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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용선 Dec 11. 2024

우주의 생성과 인간의 탄생

종교를 믿는 사람은 자신이 믿는 종교의 경전이 철저히 진리이길 바랍니다. 당연한 바람입니다만, 문제는 그 안에 있기 마련인 각종 신화를 상징체계로 읽지 않고 실화로 읽으려 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우주과학과 양자역학 등 사실을 규명하려는 과학의 노력은 그러한 일부(바라건대!) 종교인의 어리석은 태도를 비웃듯이 점점 진실을 들춥니다.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신을 숭배하는 숱한 종교들은 자신들의 신이 천지만물과 세상을 창조했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많은 종교가 신에게 이름을 붙였고 성전이라 불리는 전용 공간도 마련했습니다. 21세기가 된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주를 창조할 만큼 대단한 신에게 이름과 성전이 왜 필요한지 저로서는 이해할 길이 없습니다. 특정 집단만 사랑하는 편협한 신을 숭배하는 인간군집은 과거나 지금이나 인간사회에 짙고 어두운 그늘을 드리우고 있습니다.

우주 생성의 기원에 대해 과학은 ‘없음無과 다름없는 있음’이라 표현할 수밖에 없는 수치(10-35처럼)를 사용합니다. 감정적인 인격신과 거리가 멀어요. 신을 기원으로 인식한다면서 동시에 감정적 존재로 인식하는 건 분명히 모순입니다. ‘스스로 존재하는 신’과 시대별 장소별로 감정이 달라지는 신은 공존할 수 없는 개념입니다. 전지전능도 대상과 한계가 불분명한 관념적 표현에 불과하지요.

인간 창조와 관련된 동서고금의 각종 신화에는 각각 분명한 집필 목적이 있습니다. 민족 성립, 가부장제 확립, 성차별 또는 양성평등, 계급주의 등. 『창세기』는 하느님이 첫 번째 사람에 이어 두 번째 사람을 만들어 둘이 인류 최초의 부부로 살게 했다 하고, 그보다 오래된 유럽 신화는 신들이 노동을 시키기 위해 인간을 만들었다고 해요. 이처럼 창작 시기의 문화적 한계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인간 창조 신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수메르의 신화는 150여 행에 이르는 서사시입니다. 그 속에서 인간 창조 부분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신들에게도 지위가 있어 낮은 신들은 노동을 하고 높은 신들은 그들을 지켜보며 태평스레 잠을 잤다. 작은 신들의 불평불만이 쌓여 반란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자 지하수의 여신 남무가 아들 엔키에게 작은 신들의 노역을 대신할 인간을 만들라고 조언했다. 엔키가 출산의 여신들을 만들자 그 여신들은 진흙으로 사람을 빚었다. 이에 남무 여신이 심장을 만들고, 연못의 신 엔키가 숨을 불어 넣었다. 

축하연이 열리고 맥주에 취한 난마흐 여신이 엔키에 대항해 신체 불구인 인간을 여러 명 만들었다. 엔키는 그들에게 먹고살 수 있는 운명을 정해주었다. 엔키는 화가 난 난마흐에게 장애를 지닌 조산아를 만들어 보였다. 난마흐는 엔키에게 굴복했다.』     


말이 나온 김에 수메르 창조 설화의 전반부를 소개하겠습니다.

     

옛날에 낮이 하늘과 땅에서 생겨난 뒤에

옛날에 밤이 하늘과 땅에서 생겨난 뒤에

옛적에 해의 운명이 결정된 뒤에

아눈나키 신들이 태어난 뒤에

어머니 신들을 아내로 삼은 뒤에

어머니 신들이 하늘과 땅에 자기들의 몫을 나눈 뒤에

어머니 신들이 사내와 잠자리를 하고 임신하여 아이를 낳은 뒤에

신들은 구운 빵과 술을 식당에 차렸다.

큰 신들은 일을 지켜보고 서 있었고

작은 신들이 노역을 감당했다.

작은 신들은 강바닥을 파서 그 흙을 강둑에 쌓여 올렸다.

작은 신들은 이를 갈면서 불평했다.

주) 번역은 『수메르 문명과 히브리 신화』(이원구)를 따랐습니다.    


창세설화는 수메르를 시작으로 이집트, 바빌로니아, 그리스, 중국처럼 문명을 이룬 지역들 중심으로 발전했고 서로 차용하면서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우주와 인간 생성에 대해서는 고대인의 경전보다 현대과학의 발견이 당연히 더욱 신뢰할 만합니다. 우주의 근원도 마찬가지고요. 

브라흐만梵과 아트만我의 일치를 주장한 인도아대륙 선조들의 생각은 존중받을 만하며, 같은 지역이 낳은 탁월한 사람 고타마 붓다가 발견한 공空과 무아無我도 결코 비과학적 표현이 아닙니다. 중동이 낳은 탁월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는 신과 인간의 관계에 ‘안에 있음’이란 개념을 사용했습니다. “나는 내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는 내 안에 있으며 나는 너희 안에 있다.” 상호간에 공통분모가 있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각해낼 수 있는 지고한 존재를 상정하기입니다. 인류의 정신문명이 발전하지 못하고 오히려 퇴행하는 이유는 기존 가치관에게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신에 대한 생각도 결국 가치관입니다. 기존의 모든 종교를 넘어서야 합니다. 인간이 아무리 열심히 상상력과 인식력을 발휘해도 우주를 창조하고 유지하고 관리하는 진짜 신에게는 한참 못 미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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