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는 독립된 인격체
독일 한 도시의 동물원 안에 있는 어린이 놀이터다.
동물원 안에 있는 그 놀이터는 규모가 큰 편에 속해서
주말이면 아이들이 있는 가족들은 유모차나 수레에 아이들 장난감과 아이들이 탈 것들 간식등을 가득 싣고
놀이터로 피크닉을 온다.
아장아장 걷는 아기들이 있는 가정은 엄마와 아빠가 교대로 아이를 밀착 보호 하고
스스로 놀 수 있는 유아기나 초등 저학년 쯤 되는 아이들의 부모들은 놀이터 구석에 자리를 펴고 아이들을 간간히 지켜보며 책이나 신문을 보는 등 자신의 휴일 시간을 즐긴다.
나도 아이를 지켜보고 있던 중 한 독일 아이가 아빠에게로 다가 간다.
그러니 아빠가 뭘 도와줄까?
What can I do for you? 라고 말한다.
그러니 아이가 할말을 뭐라 뭐라고 한다.
보통은 그 말을 레스토랑이나 백화점등 상점에서
또는 길을 가다가 타인을 도울 때 쓰는 표현이라고 생각했는데
부자지간의 대화에서 이런 표현이 나와서 나에겐 그 표현이 잠시 낯설었다.
아빠가 아이에게 우산을 씌워줘도
“고마워, 아빠” 라고 아이는 감사의 말을 전한다.
등산하다가 더워서 겉옷을 벗어도 벗은 옷은 각자 스스로 들고 간다.
물론 케어가 필요한 유아기때는 부모가 도와준다.
하지만 6-7세 쯤 되서 기본적으로 자신의 일을 처리할 수 있을 나이가 되면
모두 자신의 책임하게 생활을 한다.
더워서 벗은 옷도 자신이 들거나 메는 등 해결을 하고
부모에게 맡겨야 할 때는 정중히 부탁을 하고 부탁을 들어주는 선의를 베풀면
고맙다며 감사표시를 하는 것이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아이는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라는 것이 전제가 되어 있다.
부모 자식간에도
부모는 아이에게 “무엇이 필요하니? “”무엇을 도와 줄까” 먼저 물어 보고 도움을 준다.
서로에게 조그만 도움이라도 주면 감사하다고 꼭 인삿말을 전한다.
“다 너를 위한 것이다” 라는 부모의 속단으로 아이에게 도움부터 주는 것은
아이가 스스로 해결할 기회와 생각할 능력을 뺏는 명백히 선을 넘는 행위 라는 것이다.
부모는 아이의 행동을 자세히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되 한 발 뒤로 빼서
아이가 도움을 요청할 경우에만 도와주는 것이 아이의 능력을 한 뼘씩 자라게 하는
좋은 방법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