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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서희 Sep 13. 2020

만보 걷기 도전

건강과 몸매 관리 그리고 마음 수양


뭔가를 혼자 시작할 때는 항상 용기와 각오가 필요했다. 그런 내가 한 유튜버의 만보 걷기 동영상을 보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다음날 아침 바로 실천에 옮겼다. 는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유튜버였는데 만보 걷기를 하고 있는 자신의 발걸음과 전방향 경치를 영상에 담아 소개했다. 영상 속의 경치를 보니 걷는 것이 너무 신나고 재미있을 것 같았다. 예전 같으면 반드시 남편이나 동생, 친구 등 같이할 사람이 있을 때만 거리 산책을 나갔었다. 그러나 이번 만보 걷기는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으로 채우고 싶었다.


영모제공원 뒤 산책로를 걸으며..


결심 첫날 아, 5시 반쯤 저절로 눈이 떠졌다. 일어나자마자 다이어트(나도 코로나 자였다) 좋다는 레몬수 대신 엷게 희석한 깔라만시수를 한 잔 가득 마시고, 휴대폰이랑 아파트 센터 키(만보걷기후 센터에 들러 윗몸일으키기, 벨트, 물구나무서기 등으로 마무리 운동을 했다)만 들어가는 작은 포켓을 매고 길을 나섰다. 산책로는 우리 동네에서 가장 예쁠 것 같은 길로만 선택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귀에는 나의 절친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오디오 북이나 음악을 들었다.


첫날은 지난밤 들었던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들었다. 깡마른 노인이 바다 한가운데서 상어와 싸우며 홀로 견뎌내야 했던 힘겹고 긴 시간에 비추어볼 때, 이깟 만보 걷기쯤은 너무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그것은 초보 걷기 도전자에겐 큰 응원이 되었다. 척박한 가난과 노쇄한 몸뚱이가 전부노인이지만, 절망하거나 우울않고 오히려 에 대한 강한 투지애착을 갖는 모습이 난 매우 좋았다. 망망대해에서 홀로 작은 조각배에 의지한 , 물고기, , 상어 끊임없이 대화를 나눈다. 한때 고기잡이 파트너였던 소년과의 각별한 우정은 더없이 푸근하다. 혼자서도 대화를 하고, 매사에 긍정적인 태도와 끈기, 소년과의 좋은 관계, 이 모든 게 노인이 지닌 성품 덕이고 스스로를 외롭지 않게 했다고 생각한다. 난 <노인과 바다>를 후로도 두어 번은 더 들었다. 대게는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걷는데, 이어폰을 통해 들려오는 음악은 발걸음을 더욱 경쾌하게 하고 기분도 맑게 해 주었다.


구름다리를 건널때 하늘과 가까워지는 기분이 참 좋다.


길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예뻤다. 이 동네에 산지 어느새 9년째 접어들고 있었지만 이 작은 동네를 단 한 번도 구석구석 걸어보지 않았었다. 길 따라 연이어 있는 푸른 잔디와 싱그런 나무들, 들꽃, 넝쿨 꽃.. 마치 커다란 정원 속을 걷는 느낌이다. 처음 건너보는 도랑의 물은 생각보다 맑아서 졸졸 흐르는 물소리까지 경쾌하다. 산 중턱 아래주택단지가 있는데, 각각의 취향대로 지어진 집들과 작지만 정갈한 정원의 모습이 즐겁다. 마치 동네가 다 내 거인 양 큰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푸른 잔디와 싱그런 나무들, 들꽃


능소화꽃 터널길


전원주택단지. 각각의 취향대로 지어진 집들과 작지만 정갈한 정원의 모습이 즐겁다


징검다리사이로 흐르는 물은 생각보다 맑아서 졸졸 흐르는 물소리까지 경쾌했다



중앙광장의 비둘기들은 나의 빠른 발걸음에도 아랑곳 않고 부지런이 먹이활동에만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참 평화롭게 느껴졌다. 심지어 참새들 조차도 한걸음 폴짝 물러나긴 해도 애써 달아나지는 않았다. 어릴 적 소쿠리를 궤어 그 아래 쌀 한 줌 흩어 놓고 숨죽여 기다려도 절대 잡혀주지 않던 예민한 서울 참새들과는 사뭇 달랐다.


중심상가가 있는 중앙광장과 건너편 중앙공원
변화된 중앙광장 야경. 한결 활기가 넘친다. 22.10.


6시 즈음이면 중앙광장을 지나쳐 길 건너 골목에서 어김없이 만나는 한 아저씨가 있는데, 몸 오른쪽 마비로 굳어버린 오른팔을 가슴에 붙이고 지팡이에 의지한 채 오른 다리를 절며 열심히 걷기 운동을 하신다. 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어느 날도 빠지지 않고 운동을 나오셨다. 그분을 지나칠 때마다 삼키는 소리로 '꼭 쾌차하세요' 하고 작게 쾌유를 빌어드리며 지나간다.





보슬비가 내리면 예전 같으면 축축이 젖는 게 싫어서 가는 비에도 꼭 우산을 받치던 나였었지만 이젠 옷 좀 젖는 건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 내가 되어 있다. 영화 <미드나잇인 파리>에서 주인공 길이 약혼녀에게 비 오는 파리가 낭만적이라며 비속을 걷자고 제안할 때, "젖기밖에 더해?"하고 단번에 거절하는 약혼녀와 솔직히 같은 쪽이었다. 비 오는 것도 파리도 좋아하지만 비 맞으며 축축이 젖는 건 싫었는데 이젠 개의치 않는다. 별거 아니지만 기분 좋은 변화다.



한 공원을 지날 때 차밍한 자세로 앉아 있는 고양이가 너무 예뻐 눈길을 빼앗긴 적이 있었는데, 이슬비에 촉촉하던 어느 날 그 고양이를 다시 만났다. 젖은 공원 한가운데에 똑같은 자세로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두 번째 만난 인연으로 다가가 인사를 전하는데 놀랍게도 전혀 경계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말을 걸며 다가가자 야옹 대답하며 하얀 배를 뒤집어 보여주며 축축한 바닥에 들어 누웠다. 길냥이들을 만져본 적이 없어서 조금 어색하게 쓰다듬으며 한동안 대화를 나눴다.

 

비내리는 한적한 공원 한가운데서 기지개펴고 하품하는 야옹이


그날 이후로 그곳을 지나칠 때면 야옹이의 안부가 궁금해 안 보이면 둘러보고 찾아 인사하곤 했다. 하루는 동생과 밤 산책을 나갔었는데, 와우! 그 공원이 밤에는 고양이 사파리였다. 열 마리는 족히 넘는 고양이들이 하나같이 여유 있게 공원 바닥에 누워있거나 앉아있었다. 우리가 다가가 인사하니 여유 있게 일어나 느릿느릿 다가와 반응하였다. 다들 너무 예쁘고 신기했다. 얘들이 이렇게 여유로운 데는 이 동네 사람들의 인심이 따뜻한 때문일 테고 그런 훈훈한 세상이 흐뭇했다.



만보 걷기를 시작한 게 6월 8일이니까 어느새 3달이 넘어섰다. 초반 한 두 달은 꽤 열심히 실천했었고, 장마와 연이은 태풍, 로나 확산으로 센터 이용도 못하게 되면서는 부쩍 게으름이 늘었다. 그렇긴 해도  2회 이상은 꾸준히 하고 있다. 몸무게는 한 달 만에 3킬로 정도 감량해서 지금까지 예전의 평균 몸무게가 잘 유지되고 있다. 꾸준한 운동은 몸매 관리뿐만 아니라 건강과 기분까지 좋게 하니 1석 3조, 아니 그 이상의 시너지 효과가 난다. 


그사이 2017년 10월에 시작한 108배도 올해 7월로 드디어 목표 '천일'을 달성했다. 3년 가까운 시간을 포기하지 않고 해낸 것이다. 매우 뿌듯하고 스스로는 나를 변화시키는 성과가 분명 있음을 자부한다. 108배 천일 달성기는 다음 기회에 꼭  다루기로 하겠다.


요즘 코로나 블루니 코로나 그리니 하지만,  108배와 만보 걷기라는 건강한 습관 덕분에 우울함이 발붙일 틈이 없고 화도 예전에 비하면 훨씬 잘 다스려진다. 그래서인지 코로나로 인한 환경변화와 불편도 잘 적응하고 있다. 마음이 건강하니 몸에도 좋고, 결국 심신에 다 복이 되는 것이기에 적극 권장하는 바. 


모처럼 가을 하늘이 참 맑다. 파란 하늘처럼 독자의 마음도 그랬으면 좋겠다.


2020년 9월 13일 글 발행일, 오늘 하늘 "맑음"





영모제공원 뒤 산책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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