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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용선 Sep 02. 2019

공광규 시 ‘무량사 한 채’

형용할 수 없어서 더욱 아름다운 말

오랜만에 아내를 안으려는데

"나 얼마만큼 사랑해?"라고 묻습니다

마른 명태처럼 늙어가는 아내가

신혼 첫날처럼 얘기하는 것이 어처구니없어

나도 어처구니없게 그냥

"무량한 만큼!" 이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무량이라니!

그날 이후 뼈와 살로 지은 낡은 무량사 한 채

주방에서 요리하고

화장실서 청소하고

거실에서 티브이를 봅니다

내가 술 먹고 늦게 들어온 날은

목탁처럼 큰소리를 치다가도

아이들이 공부 잘하고 들어온 날은

맑은 풍경 소리를 냅니다

나름대로 침대 위가 훈훈한 밤에는

대웅전 꽃살문 스치는 바람 소리를 냅니다.  



      

  부부간의 사랑은 당연한 것이다, 하는 생각은 불행히도 당연하지 않다. 그래서인지 어느 집에서나 “당신 나 얼마큼 사랑해?”라든지 “당신, 나 아직도 사랑해?” 따위 질문과 그에 대한 다양한 대답이 존재하는 것 같다.

  신혼 첫날 침실에서 묻는 ‘나 얼마만큼 사랑해?’에는 앞으로 함께 하기로 약속한 나날의 무게를 재보려는 의지가 실려 있다. ‘준비가 충분히 되었나요?’ 하는 물음. 반면 한 20년 함께 살아온 부부 사이에서 먹고 사는 일과 자녀를 키우는 일 따위가 남녀의 정을 확인하는 것보다 우선하는 나날의 침실에서 묻는, 그나마 오랜만에 묻는 ‘나 얼마만큼 사랑해?’에는 신혼 첫날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치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이제 아내는 탱탱하게 물이 올라 있던 젊은 여인이 아니라 마른 명태처럼 되어가는 중년의 여인이다. 공광규 시인은 ‘늙어가는’이란 표현을 쓰기엔 아직 젊은 나이지만 그런 표현이 서슴없이 나온 데에는 아마도 그의 아내가 젊은 시절부터 꽤 오래 병치레를 해온데 원인이 있지 싶다. 나는 나대로 언 고등어 신세요, 한 20년 살아온 마당에 ‘나머지 세월도 같이 갈 준비가 되어 있나요?’ 하는 것 같은 아내의 질문도 새삼스럽고 우습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나는 얼떨결에 ‘무량한 만큼’이라 대답한다. “엄마가 얼마만큼 좋아?”하는 질문에 “하늘만치 땅만치”라고 대답하는 아이와 조금도 다를 게 없다. 아이가 말한 ‘하늘과 땅’은 무량한 것의 전형이고, 내가 말한 무량은 그 해설일 뿐이니까. 얼떨결에 내 입 밖으로 튀어나온 ‘무량無量’이 무성의하고 어처구니없는 대답만 같다.

  어쨌건 이 막연하고 모호한 대답이 효과는 있었던 것 같다. 아내에게가 아닌 나에게. 그날 이후 아내가 사찰 한 채로 보인다. 사찰의 이름은 무량사이다. 잘 해보자고 외치는 아내의 잔소리는 경을 읽으며 두드리는 목탁소리 같고, 잘했다고 칭찬하는 소리는 풍경소리 같다. 서두에 ‘오랜만에’라는 말이 암시하듯이 침대에서 아내를 안는 일은 비록 자주 있는 일이 아니지만 거기선 대웅전 단청을 스치는 바람소리를 듣는다. 어느 사찰이나 대웅전 단청은 신도의 눈길을 불러 모으는 자랑거리인데 그래서 그런지 마지막 두 줄은 은근한 금슬자랑처럼 들린다.

  가장 막연한 표현이 가장 구체적인 표현이 되는 순간,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이다. 헤아릴 수 없고 형용할 수 없다고 하는 말이 가장 아름답게 들리는 순간이다. 세상에 떠도는 말 가운데 오직 사랑한다는 말만 그렇다.

  (유용선 記)


공광규 시인. 1960년 청양 출생. 1986년 <동서문학> 통해 등단. 시집로 『대학일기』, 『마른잎 다시 살아나』, 『지독한 불륜』, 『말똥 한 덩이』 등과 시론집 『이야기가 있는 시 창작 수업』, 『시 쓰기와 읽기의 방법』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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