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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당동붓다 Nov 13. 2023

불안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가정과 세상이 늘 열심히 공부하라고 해서 열심히 공부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인생 성공하는 것이라고 모두들 얘기했다. 하지만 막상 대학에 들어가 보니 뭘 할지를 모르겠더라.

대학에 던져진 나는 대체 뭘 좋아하는지, 왜 이 전공을 택했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먹고살아야 하는지 모든 게 막막하기만 했다.


그 시절 나온 책이 알랭드보통의 '불안'이라는 책이었다. 그때는 그 책을 참 좋아했다. 대단한 답을 내려주는 책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왜 이렇게 마음이 어려운지는 알겠더라.

책의 내용은 이랬다.

우리의 사랑에는 늘 조건이 붙어, 그 조건에 부합하여 사랑받기 위해 끊임없이 불안해한다.

'나'라는 인간은 사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남들보다 우월해지기 위해 많은 것들을 욕망한다. 그러나 이러한 '남'의 기준에서 만들어지는 사회적 지위는 사실은 나의 통제하에 있지 않은 불확실한 것들이기 때문에, 나는 늘 불안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알랭드보통은 결국은 철학, 예술, 기독교 등에서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나'에게 집중하며 타인의 기준이 아닌, 나 그 자체를 이해하고 사랑하자 뭐 그런 얘기였다.


그런데 그 책에서 그런 얘기를 한다.

'우리는 부모에게서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는다. 그것이 인생에서의 유일한 조건 없는 사랑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그 조건 없는 사랑을 어렸을 때 잘 받지 못한다. 내가 다른 나라에서 살아본 것은 아니어서 잘 모르겠지만, 아이의 성적이 부모의 성적인양 보이는 이 사회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경쟁이 시작된다. 유치원 입학 전까지는 내 아이가 얼마나 큰지, 말은 얼마나 빨리하는지가 육아 성공의 척도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만나는 몇몇 엄마들은 내 딸만 보면, 애가 왜 이렇게 키가 작은지, 말랐는지를 물어보며 비타민을 먹여라 어디 병원을 보내라 지랄들이었다. TV를 틀어주며 아이가 정신없는 틈을 따 밥을 욱여넣으며 어느 날, 나는 나도 모르게  "엄마는 동아가 밥을 잘 먹어서 너무 기뻐!"라고 말했다. 그 순간 나는 밥그릇을 설거지통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그 이후로 다시는 TV나 유튜브를 보여주며 밥을 주지도, 먹기 싫다는데 억지로 밥을 먹이지도 않았다. 하루 중 가장 소중한 밥 먹는 시간을 이렇게 보내는 자체가 싫었고, 밥을 잘 먹으면 사랑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나의 이상한 언어도 혐오스러웠다. 그때부터 나는 아이의 밥을 먹이지 않고, 앉아서 함께 밥을 먹었고, 눈이 마주치면 "엄마는 동아가 동아여서, 사랑해. 예뻐서도 아니고, 엄마 말을 잘 들어서도 아니야, 동아여서 사랑해."라고 주문을 걸듯 알려주었다. 아이의 친구를 만들어준다는 명목하에, 인생에 답이 정해져 있다는 듯이,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는 아이 친구 부모들은 만나지 않았다. 다행히 내 친구들에게 아이들이 있었고, 우리는 자주 함께 만나 서로의 친구가 되어주었다.


유치원 시작부터, 대화의 주제는 아니나 다를까 교육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노무 영어, 그노무 선행의 역사가 다시 시작됐다. 요즘의 대치키즈 마냥, 나 때도 유치원 때부터 영어학원을 다니고, 3-4년 정도 수학 선행을 해야 했다. 아이들은 만나면 너는 지금 6학년 수학을 하니, 중학교 진도를 시작했니라는 쌉 소리로 자랑을 해대기 바빴고, 반장선거와 회장선거가 치열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당연히 학교가 끝나면 주말까지 하루에 2-3개 학원을 다녔고, 밤늦게까지 숙제를 했다. 우리 엄마는 코 흘리는 나를 붙잡고, 너는 외고에 가서 SKY를 나와 변호사가 되어 엄마의 못다 이룬 꿈을 이뤄야 한다고 얘기했다. 다행히 나는 그 동네를 떠나 이사를 해야 해서,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는 아름다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끔 엄마가, 친구 엄마들 모임에 다녀온 날에는, 모의고사 점수가 낮게 나온 세상 몹쓸 자식이 없었다. 그리고 대학에 합격했을 때, 나는 엄마의 가장 위대한 효녀가 되었다. 


그렇다고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공부를 잘해 엄마를 기쁘게 하고 싶었고, 엄마가 기뻐하는 것의 나의 큰 즐거움 중 하나였다. 하지만 대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나는 깨달았다. 내가 선택하려 했던 전공, 직업, 취향까지 정말 내 것은 어디에도 없었음을. 그렇다고 우리 엄마가 무엇을 대단히 요구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남들처럼 공부 열심히 하라고 했고, 남들보다 더 뒷바라지를 해주셨고, 많이 헌신했다. 다만, 그 남들보다 잘난 아이로 만들겠다는 엄마의 욕심 안에 내 것이 없었을 뿐이었다. 엄마의 잘못이 아니었다. 엄마는 정말로 열심히 살았고, 최선을 다해 나를 키웠다. 그래도 엄마는 나를 중학교 때 독서실에 데려가 몰입의 경험을 시켜주었고, 적어도 스스로 책상에 앉아 공부하게 했고, 자기 밥벌이는 하게 했다. 방향이 좀 잘못되긴 했지만, 방법이 잘못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부족하지만 내 딸의 모든 시선을 '나'에게 향하게 해 준다. '내'가 무슨 색을 좋아하는지, '내'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나'의 오늘 기분은 어떤지, 그런 것들이 쌓여 나의 취향과 진로가 만들어진다고 믿는다. 남들과 비교했을 때 영어를 어느 정도 수준으로 하는지, 수학을 친구에 비해 몇 학년 선행을 하는지는 내 인생의 관점에서는 정말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물론, 매일매일 학교에서 내준 숙제를 성실히 하고, 시험을 보면 최선을 다해 풀어야지, 그게 지금 이 시기부터 쌓아가야 할 인생에 대한 자세이니까. 누가 시험에서 1등 했으니까 너도 해야 한다, 의사나 판사가 되려면 지금 이 정도 수준은 해야 한다가 아니라. 네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이게 왜 필요한 공부인지, 이게 너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알려줘야 한다. 요새 듣는 답답한 말 중 하나는, "우리 애가 예체능 쪽은 아니어서 공부라도 시켜야지."라는 얘기다. 인생이 얼마나 다양하게 뻗어갈 수 있는데 문과/이과/예체능의 세 가지 구분만으로 나누며, 아직 10살도 안된 아이들의 직업을 왜 벌써부터 부모가 결정하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인생이란 게 얼마나 긴데, 왜 긴 인생을 시작부터 정해놓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말로는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했으면 좋겠다고 얘기하면서, 똑같은 학원에 보내고 똑같이 생활하게 하면서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찾을 시간과 기회조차 박탈한다. N잡러에 시대에, 빠르게 변하는 이 시대에, 부모만 도태되어 있다.


그러니까 결국에는 이 모든 것은 '나'의 불안에서 기인한다. 내 자식이 남들보다 뒤떨어지지는 않을까 혹은 남들보다는 잘 살아야 한다는 이 불안감을 나에게로 향하게 바꿔야 한다. 내 아이가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 내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고, 내 아이가 예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 내 외모를 가꿔야 한다. 나의 불안감을 아이에게 투영시키면 둘 다 피곤해질 뿐이다.


단언컨대 우리의 자식들은, 스스로 잘 살아갈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아이가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 것이라 믿으며, 스스로 설계하고 선택할 수 있게, 응원하고 지지하는 것뿐이다. 부모의 사랑이라는 자양분을 먹으며 이 거친세상에서 불안을 극복해갈 수 있도록.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남과 비교할 때, 오롯이 '나'를 사랑해주는 단 하나의 존재가 되어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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