만 하면 된다는 지시에 시키는 대로 책들을 모두 꺼내놓았다.

연장 공구 박스를 꺼내 튼튼하게 직접 보수 작업을 하는 남편의 널찍한 등짝을 보고 있노라니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집에는 남자가 있어야 해’



남자의 존재만으로도 풍기는 든든함이 절로 느껴진다. 남편의 든든한 능력으로 이제 제아무리 책장 밑판을 꺼내고 흔들어도 끄떡없이 튼튼한 책장으로 재탄생되는 순간이었다. 

사실, 남편은 집에 책이 많은 걸 탐탁지 않았다. 큰아이의 책이 거실에도 벽 한 면을 차지하고, 아이 방에도, 심지어 거실 복도까지 점령하고 있으니 답답하다며 싫은 기색이 역력했다. 거기에 합세에 나의 책까지 컴퓨터 방을 차지하고 거실 복도 큰아이 책장 위로 또 쌓여가니 책을 비워내라고 버릇처럼 말해왔다. 하지만 이제 다섯 살 어린 동생도 있으니까 곧 막내아들도 읽을 날이 온다며 꿋꿋하게 나의 신조처럼 책을 정리하지 않았다. 남편이 아무리 이 많은 책에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고 하지만 무너져가는 아내의 책장을 보고서 바로 응급 보수 작업을 해주는 든든한 남편이다.



며칠 전, 큰아들이 자전거를 타고 싶다고 해서 가족 모두 집 앞 공원을 산책했다. 그러던 중 남편이 내게 인터넷에서 어느 글귀를 발견했는데 너무 와 닿더라며 말을 건넨다.



어느 교수가 한 여자한테 절친한 사람 20명을 적어보라고 했대.

그래서 여자는 가족, 친구, 이웃, 동료 등 20명의 사람을 적었는데

교수가 그중에서 버려야 한다면 한 사람을 지우라고 해서

여자는 이웃을 지우고

또 그다음에는 회사 동료의 이름을 지우기 시작해서

이제는 남은 사람이

부모, 남편, 아이만 남아 있게 되었대.

여자는 망설이다 부모 이름을 지웠고

그 후에는 아이 이름을 지우고 펑펑 울었다네.

마지막에 남편을 남겨 놓은 이유가

시간이 흐르면 부모도 나를 떠날 것이고

아이 역시도 언젠가는 나를 떠날 것이고

하지만 일생을 나와 같이 지낼 사람은 남편뿐이라고 말했다네. “




사실,  얼마 전 집안일로 관련해서 우리 부부는 서운한 일이 있었다. 그 일은 오히려 우리는 서로를 더 위로해주고 다독거려줬다. 예전에 나는 내 마음만 생각하기 급급했다. 내 입장만 생각했고 이 중에서 내가 제일 속상하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이 남자의 뒷모습을 10년 가까이 보고 살다 보니 문득 이 사람의 얼굴과 마음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 사람 마음은 어떨까? 

이 사람 마음은 더 힘들지 않을까?

이 사람은 얼마나 서운할까?

그러니 내 마음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있을 수 있었다. 서로의 입장에서 서로를 더 이해해주고 헤아려줄 수 있었던 일이어서 외롭지도 서글프지도 않았다.

이제는 조금씩 나이 들어가는 걸까? 



여자의 인생에 있어서 진정한 내 편은 나 자신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정말 소중한 사람은 남편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내 인생의 평생 동반자는 큰아들 도 아니요. 둘째 아들도 아니요. 오직 내 남편뿐이라. 





흔히 자식 농사가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자식 농사보다 더 중요한 건 부부 농사가 아닐까? 주위에 중년 부부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자식을 올곧고 바르게 키우는 부모들은 신기하게도 금슬도 좋다. 사춘기의 방황으로 급격한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아이들을 보면 그 부모의 금슬도 좋지 않다. 얼마만큼 돈을 모았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얼마만큼 부부 농사를 잘 지었느냐의 결과가 훤히 보이는 삶의 모습이었다. 비록 풍족한 형편은 아니지만 부부 농사가 잘 된 집은 아이들도 성실하게 공부하고 자기 할 일을 찾아 스스로 인생을 개척해나가고 있고 부부 농사가 잘 안된 집은 자식들의 삶도 순탄하지 못하다. 오직 내 아이 잘 키우려고 아등바등하며 사는 것보다 내 옆에 부부라는 이름으로 함께 하는 남편에게 더 마음을 주고 이해하는 공감이 필요하다는 깨달음이 생긴다. 



내가 좋아하는 김재용 저자의 《엄마의 주례사》에서 와 닿는 글을 기록해본다.



“태평농법은 자식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라 부부 농사에도 꼭 필요해.
사람들은 자식 농사에 더 많이 신경 쓰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부부 농사야. 
자식은 알게 모르게 부모를 보면서 배우고 닮아간대.
그래서 부부가 행복한 모습으로 살아가면 자식도 자연스럽게 행복하게 사는 법을 배우게 되지. “
가정의 중심은 부부여야 해.
부부관계가 나쁘면 자식 농사를 잘 지었다 해도 별로 행복하지 않아.

《엄마의 주례사》- 김재용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