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그의 가족에 섞이기.

by 몽아무르



4월이 되었다.

꽃이 만개하는 봄.

우리가 함께 한 지도 어언 4개월이 되었다.


그의 조카의 생일이었다.

그의 부모님은 이혼을 하셨고,

친 형 한 명, 의붓 누나 두 명이 있다.

친 형은 딸 하나, 첫번째 누나는 아들 둘, 두번째 누나는 아들 하나, 딸 하나, 이렇게 있다.

즉, 그는 조카가 많다.


이 무렵의 나는 형의 딸 레오넬은 자주 봤지만, 누나들의 자식들은 겨우 한 번 보았을 뿐이었다.

이 날은 레오넬의 생일이었고,

생일 파티 참석자는 새아빠, 엄마, 형, 레오넬, 둘째 누나, 그녀의 남편, 그리고 두 아이 였다.


그의 엄마 집 앞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없었다.

조금 기다리다 보니 그의 새아빠, 엄마, 그리고 애들 셋이 캠핑카를 타고 등장했다.

레오넬 생일이라고 그의 새아빠가 아침부터 애들 캠핑카 태우고 드라이브를 다녀온 것이었다.

그의 엄마와 새아빠는 손주들에게 참 잘 해준다.


나를 겨우 두번째 본 둘째 누나의 아들 에믈리스와 딸 마일리스는 내 앞에서 무척 수줍어 했지만,

눈동자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나는 이미 친밀한 가족들 사이에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조금 어색했다.

그는 그간 있었던 일을 새아빠와 엄마에게 풀어내느라 바빴고

애들은 마당에서 서로 뛰어다니느라 정신 없었다.


타지 생활에서 늘은 거라곤

어색할 때 혼자 앉아 무념무상에 젖는 기술이었다.


나는 마당 한켠에 의자를 두고 앉았다.

에믈리스가 마당에서 꽃 한 송이를 꺾어 내게 주었다.

'고마워' 하며 싱긋 웃어주니

세 아이가 서로 내게 꽃을 주겠다며 경쟁하듯 마당의 꽃을 꺾어댔다.


어색함과 외로움이 아이들의 귀여운 환영으로

사르르 사라지듯 했다.


점심을 먹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케익의 초를 불고, 선물을 준 뒤,

우리는 날씨를 즐기고자 산책을 하기로 했다.


그는 여전히 가족들과 이야기하고 아이들 사진 찍어주느라 바빴다.

나는 혼자 걷다가, 레오넬이랑 걷다가, 뭐 그랬다.

산책 후에는 피곤해져서 소파에 앉아 기댔더니, 그는 내게 괜찮냐고 묻는다.


나 : 졸려.


그는 그럼 자라면서 소파를 누울 수 있게 쭉 펴주었다.

난 사양 않고 잘 잤다.


예전같으면, 어색해하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안절부절하고,

무얼해야 친해질 수 있을까, 무얼해야 착한 아이로 보일까 걱정했을텐데,

외국 생활은 그런 나를 조금은 개인화 시켜준 것 같다.


늘 새로운 사람과 부딪혀야 하고 의사소통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는

고립되기 십상이다.

처음에는 그들도 함께 이야기하고 챙겨주려고 노력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고

본인들도 밀린 이야기하며 회포 풀고 싶으니까.


그 속에서 내가 적응하는 방법은

고립된다고 슬퍼하지 말 것. 잘 보이려고 애쓰지 말 것. 이다.

그래서 졸리면 잤고

혼자 있다고 슬퍼하지 않고 머리를 비웠다.


물론 이것이 늘 효과적인 것은 아니다.

나도 사람인지라

사이 좋은 가족들 보면서

나는 왜 타국에서 혼자 이러고 있지.

왜 내 가족하고 보내기도 아까운 시간에 남의 가족들, 혹은 친구들 사이에서 섬처럼 둥 떠있는거지.

쓸쓸해하고 억울해할때도 있다.


게다가 내 불어 실력이 그들 만큼 되지 않으니

나를 배려한다고 어린애 취급하는 것도 사실 자존감 상할때가 있다.

물론 그들은 나를 배려하는 거다.

하지만 나 스스로 '나는 말을 잘 못할 뿐이지 멍충이는 아니다.'라고 생각하면서

나의 얕은 지성을 보여주지 못함에 속상해 할때가 있다.


어른들은 카드 게임을, 애들은 보드 게임을 했다.

나는 애들 사이에 섞여 게임을 했다.

카드에 적힌 퀴즈를 푸는 거였는데 모르는 단어가 수두룩...

결국 나때문에 게임을 접고 단순한 게임을 했다.


조카들은 착하다.

난 별로 승부욕이 없어서 설렁설렁 했고

내 카드는 다 떨어졌다.

마일리스는 그럴때마다 끊임없이 내게 자기 카드를 주었다.

마일리스는 마음씨가 고운 여덟살 소녀이다.

나를 챙겨주는 자세가 마치 제 학교 친구 챙기듯 한다. 하하하.

난 애들에게도 애들 취급을 받는다.


게임이 끝나고는 둘째 누나네 집에 갔다.

그는 산만한 에믈리스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다.

나는 너무 피곤했다.

무리하게 미소를 입에 달고 있었더니 편두통과 함께 턱근육이 욱신 거렸다.


저녁식사 시간.

밥 먹으라는 둘째 누나의 말에 식탁에서 어물쩡 거리며 어디 앉아야 할까 방황했다.

에믈리스는 자기 옆자리에 앉으라고 나를 이끌었다.

둘째 누나는 그의 옆자리에 놓았던 내 접시를 에믈리스 옆자리에 다시 놔주었다.


이곳 아이들의 취침 시간은 대략 8시에서 9시 사이이다.

고로 아이들은 저녁을 먹은 후 이를 닦고 곧장 각자의 방으로 간다.

보통 어른 손님들이 오면 테이블을 돌며 일일이 손님들에게 뽀뽀를 하며 인사를 하고 자러 간다.

그런데 마일리스가 다가와선 내 눈을 부드럽게 쳐다보며 말했다.

'여기 말고 이따 침대로 인사하러 올라오면 안돼?'


하하하. 하지만 그런 문화에서 자라본적 없는 난 침대에 인사하러 가서 뭘 하는지 몰랐다.

당황했지만 거절할 수 없었기에 알겠다고 했다.

아이들의 엄마 아빠가 먼저 애들 방이 있는 이층으로 올라갔다.

이윽고 아이들의 아빠가 우리를 불렀다.


난 계단을 오르며 고민했다.

만났을때 비주하는 것처럼 양볼에 뽀뽀하는건가.

아님 한 볼인가.

뽀뽀만 하고 내려오면 되는건가.

뭘 해야 하는거지.

근데 아직 완전히 친하지도 않은데 양볼에 입술로 뽀뽀해도 되나.

양볼만 대야하는거 아닌가.

아오오오오오오오오오 !


속으로 엄청난 고민을 하다가 결국 그가 어떻게 하는지 보았다.

먼저 마일리스의 방에 들어가서

침대 곁에 앉아 안아주고, 내일 뭐하냐고 묻고, 간지럼피우며 장난치고 농담하고 그랬다.

마지막엔 양볼에 쪽쪽 뽀뽀해주며 잘자라고 했다.


나는 할말도 없고...

그냥 어색하게 양볼에 뽀뽀해주고 잘자라고 했다.

아니 오히려 마일리스가 어른 마냥 '오늘 즐거웠어?' 라고 물었던 것 같다.


에믈리스에게도 마찬가지로 하고선 내려왔다.


이들의 비주문화가 어색하기도 하지만

늘 살을 맞대는 그들을 보면서

이렇게 애정도를 높이는구나 싶었다.


나는 한국에서도 워낙 몸을 만지는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친구랑 팔짱만 껴도 몸속에 개미가 기어다니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많이 바뀌었다.

아직도 그들 만큼 안고 쓰다듬고 뽀뽀하는데에 익숙하지 않지만

만질수록 애정도와 친밀도가 높아지는 건 사실인것 같다.

그리고 표현하는 만큼 행복해지는 것도.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는 녹초가 되었다.

그의 가족들을 만나는 것이 아직은 고역이다.


할 말없으니 미소만 짓고 있는 것도,

껴들 대화가 없다는 것도,

화목한 그의 가족을 보며 내 가족을 떠올리는 것도,

모두들, 심지어 애들 조차도 이 지적인 나를 어린애처럼 대하는 것도,

때로는 너무 서럽고 자존심 상하고 힘들었다.

그럴때마다 침대에서 울고불고 했더랬다.


하지만 억지로 노력한다고 달라지지는 않는것 같다.

안된다고 마음을 괴롭힐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순간에 부유하면 되는 것 같다.

괴로워하면 나만 힘드니까.

뇌를 비우고 무의 상태가 되어 그냥 그 상황에 있는거다.

그러다보면 시간이라는 거대한 미스테리가 문제를 다 해결해준다.

그야말로,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지금도 가끔 울고불고할 때 있지만

예전보다는 많이 편해졌다.

일년도 안된 시간에

내가 완벽히 그들에게 섞인다면 그게 더 말 안되는거 아니겠는가.


시간을 느긋하게 기다리는 법이 필요하다.






그 : 아까 밥 먹을때 마일리스가 한 말 들었어?

나 : 아니.

그 : 마일리스가 엄마한테 네가 내 여자친구냐고 물었어.

그래서 그렇다고 했더니 그럼 Elle est un petit peu tati ? (그럼 약간 이모인거야?) 라고 물었어.

엄마가 대답을 망설이니까 마일리스가 먼저, 아 ! 먼저 un petit peu (약간) 결혼 해야하는 거구나 라고

말했어.


나와 그는 하하하 엄청 웃었다.

그는 내게 사랑한다 말하기도 전이었는데 마일리스는 우리 결혼 부터 시키려고 했으니 말이다.

서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 사랑한다 말하지 않는 사이에서

아이를 통해 결혼이야기를 하니 둘 사이에는 어색하지만 두근두근한 기류가 흘렀다.


마일리스는 이 날 이후에도 끊임없이 우리를 결혼 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우리가 결혼을 결심하게 되기까지 실제로 많은 기여를 했다.

그 귀여운 에피소드는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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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조카들 사진 올리고 싶지만, 내 애들도 아닌데 내 마음대로 올리기는 그래서.

대신 곰돌이와 함께 요리하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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