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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향 Apr 06. 2021

6년 동안 세를 안 올린 집주인

서울 세입자 일기 (2)

  서울에서 갖은 고생을 다하고 한동안 집을 떠나지 못했다. 1년 후 서울의 한 주간지에 수습기자로 합격했지만 천안 본가에서 왕복 세 시간 기차를 타고 6개월 동안 통근을 했다.

  아침마다 온 가족이 출근 전쟁을 치렀다. 날이 갈수록 몸도 마음도 피폐해져 가는 나를 보며 아빠가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곧바로 공인중개사와의 약속이 잡혔고 아빠를 따라 부동산 여정을 시작했다.



  고시원의 트라우마가 남았었다. 웬만한 집은 다 좋아 보였다. 5평 남짓한 원룸도 나쁘지 않게 보였다. 진정한 독립이라는 자체와 아기자기 꾸밀 수 있는 내 공간에서 늘 꿈꾸던 생활이 머릿속으로 그려져 행복했다.

  회사가 있는 여의도는 당시에도 원룸 전세가 1억을 넘었다. 아빠는 시세가 절반도 안 되는 신길역 앞 오래된 오피스텔을 계약하기로 결정했다.

  욕실 나무 문이 낡아서 썩어버렸고 창문도 작아 답답해 보이는 집이지만 회사까지 걸어서 15분이면 갈 수 있고 24시간 건물을 지키는 경비 아저씨도 있어서 나름 장점이 많았다.



  그 집에선 총 6년을 살았다. 독립을 이룬 기쁨에 셀프 도배도 하고 예쁜 가구들을 들이며 집구석구석 애정을 쏟았다. 하지만 갈수록 답답한 공기와 밤새 영등포역을 나가고 들어오는 화물차 소리, 결정적으로 집에서 쥐만 한 바퀴벌레가 출몰한 이후엔 집에 있는 것이 싫어졌다.

  살던 곳은 가장 꼭대기인 11층이었는데 화물차가 한번 지날 땐 소리만 문제가 아니라 건물 전체가 지진 난 것처럼 흔들렸다. 정신과에 가서 신경안정제를 처방받아 먹어야 할 정도로 불면증에 시달렸다. 한밤중 벽을 기어오르는 바퀴벌레를 발견하고 집 앞 편의점으로 달려가 에프킬라를 사 와서 한 통을 다 뿌려 죽인 적이 있다. 그리고 바퀴벌레 시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집을 나가버렸다.

  2010년 여의도에 멀티플렉스가 생기자 외박을 일삼기 시작했다. 직원 말고 아무도 없는 심야 영화관에 혼자 남아 마지막 영화까지 본 날이 여럿이고 호텔에서 잔 날도 많았다.



  이렇게 버틸 바엔 이사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때 나는 부동산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냐 하면 내 이름으로 계약서를 쓰고 직접 보관까지 했는데 임대차 계약기간의 의미를 몰랐다.

  누구도 내게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았던 문제도 있지만 굳이 알아야 할 필요성을 못 느낀 게 이유였다.

  집주인은 오피스텔 1층에 사장 집무실을 만들어놓고 매일 상근을 했다. 오며 가며 인사를 나눌 때마다 "세입자님, 계약기간은 신경 쓰지 말고 오래오래 사세요."라고 말하며 사람 좋게 웃었다. 그러니까 내 임대차 계약은 묵시적 갱신에 의해 자동 연장되고 있었고 주인의 선심으로 임대료 인상 없이 편히 살았던 것이다. 훗날 다시 알게 된 사실은 당시 재건축 예정이던 건물이 철거 직전의 상황이어서 임대료를 인상하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다.



  문제는 임대차 계약의 개념조차 없던 내가 이사를 원하면 언제든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것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살고 싶은 만큼 살아도 된다는 집주인의 말이 내가 원할 때 이사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이해했다.

  퇴근 후에 시간이 날 때마 틈틈이 집 구경을 다니다가 덜컥 신축 원룸을 매매 계약했는데 월세 대비 대출이자가 절반도 안 됐었기 때문이다.

  잔금 일정을 확정하고 집주인에게 전세 보증금 반환을 요청하자, 계약서상 만기인 3월이 돼야 돌려줄 수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때 '주택임대차보호법'을 처음 알았다. 집주인은 나보다 돈이 많은 건물주니까 5000만 원 정도는 쉽게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몇 날 며칠을 집주인에게 사정한 끝에 현금 5000만 원을 돌려받았만, 이자 20%를 내는 조건이었다.



  이때의 경험은 직간접적으로 미래의 내 경제관념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세상 물정 모르던 내가 큰 사고 없이 잘 살 수 있었던 건 사회의 보다 경험과 힘이 있는 이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처음으로 집주인이 돼 임대차 계약을 했을 땐 내 능력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선의를 베풀었다. 월세를 깎아주기도 하고 집에 작은 고장이나 문제가 생기면 세입자 과실이라도 수리비를 내줬다.

  선량한 마음이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고 다시 내게 돌아오길 바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 일은 인정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룰에 의해 굴러간다는 것 또한 나쁜 경험을 통해 얻을 수 있었다. 왜 나의 첫 집주인은 사회가 이렇게까지 혹독한 정글이라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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