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평생 천직, 나의 평생 천직에 대한 고찰
엄밀히 말해서 자발적인 퇴사는 아니고 회사가 망한 것이었지만, 나에게는 남편이 퇴사한 것이나 다름없으므로 이대로 적는다. 사실 망하지 않았더라면 가장이라는 무게 때문에 쉽사리 퇴사를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남편의 성격을 알기에, 회사가 자발적으로(?) 망해주어 남편에게 퇴사의 기회를 준 게 고마울 정도다.
이렇게 말하면 남편이 회사에서 너무나 극심한 야근에 의한 과로로 건강을 잃기 일보직전인 상태였을 것이라 예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 회사는 일과 삶의 균형을 지킬 수 있는 나름 괜찮은 축에 속하는 직장이었다. 출근은 8시 반에 퇴근이 5시 반이었고 '야근 수당은 없으니 야근은 절대 하지 마 어여 가~~' 뭐 그런 분위기였다. 남편은 가끔 일본에 출장도 갔었고 함께 일하는 상사도 좋은 분이셨다. 월급이 만족스러울 정도로 높지는 않았지만 남편은 이 회사가 안 망한다면 평생 다니고 싶다고 했었다.
하지만 사실 문제는 여기에 있었다. 지금과 같은 저성장 시대에(참고로 남편이 퇴사한 것은 2014년 9월이었다. ) 회사가 고용을 유지하고 월급을 일정 비율 또는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 인상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나는 명견만리 김난도 교수 편을 보고 다시금 느꼈다.
사실 남편이 퇴사하기 조금 전까지는 회사와 남편의 미래에 대해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 일을 평생 할 수 있을지 미지수이고, 회사가 안 망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고, 남편이 40대, 50대, 60대가 되어서도 그다지 열정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고만고만한 일을 한다는 게 한 사람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 하는 우려를 조금 가지고 있었던 정도였다. 60대를 지나 은퇴하신 아버지께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어봤을 때, 남은 생을 즐기면서 살고 싶다며 지금까지 노력을 해와서 이젠 쉬고 싶다고 하신 것을 듣고 조금 슬펐다. 부모님 세대에는 그런 생활이 어느 정도 통할 수 있었을지 몰라도, 우리 세대부터는 60대부터 더욱 새로운 도전과 함께 경제활동을 활발히 해나가야 할 나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60대가 되어서도 그런 열정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겠구나를 아버지와 그 나이 또래 어른들을 보며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 퇴직이 다가온 후에 그 이후의 삶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자발적으로 앞으로의 평생 천직을 고민해야 된다는 게 나의 결론이었다. 물론 그 평생 천직이 한 가지로 국한될 필요는 없다. 앞으로는 서너 가지 직업은 가지고 있는 게 이상하지 않은 시대가 될 터이니 다양한 분야에 발 담을 기회를 지금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퇴직 후 남편은 커피에 대해 공부를 하더니 지금은 커피 강사 일을 하고 있다.(2019년에는 커피콩을 볶는 로스터가 되었고 상도 받았다) 물론 그 분야에 대한 열정도 있어서 항상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하지만 커피 일 외에 다른 일도 준비하려고 함께 고민 중이기도 하다)
그런 기회를 잡은 것도 퇴사를 했기 때문이었지, 만약 퇴사를 하지 않았더라면 매일 변함없는 일상을 보내다가 주말에는 쉬고 또 저녁에는 소소한 취미들로 조금씩 스트레스를 풀며 만족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큰 회오리바람이 몰아치면 일어설 힘조차 없거나 바로 앞의 동전만을 줍느라 더 소중한 시간을 희생하게 되는 오류를 범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갑자기 사람이 당황하면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먼 곳을 바라보기 쉽지 않은 건 당연하다. 그럴 때 하게 되는 선택들은 대개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보다 시간 대비 효율이 낮은 일들을 선택해버릴 확률이 높다. 이런 선택을 남편이 가장이라는 점 하나 때문에 하게 내버려둘 순 없었다. 남편도 즐기면서 여유롭게 가족들과의 시간도 가질 수 있는 자유로운 일을 하며 살았으면 했다. 가장이니까 희생하고, 그러다 보니 고립되고 스트레스 받고, 퇴직 후에 가정에서도 설자리조차 잃어 쓸쓸한 모습으로 불만만 말하는 중년이 되도록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다.
이러한 생각은 내가 이기적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나는 절대 이타적인 착한 부인은 아니다. 내가 하루 종일 집안일만 하고 내가 쉴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게 두려워, 평생 맞벌이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맞벌이라면 집안일에 대한 책임도 둘이 나누게 되니 좋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전업주부 생활을 한 엄마를 보고 자라서 전업주부의 노고도 충분히 느끼고 있었고 그 와중에도 사회 속에서 뭔가 도움이 되고 싶어 하시지만 그게 쉽지 않아 답답해하시는 모습에 마음 아파하기도 했다. 그런 엄마의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지만 나는 그렇게 답답해하고만 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맞벌이라는 형태는 나에게 '경제활동'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사회생활 1년 차부터 하게 만들었다.
1년 차부터 적어도 한 분야에서는 5년 또는 10년은 몸담아야지 같은 큰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어떤 분야든지 마에스터가 되고 싶었다. 깔짝깔짝 건드리고 전문가라고 스스로를 칭하는 미덥지 못하는 사람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바닥부터 제대로 한 분야를 파고 싶었다. 이 정도로 첫 해부터 너무 과한 포부를 가지고 있던 내가 지치는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 항상 즐거워야 할 직장 생활이 즐겁지 않게 된 이후부터 그 원인이 뭘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 고민의 주원인은 사람이었다. 왜 다들 불만이 많고 그 스트레스를 주위 동료에게 풀지? 함께 으쌰 으쌰 힘내야 할 동료끼리 서로 상처 주고 스트레스 주고 일을 더욱 비효율적으로 만들고 감정싸움을 해야만 하지? 내가 너무 이상적인가? 원래 사람들이 모여 일하는 곳은 이런 건가? 직장생활이란 이것을 견디는 것을 말하는 건가? 왜 즐겁게 일하며 반짝반짝 빛나는 직장인을 난 본 적이 없을까? 이런 고민들을 많이 했다. 그리고 그 답답함을 회사 밖에서 해소하기 위해 무작정 이곳저곳 찾아다녔다. 글 쓰기를 배우는 수업도 다녀보고, 디자인 툴을 배우려고도 해봤고, 쥐꼬리만 한 월급이지만 그 돈으로 무엇을 해야 행복한지 고민하며 자산관리 칼럼들을 죄다 훑으며 혼자 공부도 해봤다. 그러다가 내가 돈이 많다면 뭘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도달했다.
이 질문은 나에게 지금도 매우 소중한 질문이다. 뭘 하고 싶은지 그 목록들을 적어가고 그 목록을 이루기 위해 '가로 저축'을 했더니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도 언젠가는(!) 그것들을 이룰 수 있겠더라. 제일 먼저 적은 것이 혼자 유럽여행을 자유롭게 갈 금액을 모으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다음은 맛있는 음식을 항상 돈 걱정 없이 먹는 것이었고 그 다음이 옷이나 화장품이었다.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 고민했을 때 생각이 난 것은 친구들과 가기로 한 2번째 여행이었다. 그다음에 생각이 난 또 하나는 기특하게도 부모님 유럽여행 보내드리기였다. 이것은 부모님께 잘해드리고 싶다는 효도의 마음도 어느 정도 있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내가 사회생활하며 이런 효도도 하는 착한 딸임을 부모님께 어필하고 싶은 지극히 이기적이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버킷리스트였다.
물론 부모님을 모시고 유럽여행을 하는 게 매년 가능한 것은 아니었지만 한 번 가면 5년 동안은 괜찮겠지 싶어, '자체 5년 할부'라는 가로 저축을 했다. 그랬더니 의외로 5년도 아니고 더 길게 잡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그것을 이룬 후에 들었다(가로 저축을 한지 6개월 만에 난 그것을 당겨 썼다. 즉, 결혼 전 부모님과 유럽여행을 다녀왔다는 얘기다. 나는 돈이 많아야지만 부모님과 유럽여행을 갈수있다가 아닌, 사회 초년생 시절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효도를 했다. 가로 저축은 철저하게 나와의 약속이 바탕이 된다. 그 자체할부가 끝나려면 아직 2년 정도 더 남았지만 내가 대출하여 빚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매달 자체 할부금을 저축하고 있기 때문에 걱정이 전혀 없다. 오히려 홀가분하다). 이것은 상상만으로는 절대 알 수가 없는 것이고, 해본 후에 느낄 수 있는 특이한 경험이다. 뭐든 한 번 해보면 아, 더는 안 해도 되겠다 같은 근본적 목마름이 해소되는 기분을 느끼게 되기 때문인 것 같다. 부모님과 또 다른 곳으로 여행을 하면 좋겠지만 그것보다 더 목마른 다른 요소들을 하고 난 뒤에 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 얘기로 다시 돌아와서 결과적으로 나는 50~60대가 되어 퇴직 후 새로운 경제활동에 대해 고민하기보다, 지금 그런 기회를 갖게 된 남편의 행보를 응원한다. 곧 아이도 태어나는데 본인은 심적으로는 더욱 불안하겠지만 말이다. 결국 인생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기에 정규직이어야 마음이 놓이고, 비정규직이라 좌절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부터 말도 안 되는 경쟁은 그 경쟁 자체가 말도 안 된다고 외쳐야 한다.
돈은 있어도 항상 부족하고 없어도 불안한 것이니, 얼마 정도의 넉넉한 금액이 나에게 있다고 뇌를 '속이면서' 불안을 떨쳐내고 있다. 불안해봤자 엥겔지수만 높아지고(저소득자의 엥겔지수가 고소득자보다 많다는 것은 굳이 수치를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우리는 통장에 넉넉한 돈이 있을 때보다 얼마 없을 때 더욱 뭔가를 먹고 싶거나 사고 싶은 것들이 더욱 아쉬워지곤 하는 경험들을 한다)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시간 자체가 우리에게는 아깝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집중해야 할 것에 소중한 시간을 쏟는 것이 중요하다. 궁극적으로 나와 남편이 하고 싶은 건 뭔지 함께 고민하면서, 하루하루를 즐기면서 말이다.
나는 진심으로 남편의 퇴사가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