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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향 Jun 16. 2024

세입자는 동물 키우면 안되나요?

후암동 빌라 사람들-1

‘좋은 집’의 기준은 안락함보다 값으로 인정받는 자본주의 사회지만, 삶의 형태와도 같은 주거의 선택에 저마다 다른 가치관이 있다.


2024년 6월 11일 우리 가족은 후암동의 한 신축 빌라로 이주했다. 이전에 살던 집에서는 차로 1-2분 떨어진 거리에 있지만 율이 솔이가 다니는 학교까진 더 멀어지게 되어 이사를 고민해야 했다.


4년간 잘 살아온 집에서 원치 않게 퇴거하게 된 이유는 1년 전부터 키운 강아지 때문이다. 전 임대인은 사전 협의 없이 반려동물을 키운 것이 계약 위반이라며 퇴거를 요구했다. 임대차계약의 특약에 ‘반려동물로 인한 시설 손상 시 원상복구’ 조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이 동물 사육 금지의 의미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아래 위층에 이웃으로 살면서 법적 분쟁을 치르는 것은 쉽지 않았기에 이사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새 임대인 가족은 평생 샐러리맨으로 살면서 정든 단독주택을 허물고 은퇴 후에 처음으로 5층 다세대주택을 지었다고 했다.


반려동물과 함께 입주하는 것에 동의해 주어서 망설이지 않고 계약할 수 있었다. 새 임대인 가족은 대형견을 키우고 있었는데 우리 가족의 강아지와 고양이인 레오와 슈슈를 귀여워해 주시는 분들이었다.


임대차계약서에 사인하던 날, 임대인 부부는 나에게 점심을 사겠다고 했다.


“이웃이 된 기념으로 제가 점심을 살게요!“


얼떨결에 따라가서 밥을 얻어먹고 이튿날엔 가족 모두 임대인 집으로 초대를 받아 갔다. 상경 후에 지금까지 총 네 번의 임대차계약을 해본 동안 집주인의 집으로 초대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임대인 가족의 강아지는 오바마라는 이름을 가진 한 살짜리 진도 믹스였다. 사교성이 좋고 다른 동물들을 잘 따라서 우리는 이사도 하기 전부터 종종 레오를 데리고 오바마 집으로 놀러 가는 사이가 됐다.


“노향씨, 오늘 뭐해요? 오바마네 집으로 커피 마시러 오세요!“


임대인 부부는 사람들과 교류를 즐기는 다정한 성격이면서 나이가 훨씬 어린 우리에게 늘 예의를 지켜서 대해 주시는 분들이었다. 특히 아내인 분은 정이 많아 자신에게 “이모”라고 호칭해 주길 청하셔서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입주자들은 어느새 다 같이 그녀를 오바마 이모라고 부르게 되었다.


“노향씨, 옥상에서 커피 마시고 있어요. 같이 놀래요?”


이사 3일째인 평일 저녁, 식사를 끝내고 집에서 쉬고 있는데 이모에게서 연락이 왔다. 가족들과 레오를 데리고 옥상으로 갔다.


4층에 사는 신혼부부는 친구들을 초대해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우리 집의 바로 위층에 고등학생 아들, 강아지 마루와 함께 사는 가족과도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매일 저녁 옥상 정원

남산서울타워와 여의도가 보이는 옥상에서 우리는 캠핑의자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눴다.


“그냥 있으니까 심심한데, 율이 솔이가 노래해 주면 어때? 할머니가 용돈 줄게!”


어린 시절 아빠 친구들이 집에 오면 노래를 시키곤 했는데 나는 그때의 기억이 싫었다. 긴장되고 창피하고 노래는 자신이 없고…


그래서 순간 당황해 “율이 솔이는 다른 사람 앞에서 노래해 본 적 없어요. 어른들이 주시는 돈도 거절하도록 가르쳤어요.“라며 필사 방어를 했다.


하지만 돈 때문이었을까, 율이는 의외로 눈동자를 반짝이며 노래하고 싶은 눈치였다.


“율아, 바이올린은 어때?”


그래도 학교 예술제나 학부모 공개수업에서 연주해 본 경험이 있는 바이올린을 켜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해 튀어나온 말에 율이 솔이는 신이 나서 뛰어갔다.


“다른 사람들 앞에 보여줄 수 있을 만큼 준비됐어?“라며 안절부절못하는 나와는 달리 모두가 즐거워했다.


방과후학교에서 일주일에 한 번 바이올린을 배운 율이는 바둑이 동요를 켰다.


“딸랑딸랑딸랑 딸랑딸랑딸랑 바둑이 방울 잘도 울린다. 학교 길에 마중 나와서 반갑다고 꼬리 치며 따라온다. 딸랑딸랑딸랑 딸랑딸랑딸랑 바둑이 방울 잘도 울린다.”


솔이는 작은 별을 켰다.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 동쪽 하늘에서도 서쪽 하늘에서도,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


6월 밤의 선선한 바람과 서울타워가 보이는 맑은 하늘, 여의도를 수놓는 도시의 불빛들. 서툴고 귀여운 바이올린 선율.


나는 이 순간에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을 오랜만에 했다.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어른이 됐을 때 이날의 추억은 인생에서 아름답게 기억되는 날들 중의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해줬다.


부동산 투자는 잘 못했지만, 많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행복한 인생 여행을 나는 새롭게 시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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