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향 Mar 31. 2021

원룸에 산다고 거짓말을 했다

서울 세입자 일기 (1)

  부끄러운 과거지만 나는 스물다섯의 나이에 가출한 경험이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몇 개월째 취업이 안되자 슬슬 부모님의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인터넷으로 묻지 마 입사 지원을 하던 중 러시아 호텔 인턴십 프로그램에 합격했다는 통지를 받았다.

  호텔 이름은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글로벌 체인이었지만 하필 지역이 사할린이라는 도시였다. 블라디보스토크도 아니고 모스크바도 아닌 사할린이라니.

  부모님이 가장 우려한 건 사할린이라는 낯선 땅에 나를 혼자 보내는 것보다 인턴십 교육 프로그램 비용의 명목으로 내야 하는 300만 원이었다. 취업 사기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이라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부모님의 걱정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취업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진 내가 눈에 보이는 게 없었던 것이지 싶다. 부모님의 반응도 나로선 자존심이 상했다. 축하받고 싶었기에 취업 이후 당당히 증명해 보이면 인정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행히도 인턴십은 취업 사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출국 일주일 전 일방적으로 비자 취소 통보를 받았다. 현지 사정이라는 사유로.

  친구들과 한바탕 송별회를 하고 정규직 호텔리어가 돼서 돌아오겠다는 꿈이 좌절된 건 별일 아니었지만 당장 부모님 얼굴을 볼 면목이 없었다.

  철없게도 환불받은 300만 원을 들고 편지 한 장만 남겨놓은 채 서울행 기차를 탔다.

 


  서울역 PC방에 앉아서 인터넷으로 보증금 없는 원룸 월세를 검색했다. 월세가 싼 곳은 다 은평구 같은 서울 외곽에 몰려있었는데 그땐 은평이 어디에 붙어있는 동네 인지도 몰랐다. 서울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30분 이상을 가서 당시 스마트폰도 없이 겨우겨우 찾은 곳이 고시원임을 알게 된 건 한참이 지난 후다. 고시원의 개념 자체를 몰랐기 때문에 그저 원룸이라는 게 생각보다 많이 좁구나 느꼈고 내가 기대하던 독립의 로망과는 하늘과 땅보다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한 달 월세 30만 원. 생활비를 아무리 아껴도 6개월 이상은 버티기 힘들 것 같다는 판단 하에 당장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르바이트라도 번듯한 데서 하고 싶어서 강남에 있는 시중은행 기업금융센터의 단순 사무보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가출의 명분도 만들어야 해 근처 통번역대학원 입시학원을 등록했다.

  한 달 아르바이트 월급 50만 원에 학원비 30만 원, 월세 30만 원. 숨만 쉬어도 마이너스인 초라한 20대 사회생활의 시작이었다.



  대형은행의 기업금융센터이다 보니 같이 일하는 직원들은 대부분 스펙도 집안도 좋아서 나와는 다른 부류처럼 보였고 늘 주눅이 들었다. 단지 정규직과 아르바이트생이라는 신분 차이만이 아니라 살아온 인생 자체가 다르게 느껴졌다.

  지방에선 나도 나름 좋은 대학을 나오고 잘 사는 집의 딸이라고 생각했는데 또래 직원들은 매일 퇴근 후나 주말에 비싸고 화려한 맛집과 카페 등을 갔다. 일상 자체가 인플루언서였다.

  나는 아르바이트생이라는 이유로 늘 얻어먹기만 했지만 은행 언니에게 결혼식 청첩장을 받았을 땐 축의금을 낼 돈조차 없어서 있지도 않은 약속을 핑계로 참석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누군가 "노향 씨는 집이 어디야?"라고 물었다.



  본가는 천안이고 지금은 원룸에서 자취해요.

  어느 동네 원룸?

  은평구요.



  순간 느낀 감정은 열등감과 부끄러움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얼떨결에 고시원을 원룸이라고 속였고, 강남에도 원룸이 많은데 회사와 학원이 지하철로 한 시간 떨어진 동네에 산다는 게 들통난 기분이었다.

  다시 천안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그날 밤 캐리어를 쌌고 천안까지 택시를 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