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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넘어파 Apr 19. 2024

어쩌다 부잣집 사위가 되었나.

장인어른께 100억 상속받기 20화

"아버님, 선이가 저랑 결혼하는 걸 허락하실 건가요?


"그건, 치외법권이지. 나는 선이의 결정을 따를 뿐이야."



결혼하기 1년 전쯤이었다. 여자친구와 연애한 지는 7년, 여자친구 부모님과 왕래한 지는 6년 정도 되었을 때였다. 여자친구 아버지께서는 나를 만날 때마다 족집게 강의하듯 돈에 대하여, 삶의 태도에 대하여 다급하게 쏟아내셨다. 



문득 궁금해졌다. 이 분은 정말 나를 사위로 맞이할 생각인 건가. 



나는 아버님께 진실됐다. 우리 집의 경제적 상황에 대해, 부모님께서 어떻게 살고 계신지에 대해 꾸밈없이 전달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혼을 한 건 아니지만 오랜 기간 따로 사셨다. 어머니는 시골에서 살고 싶어 하셨고, 아버지는 도시에 머물고 싶어 하셨다. 어머니는 시골에서 요양보호사를 하며, 아버지는 도시에서 일용직 노동자에 가까운 일을 하며 경제 활동을 영위하셨다. 부모님의 자산이라고 할 만한 건 도시에 있는 20평도 안 되는 다세대 주택 1채가 전부였다. 



아버지는 장남이었지만 25년 전부터 제사는 작은 아버지 댁에서 드렸다. 명절에는 나와 아버지만 작은 아버지 댁에 가서 제사에 동참했다. 내가 혼자일 때는 별 문제가 없었는데 결혼 이후가 참 난감했다. 명절에는 어디로 가야 하는 건지. 여자친구 입장에서는 시댁이 2개가 생기는 것 아닌가. 



여러모로 딸을 시집보내기엔 머리 아픈 조건이었다. 이 모든 상황을 각색 없이 부자아빠께 말씀드렸다. 우리 집은 이렇답니다. 그런데도 딸이 저와 결혼하겠다는 걸 허락하실 건가요? 



부자아빠는 딸의 결혼은 전적으로 딸의 의사결정에 달린 거라며 치외법권이라는 말로 쿨하게 정리하셨다.



나에게도 딸이 생겼다. 딸이 성장하여 결혼하겠다고 남자를 데려오면 나 역시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두 사람의 결혼 결정에 나의 권한은 없다고.



"자기야, 우리 결혼하기 전에 아버님께 결혼 허락하실 거냐고 여쭤봤었다."


"아 진짜? 뭐라고 그러셨어?"


"치외법권이라고 하시던데."


"말도 안 돼. 히히."


"그렇지? 윤이를 키워보니깐 진짜 말도 안 되는 소리인 거 같아."


"치외법권은 무슨. 오빠가 아빠 마음에 들었으니깐 하시는 말씀이지. 애초에 아빠 마음에 안 드는 남자였으면 연애도 못하게 했을 거야."


"허허."


"우리 아빠가 나한테 공부 잔소리는 안 하셨는데 남자 보는 눈에 대해서는 진짜 많이 이야기하셨어. 외모에 반하지 마라. 폼 잡는 남자 만나지 마라. 진실되고 성실한 남자 만나라. 줄기가 바로 선 남자 만나라. 내가 딱 그런 남자를 데려간 거지."


"아, 외모는 안 본 거였어?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 pixabay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요



돈이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돈은 인생의 많은 문제를 해결해 준다. 갑작스러운 질병과 사고가 부자만 피해가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부자는 치료비에 대한 걱정은 피할 수 있다. 자녀가 가난한 연인과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부자는 그 사랑이 가난으로 인해 지치지 않도록 모자람을 채워줄 수 있다. 재물은 견고한 성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해결되지 않는 인생의 문제는 남아있다.     



나의 어머니는 끝내 사업에 성공하지 못한 남편 덕분에 아주 쓰고도 쓴 인생길을 걸어야 했다. 아버지는 어머니께 돈을 구해달라 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늘 전화를 붙들고 돈을 빌리셨다. 외할머니께, 교회 집사님들께. 



잘하는 건 공부뿐이었던, 영어를 좋아하고 문학이 좋아 영문학을 전공했던, 결혼 전 시골 중학교에서 여중생들을 가르치셨던 어머니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하고 괴로운 삶이었으리라. 둘째 누나는 어렸을 때 자주 아팠다. 고열로 인해 당장 응급실로 달려가도 모자랄 판에 어머니는 병원비 걱정부터 했다. 돈만 있었다면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조차도 어머니에게는 인생의 큰 산이었다. 



어머니는 어떤 심정으로 그 시절을 버티셨을까. 셋이나 되는 자녀는 기쁨이면서 걱정이었으리라. 이 자녀들을 어떻게 키워낸단 말인가. 의지할 데라곤 어머니의 신앙심뿐이었다. 어머니와 한 방에서 잠을 잤던 나는 매일 아침 어머니의 흐느끼는 기도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깼다. 



그렇게 정신없이 삼 남매를 먹이고 입히던 가난했던 시절에도 어머니는 더 낮은 곳으로의 시선을 외면하지 않았다. 주머니에 돈이 있다면 동냥하는 거지를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고 도움을 요청하는 이웃의 손길을 거절하지 않았다.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는 오갈 데 없는 시각 장애인 형을 집으로 데리고 오셨다. 앞을 아예 못 보는 형이었는데 사고를 당해 허리까지 다쳐 누워서만 지냈다. 꽤 오랜 기간 한 가족으로 살았다. 선을 행한답시고 자녀들을 무책임하게 내버려 둔 건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자녀들에게 더 많이 주고자 재물을 모으는데 집중하지도 않으셨다.



다 크고 나서 어머니께 물었다. 어떤 마음으로 그렇게 선(善)을 베풀었는지. 어머니는 나에게 성경 한 구절을 말씀해 주셨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 

 


'의뢰가 있다'라는 말이 조금 어려운데 영문을 보면 '견고한 성이 있다'로 받아들여도 된다. 어머니는 이 구절을 삶의 동아줄로 여겼으리라. 돈만 있으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돈이 없어 해결하지 못하던 무기력한 어머니께서는 절대자를 의지했다. 절대자를 경외하면 삼 남매에게 견고한 성이 둘러질 거라 믿었다. 



절대자를 경외하는 삶의 구체적 행동은 선으로 나타났다. 굶는 자에게 양식을 주고, 벌거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면 절대자가 제 새끼들을 비참하게 버려두지 않을 거라는 믿음으로 살아오셨다.



어느 기업의 한 팀에서 좋은 일을 하기로 뜻을 모았다. 각 팀원들이 일정 금액을 모아 도움이 필요한 곳에 기부하기로 했단다. 한 팀원의 여동생이 고등학교 교사였다. 그 동생에게 학교에 도움이 필요한 학생이 없는지 물었고 그 동생은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 중에 나를 추천해 주었다. 



덕분에 나는 한 달에 10만 원씩 꾸준히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다. 20년 전이었으니 10만 원이 나에게 작은 돈은 아니었다. 어머니께 자초지총 장학금을 받게 된 경위를 말씀드렸다. 어머니께서는 기뻐하시면서 나에게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해주셨다. 



"엄마 친구 중에 사정이 어렵게 된 친구가 있어. 그 아들이 최근에 대학생이 되었는데 내가 등록금 빌려 줄 형편은 안 되고 한 달에 5만 원씩 그 아들에게 용돈을 주고 있었어. 하나님께서 2배로 갚아주시네."



어머니는 모든 문제를 절대자에게 내어 맡겼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선을 베풀면 복(福)으로 돌아와 자녀들의 피난처가 되리라 믿었다. 



그래서일까. 우리 삼 남매는 그럭저럭 다들 잘 살고 있다. 어머니의 삶도 예전처럼 힘겹지 않다. 여전히 모으기보다는 즐겨 나누면서 숭고한 삶의 가치를 지키고자 애쓰신다. 그런 시어머니를 며느리는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른다.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내가 부잣집 사위가 된 것도 어머니 덕분일 수도 있다. 뭐, 믿음의 영역이라 입증하기는 어렵다. 정신 승리로 봐도 좋다. 






부자아빠는 어떨까. 부자아빠는 돈으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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