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왼쪽 팔에 있는 흉터를 보며...
세월호 사건 때 단식투쟁이 많았지만 가장 대표적인 건 유민아빠 단식이다. 40여 일 정도 했던 것 같은데 살아난 것이 기적이라 느껴질 정도다. 당시 말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유민아빠랑 엄마가 이혼한 상태였다는 게 논쟁거리였다. 하루는 교사들이 회식하는 날이었다. 다들 그 이야기를 꺼냈다. 유민아빠가 이혼한 상태였다면서요? 정치적인 목적이 있는 거래요. 하면서 평소 뉴스를 신봉하는 교사가 말을 꺼냈다. 그때 내가 발끈하면서 말했다.
"아니. 이혼한 아빠는 단식하면 안 되나요? 이혼하면 딸에 대한 애정을 가질 자격도 없나요? 오히려 더 애정이 깊을 수 있죠. 매일 못 보았으니까. 그리고 딸이랑 사이가 아주 좋았다던데요? 둘째 딸이 증언했었잖아요. 저는 이해가 돼요. 딸이 살아있을 때 마음껏 잘해주지 못한 것이 아쉬워서 그러는 거잖아요. 얼마나 한이 맺혔겠어요? 자기가 잘해준 것도 없는데 그렇게 억울하게 죽기까지 했으니. 마치 자기가 죽인 것 같은 심정일 거 같아요. 그 사람이 뭐가 아쉬워서 금속 노조 하나 살리려고 목숨을 내놓겠어요? 정치적으로 단식을 하려면 적어도 항일운동을 하거나 전태일 열사 정도의 이유는 되어야죠."
순간 얼음물을 끼얹은 듯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저 교사가 왜 저렇게 흥분하나? 유민아빠랑 친척이라도 되나? 하는 분위기. 심지어 그 자리에 있는 한 여교사 남편은 국정원 직원이었다. 다들 나보고 조심하라는 표정을 보냈다. 신변이 위태로울 수 있다면서. 기가 막혀서.
내가 그렇게 흥분한 이유가 있다. 내가 딱 그 심정이기 때문이다.
동생을 잃은 경험이 있다. 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동생을 사랑하지 못했다. 나이가 어려서도 아닌데.
동생을 사랑한다는 것을 안 것은 동생이 죽고 나서다. 그땐 너무 늦었다. 그래서 슬펐다. 내 사랑을 결코 줄 수가 없구나 하고.
동생과 나는 징글징글하게도 많이 싸웠다. 지금도 내 왼쪽 팔에는 심한 상처가 남아있다. 중학생 때였다. 하루는 동생이랑 또 싸움이 시작되었다. 어쩌다 내가 동생을 때리게 되었고 동생이 나를 쫓아오고 있었다. 나는 현관 밖으로 도망을 쳤다. 그러자 잽싼 동생이 번개같이 쫓아오는 게 아닌가? 그때 나는 현관 밖에, 동생은 현관 안에 마주 보고 서게 되었다. 동생은 현관 손잡이를 밀어내기 시작했고 나는 두 손으로 현관문 유리를 막았다.(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순간 판단력이나 순발력이 기가 막히게 없다.)
그러자 금세 유리가 바지직 부서졌다. 조각이 되어있어 두께가 상당했다. 그 유리가 내 왼쪽 팔을 주르륵 긁고 지나간 것이다. 깡말랐지만 천하장사인 동생의 힘이 내 팔에 그대로 밀려서 새겨졌다.
나중에 동생이 미안해하면서도 혀를 끌끌 차면서 하는 말이,
"넌 참 미련해.(얘는 나에게 한 번도 언니라고 한 적이 없다.) 나처럼 손잡이를 잡았어야지.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유리를 손으로 밀어내냐?"
듣고 보면 맞는 말이지만 이 일은 동생을 더 미워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동생은 적어도 내 기억에 칭찬하는 말을 한 적이 없다.
기억나는 험담으로 내 얼굴이 네모나다고 '아네모네'라는 별명으로 부르고, 행동이 굼뜨다고 '미련 곰탱이'로 부르고 주근깨가 많다고 '깨순이'라고 부르고 등등. 그러니 동생을 좋아할 수가 없었다. 하는 행동이 다 미웠다.
그런데 죽고 나서 알게 되었다. 동생이 나를 좋아했다는 걸. 그리고 나도 동생을 좋아했다는 걸. 다만 눈치채지 못했다. 사회생활하느라 바빴고 그 당시 사회분위기가 그랬다. 가족을 애틋하게 느끼고 챙기기엔 '성공'이라는 기차를 놓칠세라 너무 분주했다.
지금도 뼈아프게 기억나는 게 하나 있다. 동생은 남편의 부정으로 이혼을 하고는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사실을 뒤늦게 알고도 못 갔다. 당시 디자인 회사에서 내가 맡은 프로젝트가 마지막 공개경쟁심사를 앞두고 있었다. 그때 동생이 전화로 한 번 보자고 했는데 도저히 시간이 안 난다고 했다.
그때 동생이 힘없이 수화기를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도 갈 수가 없었다. 그깟 회사 일이 뭐라고. 결국 그 프로젝트는 따지 못했다. 그럴 거면 갔어야 했는데.
그 회사는 나중에 부도가 났다. 회사야 다시 구하면 되지만 동생은 다시 구할 수 없다. 적어도 동생이 가장 힘들 때 내민 손을 내친 게 못 내 가슴이 아프다.
내가 동생을 아직도 꿈에서 자주 보는 건 못 해 준 게 많아서다. 어떻게든 동생을 기억 속에서 붙잡아두고 싶은 거다. 불가능한 화해를 하고 불가능한 용서를 받기 위해서. 그래서 글로 쓴다. 글에서나마 동생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아서. 내 왼쪽 팔에 새겨진 흉터도 그렇다. 동생이랑 싸운 흔적, 동생이 유리문을 밀어서 새겨진 이 흉터는 아이러니하게도 내 몸에 새겨진 동생의 흔적이다.
이팔의 흉터를 볼 때마다 동생이 떠 오른다. 그리고 혼자 중얼거린다.
'그땐 많이도 싸웠지. 그리고 그땐 그런 줄 몰랐는데... 나 말이야. 그 애를 끔찍하게도 사랑했나 봐. 다만 표현할 줄 몰랐고 사는데 바빴어.
그래. 그땐 다들 그랬어. 다들 자기 성공이 최우선이었잖아. 안 그래? 나만 그런 건 아니었잖아. 그래, 그래. 알겠으니, 이제 다른 세상 좀 만들어보자고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