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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조 Aug 17. 2020

독일과 한국 출산문화 비교

새 생명이 가족이 되는 소중한 순간

독일 출산기


 큰 아이는 독일에서 출산했고 작은 아이는 한국에서 출산했다.

내가 한국에서만 출산했다면 아이는 이렇게 다 낳는구나 생각했을 텐데 다른 두 문화에서 출산을 하다 보니 당연히 두 나라의 출산 문화가 비교가 되었다.

첫 아이를 독일에서 출산한 것이 2004년이니 지금은 한국도 출산문화가 많이 개선되고 나아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독일은 소득에 따라 내는 의료보험으로 모든 병원 치료가 커버가 되니 아이를 낳는 다고 병원 비용이 더 드는 점은 없었다.

임신이 확정되면 우선적으로 할 일이 자신이 아이를 낳을 출산 전문 대형 병원을 미리 예약해서 지정하는 일이다. 그리고 출산 후 집으로 와서 신생아와 산모를 돌봐줄 산후도우미(헤밤메)도 미리 정해 놓는다.

출산 전까지의 정기 검진은 자신이 원하는 가까운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는다.

일반 정기 검진은 근처의 동네 진료소에서 받고 임신 초중 말기 세 번 정도 정밀 검사가 필요한 검진은 수술실을 없지만 좀 더 큰 병원으로 가서 검진을 받는다.병원마다 역할이 잘 분담되어 있어 사람이 많이 붐비거나 오래 기다리거나 하는 스트레스 없이 쾌적하게 진료를 마치고 나올 수 있었다.


출산


나는 출산 예정일에 맞춰서 진통이 와서 미리 예약한 출산 전문 병원에 입원을 하고 그 날 바로 아이를 낳았다.

독일의 의사와 간호사들은 아이를 억지로 빨리 나오게 하지 않았다.

좀 빨리 아이를 꺼내야 하지 않았나 싶게 나는 출산 중 너무 많은 출혈이 있었다.

결국 자연 분만을 했지만 과다 출혈로 인해 바로 퇴원을 하지 못하고 일주일 동안 아이를 낳은 병원에 입원을 했었다. 의사가 수혈을 받기 원하는지 물어봤지만 나는 괜찮다고 했다. 사실 안 괜찮았는데 수혈받기도 좀 불편했다. 아이를 낳으면 그 날 바로 독일 공무원이 내가 누워 있는 병실로 와서 아이가 실제로 출생했는지 확인하고 출생증명서를 발급한다.

아이 낳고 누워 있는데 공무원이 출생신고서 작성하러 들어와서 좀 놀랐다. 이것은 아이의 독일 출생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문서이므로 잘 보관해 놓아야 한다. 행정공무원의 행정의 확실성을 위해서 온 것이기도 했겠지만 출산으로 힘들 산모가 관공서까지 가야 할 수고를 덜어줘서 감사한 서비스라고 생각했다.


산후조리


 병실은 1인실이고 아기 침대가 엄마 침대 바로 옆에 마련됐다. 나는 심한 출혈로 앉지를 못해서 모유수유가 좀 어려운 상태였다. 나의 상태를 간호사들이 인지하고는 내가 누워서 모유수유하게끔 자세를 잡아주고 출생 한 날부터 두어 시간마다 아이를 데려와서 모유수유를 할수 있게 도와줬다.

아이도 씻기고 기저귀 갈아주고 밤에도 교대로 돌아가면서 정성스럽게 아이를 보살펴 줬다.

놀라운 것은 항상 아이를 엄마 침대 옆의 투명 플라스틱 바구니 아기 침대에 눕혀 놨고 엄마가 좀 휴식이 필요하다 싶으면 자기네들이 데려가 있곤 했다.

일주일 입원 후 집으로 돌아오니 산후도우미가 나의 회복 상태도 체크해준다.

아이 아빠에겐 아이 목욕시키는 법과 기저귀 가는 법등을 가르쳐 주고 불편한 사항이나 질문이 있는지 꼼꼼히 체크했다. 이렇게 초보 엄마 아빠에게 자연스럽게 새 식구가 생김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스트레스를 피하고 서로 협력할 수 있는 과정을 세심히 도와주는 시스템이 잘 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이 침대를 따로 두어 아이를 어른과 함께 끼고 자지 않도록 조언했다.

그 문화에서는 아주 당연하다.보통 한국 부모님들은 아이방에 따로 재우지는 않고 아이 침대를 부부 침실에 같이 나란히 두고 따로 눕혀서는 잔다.

독일에서는 아이를 아이방에 따로 아이 침대에 눕히고 이불에 질식사하지 않게 기다란 조끼처럼 생긴 슬리핑백을 입혀서 재우고는 무선 워키토키 같은 것을 옆에 둔다.우는 소리가 나는지 등으로 아이 상태를 항시 확인하는 용도이다. 아이를 온돌 바닥에 어른과 같이 누워 자면 아이가 자다가 어른에 깔릴 수도 있고 어른들도 숙면을 취하지 못하여 일상에 지장을 주는 등 불편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출산기


이번에는 한국에서 출산한 둘째 아이의 경우를 보자.

둘째 아이는 임신 중반기까지는 독일에서 지냈고 출산을 위해서 한국으로 들어왔다.

정기검진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수술실과 입원실이 함께 있는 대형 산부인과 전문병원으로 다녔다.

아이 출산 예정일 일주일을 앞두고 아이 몸무게가 3.5 kg 가 되었다.의사는 유도분만을 해서 예정일 일주일 먼저 출산을 하자고 했다.내가 강력히 거절했어도 되었는데 나는 첫째 때 아이가 커서 자연 분만하다가 출혈로 고생을 많이 한 기억이 있어서 그렇게 하자고 했다.

독일은 유도분만이나 무통분만을 위한 부분마취 그리고 제왕절개 수술 등 무언가 자연스럽지 않게 억지로 하는 것을 하지 않았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아이를 빨리 나오게 하려고 다양한 방법들을 썼다.

아이를 빨리 꺼내기 위해서 간호사가 배에 심한 압박을 주는 것도 좀 적응하기 어려웠다.

산모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빨리 끝내게 하기 위해 도와주는 건가?

아무튼 산모나 가족의 의사보다는 일사천리로 그들에게 맞춰서 움직여야 했다.

아이는 유도분만으로 3-4시간 만에 나왔고그 덕분인지 이틀 만에 퇴원할 수 있었다.

퇴원하자마자 아이에 관한 모든 것이 엄마 혼자의 몫으로 돌아왔다.

물론 산모의 건강한 회복을 위해 사비를 따로 들여서 산후조리원이라는 곳에 1-2주 머무르기도 한다.

그리고 둘째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아이의 배가 다른 아이들보다 좀 불룩하다고 집중 케어실로 아이를 입원시키고 아기를 따로 그들이 데리고 있었다.

나는 산모 병실에 이틀간 머물렀었고 아기가 보고 싶으면 면회가 가능한 시간에 맞춰서 불편한 몸으로 계단을 내려갔어야 했다. 그마저도 유리창을 통해 잠깐만 몇 분 정도 아기 얼굴을 보고 돌아와야 했다.

모유수유의 기회는 바로 날아갔다. 아이가 출산 후 체중 감소도 심했고 안고 모유수유를 못해서 그런가 죄책감이 아직 남아있다. 또한 산모교육을 개별적으로 하지 않고 병원의 지하에 있는 강당으로 몇 시에 모이라는 것이다. 산모들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어기정 걸어서 강당으로 내려갔다.



물론 모유수유를 원하는 산모들은 허락된 정해진 시간에 맞춰서 병실에서 불편한 몸을 이끌고 계단을 내려가서 결국 하고 오는 엄마들도 있었지만 정말 불편을 많이 감수해야 해서 금방이라도 포기하고 싶게 만드는 환경이었다. 결과적으로 두 나라의 출산환경을 비교해보면 독일은 산모와 아기를 중심으로 시스템이 돌아간다면 우리나라는 병원의 편의를 위해서 시스템이 돌아갔다. 산모들과 아기들의 당연하고 소중한 권리가 의식도 하지 못한 채 많이 뺏겼다.

 요즘은 여러 가지 이유로 아이를 하나만 낳거나 안 낳는 추세인데 출산문화가 새 생명을 가족의 구성원으로 맞이하는 엄마 아빠 아기 모두에게 소중한 기회를 경험하게 해주는 문화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특히 출산후 산후조리부분은 모든 산모의 당연한 권리인데 이 부분이 자본주의 마케팅으로 돈에 따라 차등하여 케어를 받는다는 것이 좀 아쉽다. 

어디까지나 10여 년 전의 일이니깐 지금은 많이 개선되었을 것이라고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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