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늙은 연인
부쩍 늘어난 대실 회전율에도 불구하고 장사장은 만족하지 않았다. 적어도 하루 3회는 대실이 회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장사장은 옥침대 매트와 물침대가 반반완비 되었다는 현수막을 주위에 걸었다.
현수막을 제작한 남자는 마누라를 데리고 이 방에 들어왔다. 장사장이 현수막 수고비를 깎는 대신 공짜로 넣어 준 것이다. 부부는 모텔이라는 곳에 처음 들어온 사람이었다. 여자는 오랜만에 목욕을 하는지 오랫동안 욕실에서 나오지 않았고 남자는 침대 위에 누워 텔레비전을 질리도록 보았다. 여자는 온몸이 흐물흐물 물러진 채로 나와 냉장고에 있는 음료수를 꺼내 마셨고 그리고 난 뒤에는 침대 위에 걸터앉아 남편의 다리를 주물러주었다. 그들은 그렇게 섹스도 하지 않고 코를 골며 자다가 방을 나갔다.
그렇게 현수막을 달고 시설을 완비했지만 하루 이틀 좀 달라졌을까, 여전히 장사는 이전과 별 다른 점이 없었다. 아마 근처에 있는 러브스토리나 베네치아나 리젠시라는 이름을 단 모텔에 손님이 차고 넘쳐야만 손님이 올 모양이다. 이제 백설장은 경쟁력을 잃었다. 물침대는 물론 최신식 성인용품의 완비, 영화무료상영에다가 무인시스템이 된 주위의 러브모텔을 이길 재간이 없다. 그곳에서 방을 구하지 못한 손님은 모래알을 삼킨 표정이 되어 백설장으로 들어온다. 한 때 이 도시에서 가장 유명했던 이곳은 이제 녹슨 놀이기구와 비닐로 만든 휘장 아래 조악한 인형을 맞추는 공기총 놀이로 주말 한 때를 보내는 가난한 연인들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 낡은 백설장 여관을 가장 많이 애용하는 사람은 노인과 이 방에 추억이 있는 사람들, 그리고 가난한 연인들뿐이다. 하지만 하릴없이 공원 안을 배회하는 노숙자와 가난한 연인들에게 백설장은 여전히 오아시스 같았다. 바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세상은 다 못 둘러보아도 포근하고 따스한 여자의 몸속으로는 들어가 보고 죽고 말리라, 하는 소원을 품은 늙은 남자와 그 늙은 남자가 주는 구겨진 지폐로 손자에게 줄 과자를 사기 위해 들어오는 늙은 여자뿐이다. 그들은 죽음을 기다리며 마지막 몸부림을 이곳 백설장에서 불사르고 있다. 이들 남자와 여자가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남자는 마지막까지 생을 탕진하기 위해 들어오고 여자는 마지막까지 남자를 돕기 위해 들어온다는 것이다.
가난한 연인들은 저렴하며 전망 좋고 인심 좋은 신여사가 있는 이곳 백설장에 들어와 저렴한 사랑을 나누고 간다. 그들은 여관이라는 곳에 들어와 사랑을 나눠야만 하는 신세에 대해 불만을 이야기하였다. 여자는 남자가 하루빨리 돈을 모아 집을 사고 그 집의 푹신한 침대에서 사랑을 나누고 싶다며, 온갖 사람들이 다 뒤엉켜 누웠을 이런 더럽고 누추한 곳에서 사랑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자신을 비참하게 만드는지 아느냐고 남자에게 따졌다.
“이제 더 이상 다른 남자의 정액냄새는 맡고 싶지 않아.”
여자는 남자에게 소리 질렀다. 남자는 미안해. 미안해, 하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이들이 결혼을 하여 안정된 집에서 사랑을 나누게 되면 곧 얼마 지나지 않아 각자 다른 상대와 그 훌륭한 침실을 놔두고 다시 이곳으로 들어오게 될 것이라고. 그들은 사랑을 찾아 이곳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가족과 일부일처제이고 그들의 신념대로 그런 윤리는 불륜을 통해서 견고해졌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가족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곤 하였다. 남자는 늙은 부모와 함께 사는 한 부부간의 섹스가 만족스럽지 못하며 게다가 돈만 밝히는 아내하고 성교를 하는 것에 권태를 느꼈고 여자는 자신의 몸을 덮치는 남편에게서 더 이상 수컷을 느끼지 못했다. 그들은 어떻게든 애정을 복원시킬 요량으로 이곳으로 들어와 미지근한 살을 비비며 영원히 당신만을 사랑해, 하고 나가지만 그때일 뿐, 얼마 지나지 않아 인생 뭐 별거 있냐. 하며 다른 상대와 뒹굴고 갔다. 다시는 이곳에 들어오나 봐라, 하며 호기를 부리고 나가던 사람들일수록 여기 이곳으로 더더욱 빨리 되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