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저기, 만나고 싶은데요.

by 몽아무르






내 논문 발표는 5월, 진짜 늦어도 6월에는 이루어져야했다.

한 두달 밖에 안 남은 상황이었고

마음이 너무 급했다.


그는 한번도 공부하기 위해 밤을 새운적 없는 사람이다.

항상 바빴던 어머니 덕에 그는 학교 끝나고 공부하는 버릇이 없었더랬다.

숙제는 스쿨버스 안에서 다 해버리고

집에 오면 누구의 간섭도 없이 하고싶은대로 하면서 자랐다.

그의 어머니는 한번도 그의 숙제, 시험에 대해 간섭한 적이 없었다.

다행히 그는 늘 중간은 했기 때문이다.

고로, 그는 어렸을 때 부모가 만들어주었을법한 습관이 없다.


뭐랄까. 규칙적인 습관이 없다고 해야할까.

항상 계획을 세우고 하루의 시간도 딱딱 해야할 일 정해서 나누는 나로서는

그의 생활 습관이 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노는거야 쉽지만, 다시 습관을 들이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그런 그는 내가 늘 바쁘다는 것을 의아해 했다.

늘 밤새 공부하고 번역하는 것도 놀라워했다.

왜 그렇게 살지?


뭐, 내가 원어민이 아니기에 프랑스 애들보다 두배의 시간이 걸려서 이기도 했다.

한국말로 썼으면 금방 썼을 걸 불어로 단어 찾아가며 쓰려니 시간이 더 걸렸다.


금요일 저녁 그는 퇴근하면서 문자를 보냈다.

'드디어 주말이야 ! 우리 언제 만나?'


'나 공부해야돼...' 가 내 대답이었고,

그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한참 논문을 쓰고 있는데 다시 문자가 왔다.

'오늘 저녁에 톱셰프에 나온 디저트 만들어 볼까?'


나는 그러렴. 하고선 다시 논문에 집중했다.


또 한참 뒤, 문자가 왔다.

'우리 형네 집에서 저녁 먹을래?'

'오늘 저녁?'


그에게 주말은 노는 날이지 공부하는 날이 아니다.

내가 아무리 논문이 많이 남았고 이러다 내년에 다시 해야할지도 모른다고 고민해도

그게 얼마나 심각한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분명히 공부하겠다고 한 나에게 결국 저녁식사 초대를 하고 말았다.

그는 늘 이런식이었고

나는 그걸 거절하지 못했다.

결론은,

나는 논문을 올해도 쓰고 있다. 하하하.

엄마는 이게 다 그와 데이트하느라고 생긴 일 아니냐고 하셨는데,

아니라고 잡아땠지만 사실 그러하다.

노느라고 못쓴것.

나 내 탓이지.


결국 저녁식사 초대에 응해서, 그의 형네 집에 갔다.

형의 친구 가족도 오기로 되어있었는데, 부부와 애들 셋이었다.

엄마는 이미 큰 아들이 있는 상태였는데,

형의 친구가 연상의 그녀와 사랑에 빠져서

결혼 하지 않은 상태에서 둘 사이에 아들 둘을 또 낳아 살고 있는 거라고 했다.

어쩐지 큰 아들과 아래 두 동생의 나이차이가 많이 났더랬다.


큰 아들은 십대 초반으로 보였는데 참 얌전했다.

식사를 기다리는 내내 책을 보다가

식사가 끝나자 알아서 자러가겠다고 일어섰다.

이곳의 아이들은 9시 정도 되면 자러 가는데,

보통 부모는 어서 자라고 성화고 애들은 안졸리다고 떼를 쓴다.

알아서 자러간다고 하는 애는 처음 봤기에 참 의젓하다 생각했다.


식사 시간 내내 모두들 친절하고 좋았지만 난 마지막엔 너무 피곤했다.

마치 불어 듣기 연습하는 기분이었다.

저녁 식사 내내 공부한 기분.

결국 마지막엔 집중도가 떨어지고 그만 듣게 되었다.

그만 집에 갔으면 했는데, 다들 하품하면서도 안 일어나는 이유는 뭘까 답답해했더랬다.


결국 친구 부부가 자러 가겠다고 해서 모임은 마무리 되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그는 내게 괜찮냐고 물었다.


나 : 피곤해.

그 : 나도. 근데 이런 모임 괜찮아?

나 : 왜?

그 : 그냥, 네가 지루할까봐. 서로 말을 빨리하면 이해하기도 어렵고.

나 : 아냐. 괜찮아. 어떤건 이해하고 어떤건 이해 못하고 그래. 다만 막판에는 집중도가 떨어지고 피곤해져.

너희들 말하는 거 이해하려면 엄청 집중해야하니까.


그때는 이런 생활의 초반이라 그나마 견딜만 했는데,

시간이 좀 지나자 나도 모르게 모임 스트레스가 생기기 시작했다.

가봐야 나는 그들이 낄낄 대는 이유도 모르고

남들 다 웃는데 나 혼자 멍. 하니 있기도 참 민망해서

입에 미소는 다는데 왠지 그게 더 멍청해 보이고.


그런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때는

괜히 그의 탓도, 내 탓도 아닌데 울적해하곤 그랬다.

왜 내 불어는 발전하지 않는가 ! 우울해하면서.


내가 프랑스에 산다고 하면,

다들 낭만의 나라 프랑스에서의 삶이라니 ! 하고 반짝이 뿌린 삶을 생각하지만,

그렇지 만은 않다.


인간에게 '나를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생각해보면,

타국에서의 생활은 아무리 프랑스라고 해도 낭만적 일 수 가 없다.

아무리 외국어를 잘해도 그들만의 뉘앙스를 다 이해하기도 어렵고.

그들도 내 뉘앙스를 이해하기 어렵고.


게다가 어디서든 그것이 여행이 아닌 '삶'이 되는 순간

국가나 지역은 크게 중요하지 않아지는 것 같다.


사람 사는 건 어디나 다 똑같은 것 같다는게

여기서 살면서 드는 생각이다.

다들 벌고 먹고 자고 지지고 볶으며 살지 않는가.




이제는 그 날 저녁 사진.


IMG_0583.jpg 조카가 찍은 외계인 같은 그.


IMG_0591.jpg 조카가 찍은 의젓한 큰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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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요리 경연 프로그램 '톱 셰프'를 보고 만든 타르트 오 시트롱 (레몬 타르트).

레몬 타르트는 프랑스인들이 사랑하는 디저트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대중적인 디저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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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라서 접시에 담은 레몬 타르트.

원래는 개별로 하나씩 만드는 경우가 더 많은데 통큰 혹은 게으른 그는 한꺼번에 크게 만들어 잘라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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