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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백설장 11화

백설장 11

- 제발 불을 꺼

by 이도원

한 커플이 들어온다. 남자는 주위를 연신 두리번거린다. 사십 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남자는 턱이 날카롭고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다. 나무꼬챙이처럼 형편없이 마른 몸을 가지고 있는 남자는 마치 발에 쇠붙이를 차고 있는 듯 좀처럼 걸음을 떼지 못한 채 현관 입구에 서 있다. 남자는 벽 쪽에 붙어있는 침대를 발견하고는 입술을 굳게 깨문다. 황금색 띠가 오늘의 첫 손님을 영접하듯 이불의 삼분의 일쯤 되는 곳에 장식되어 있다. 그러나 남자는 침대 근처는 가지도 않겠다는 듯이 연신 불안한 눈동자를 굴리며 서 있다. 남자를 따라 들어오던 여자가 그런 남자를 보고 싸늘한 미소를 짓는다. 남자는 여자가 자신을 비웃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저 서 있을 뿐이다.

여자는 남자를 지나쳐 침대 가장자리에 털썩 걸터앉는다. 다소 경박한 느낌의 여자는 아이처럼 두 다리를 위아래로 흔든다. 남자의 불안함을 없애줄 요량인지, 마치 여관방의 침대가 아니라 자신의 집 안방에 있는 침대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여자는 침대를 손바닥으로 탁탁 치며 남자에게 앉으라는 시늉을 한다. 남자는 그런 여자의 시선을 외면하고 침대에 앉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표정으로 방 한가운데에 그저 서 있을 뿐이다.

여자는 흥 콧소리를 내며 남자에게서 시선을 돌려 내 쪽을 빤히 바라본다. 예쁘지도 못나지도 않는 평범한 용모의 여자는 내게 비친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드는지 싱긋 웃어 보인다. 그제야 남자도 여자를 따라 내 쪽을 본다. 그러자 남자의 표정은 눈에 띄게 굳어진다. 거울에서 비친 자신의 모습을 믿고 싶지 않다는 표정이다. 여자의 여유 있는 미소와는 대조적으로 남자는 아예 울상을 짓고 있다. 여자는 남자의 불안감을 해소시켜 주려는 듯 탁자 위에 놓인 하얀 수건을 내 쪽으로 가져와 가려버린다.

나는 캄캄한 어둠 속에 갇히고 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젠 됐지요? 걸리는 게 없지요?”

여자의 조롱 섞인 목소리가 들려온다. 남자는 대답하지 않는다. 이윽고 여자가 옷을 벗는 소리가 들려오고 남자가 헛기침을 하며 욕실로 들어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또 씻는 거예요? 좀 전 모텔에서도 씻었잖아요.”

남자는 여전히 대답이 없다. 여자가 침대 위에 벌렁 드러눕는지 스프링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오고 이내 텔레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바꾸는 소리가 난다.

“근데 여긴 왜 이렇게 가정집처럼 보이는 거지? 저 거울도 그렇고. 정말 청승스럽네. 이렇게 집처럼 꾸미면 어떻게 사람들이 섹스에 집중할 수 있을까.”

여자는 투덜거리며 연신 채널을 돌리고 있는 것 같다. 포르노 채널을 돌렸는지 판에 박힌 여자의 교성과 신음소리가 섞여 들려온다.

“꼴에 그래도 갖출 건 다 갖췄네.”

그러나 여자는 이내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렸는지 더 이상 신음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윽고 샤워를 마친 남자가 욕실에서 나오는 듯 인기척이 들려온다.

“참내 가운을 입으려고요?”

여자가 핀잔 투로 말한다. 남자는 벽에 걸린 하얀 가운을 입으려고 했던 것일까. 하얀색의 남녀 두 개의 가운은 그저 전시용으로 걸려있을 뿐 어느 누구도 걸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다. 나는 여자가 덮어놓은 수건 때문에 가운을 입은 남자의 모습을 보지 못한다. 나는 그 가운이 남자의 피부색을 더욱 창백하게 만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불을 좀 끄면 안 될까?”

“참내 왜 이렇게 까다로우실까? 알았어요. 알았어.”

이제 완전한 암흑이다. 그나마 수건 사이로 보였던 엷은 불빛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얼마나 지났을까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가쁜 숨소리가 들려온다.

“왜 이리 서두르실까?”

“시간 없어.”

“그러니까 시간을 허비한 사람이 누군데요. 당신 때문에 두 군데나 들어갔다가 그냥 나오는 바람에 이렇게 되어버렸잖아요. 할 수 없어요. 나도 이제 좀 씻어야겠어요.”

여자는 남자를 약 올리듯 톡 쏘아붙이고는 욕실로 들어가는지 발자국 소리가 들려온다. 물소리가 들리고 인기척 하나 없던 침대 위의 남자가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는지 각종 소리들이 섞여 들려온다. 조금 전 포르노 채널에서의 신음소리가 똑같이 흘러나온다. 온몸을 비틀어대며 나른하고 질펀한 소리를 내고 있을 여자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마 남자배우가 여자배우의 성기에 혀를 갖다 대고 있거나 남자가 성기를 넣고 허리를 마구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마치 발정기의 암고양이처럼 앵앵거리는 여자의 신음소리에 남자는 흥분되었을까, 거친 숨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오랫동안 그것을 반복해서 보았으므로 이젠 지겹기까지 하다. 나는 그 소리가 포르노 속 남자배우의 것인지 남자의 소리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 그러자 욕실에서 여자가 나오는지 소란스러워진다. 남자가 서둘러 채널을 돌린 듯 이제 더 이상 신음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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