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도하는 남자
“월풀 시설도 없는 여관은 처음이야. 저 촌스러운 가구 한번 봐요. 구닥다리 같은 저 거울은 또 어떻고요? 요즘 자개로 된 거울을 누가 쓰나? 정말 이 방은 조선시대 한 많은 과부 방 같아 … 하여튼 사서 고생이야”
여자는 툴툴대고 있다가 남자를 향해 불쑥 내뱉는다.
“감상 많이 하셨나 봐요? 얼굴이 왜 그렇게 충혈되었어요?”
“뭘 봤다고 그래? 빨리 와.”
“참내 이제 조급해졌나 보군요.”
“자꾸 시간을 끄니까 그렇지.”
“적반하장이군요. 아, 목말라.”
여자는 남자를 놀릴 심산이 분명했다. 애타게 욕정에 시달리는 가엾은 남자에게 좀처럼 몸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남자는 대꾸를 하지 못한다. 여자가 머리를 말리는지 드라이기 소리가 나고 냉장고 문을 열어 음료수를 꺼내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남자의 얕은 한숨소리가 들려온다.
“왜 이래 정말? 이제 돌아갈 시간이 다 되었잖아. 오늘 나 철야기도 있다는 거 몰라?”
“철야기도라고요? 오늘이라고요? 그럼 왜 날 만난 거예요?”
남자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나저나 밤새 기도한다는 말이에요? 와 독한 사람들이네.”
“독한 게 아니라 그만큼 신앙심이 깊다는 거지. 당신 같은 여자가 어떻게 알겠어?”
남자의 말에 여자가 방안이 울릴 정도로 큰 소리로 웃었다. 여자의 웃음소리는 동물의 울음소리처럼 이상하게 들린다. 남자는 어떤 표정일까 나는 궁금해진다.
“그 웃음의 의미가 뭐야? 뭐가 그렇게 우습다는 거야?”
“몰라서 물어요? 날 보고 신앙심이 깊니 얕니 말하는 당신이 가소롭게 느껴져서요. 철야기도 가기 전에 여자랑 여관에 들어오는 목사님이 신앙심을 말한다는 게 말이 정말 우습네요.”
갑자기 내 쪽으로 가깝게 다가오는 인기척이 들려온다. 여자가 나를 덮었던 수건을 벗긴다. 여자는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감싸고 침대 쪽으로 가고 있다. 남자는 불쾌한 표정으로 침대 끝에 앉아있다. 남자는 입술을 깨문다. 그러나 여자는 그런 남자의 표정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나야 채팅하면서 사내들 낚아 이렇게 여관이나 들락날락하는 여자지만 그래도 당신처럼 이중적이지는 않아요. 여자랑 섹스하고 난 뒤 철야기도라니, 정말 웃겨.”
남자는 참을성이 많은 듯 여자의 빈정거림을 용케 잘 견디고 있다. 남자는 여자를 쓰러뜨려 욕심을 채우기 전까지 인내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남자의 목소리는 잔뜩 잠겨있다.
“그래서 더욱 필요하지. 여자랑 잤으니까. 그것도 당신처럼 믿음이 없는 여자와 잤으니까 회개가 더욱 필요하지.”
“그럼 내가 회개의 제물인 셈이군. 참내, 오늘 여기 오자고 한 건 분명 당신이었어요.”
“누가 뭐래? 빨리 자고 나가자.”
남자는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여자의 젖가슴을 움켜잡았다. 여자가 앙칼진 목소리로 치워요. 그 손, 하며 남자의 손을 뿌리쳤다. 무안한 듯 남자의 얼굴이 붉어졌다.
“어이 목사님 미안하지만 안 되겠어요. 나는 목사라는 직업의 남자는 어떤 맛일까 싶어서 들어온 것뿐이지 죄를 짓는 게 아니에요. 남녀가 눈이 맞아 살 냄새 좀 맡기로서니 그게 무슨 죄가 된다고. 당신의 직업은 이게 죄가 되는 모양인데, 그럼 당신은 죄를 지으면 안 되지요? 죄짓고 회개하지 말고 아예 죄를 짓지 말아요. 이게 당신이 그렇게 섬기는 분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야. 혼자 실컷 회개하시라고. 다시는 채팅 방에 나타나지 마시우. 괜히 다른 여자들 에너지 낭비 시키지 말라고요. 안 그럼 내가 당신의 교회 맨 앞자리에 앉아 당신의 그 잘난 설교를 망쳐줄 테니까. 알았어요?”
여자가 옷을 입고 나가버린다. 남자는 여자를 잡지도 못한 채 그저 침대 위에 걸터앉아 있다. 이윽고 남자의 낮고 웅얼거리는 듯한 기도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남자는 불온한 욕망에 대한 참회를 기도로 풀 셈인가 보았다. 남자의 기도소리는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