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동생으로 태어날게.
그때 정말로 인사하러 온 거였니?
한 장례식에서 있었던 일이다. 병으로 아들을 잃은 엄마가 슬픔에 겨워 울고 있었다. 그때 실내에 있던 풍선 하나가 엄마에게 간다. 그리고 오래 머문다. 마치 위로하듯이. 그러자 엄마는 더 크게 흐느낀다. 그 풍선은 아들이 좋아하던 장난감이다.
마치 죽은 아들 혼이 엄마에게 가서 마지막 인사를 하는 듯이 보였다. 그 동영상은 많은 사람을 울렸다. 또 있다. 한국의 어느 장례식에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왔다. 그 나비는 거기 모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가가더니 특히 돌아가신 엄마가 제일 사랑하던 딸 앞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다. 가족들은 그 나비가 엄마라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불교신자인 엄마가 평소 죽으면 나비로 환생할 거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나비가 되어 훨훨 자유롭게 날아다닐 거라고 하셨는데 엄마가 죽자마다 나비가 나타난 것이다. 나비가 나올 계절도 아니었다. 실내에 그런 나비가 들어온 것도 특이했다. 나비 전문가는 그 나비가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희귀종이라고 했다.
정말 엄마가 환생한 것일까? 미신이라고 해도 좋고 비과학적이라고 해도 좋다. 나는 그 나비가 진짜 엄마의 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증명된 과학만 믿고 살아간다. 딱 우리 시대에 증명된 것만. 예를 들어 외계인이 실제로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지만, 없다고 믿는 사람이 더 많다. 아직 정확히 밝혀진 게 없으므로.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던 시절엔 지구가 둥글다고 외친 몇몇 사람에게 미신을 믿는다고 했을 것이다. 특히 정신세계나 사후 세계는 더욱 증명하기 어렵고 그 영역이 광범위하다.
개는 인간보다 뛰어난 청력을 가지고 있다. 반려견이 밤중에 갑자기 짖으면 왜 그러냐고 혼내는데 알고 보면 그 시간에 멀리서 나는 엘리베이터 소릴 듣고 경계한 것이다. 반려견이 들을 수 있는 구간의 소리를 우린 못 듣는다. 그렇다고 소리가 안 난 건 아니지 않은가?
동생 장례식을 치르고 가족들이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있었던 일이다. 차 안에 곤충 한 마리가 보인 것이다. 샛노랗고 메뚜기 같이 생겼는데 생전 처음 보았다. 다들 이상하게 생겼다고 했다. 그 곤충이 날기도 하고 뛰기도 했는데 가족들 한 명 한 명에게 다가가 앉아 가만히 쳐다보는 게 아닌가. 그러더니 마지막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한참이나 나를 쳐다보았다. 마치 고맙다는 인사를 하듯이.
곤충에게서 그런 진정성 있는 표정은 처음 보았다. 그저 곤충일 뿐이 아닌가. 그런데 마치 사람처럼 공손하게 앞발을 모으고는 내가 앉아 있는 좌석 창문 쪽에서 나를 쳐다본다. 한참이나. 그때 다들 울다 지쳐서 기력이 없어서인지 아님 생명을 잃은 직후라서 그 벌레조차 죽이지 못한 것인지 가만 놔두었다.
갑자기 동생 얼굴이 그 곤충에게서 보이는 착시현상이 일어났다. 동생은 간이 다 망가져서 나중엔 복수가 차고 심한 황달에 걸렸다. 눈 흰자위나 얼굴색이 마치 그 곤충과 똑같이 샛노랬다. 내가 말했다.
"마치 세정이가 환생한 것 같아요. 세정이 얼굴색이 마지막까지 이랬잖아요. 그리고 빤히 쳐다보는 모양도 꼭 세정이 같아요."
다들 동의한 부분이 있다. 동생은 여자치고는 꽤 말수가 적었다. 특히 할 말이 있거나 감동하거나 하면 말없이 상대방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것이다. 그 표정이 진지하고 진실해 보였다. 여자인데도 츤데레 매력이 있는 묘한 아이였다. 그 곤충이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가족 하나하나에게 다가가 빤히 쳐다보자 다들 동생의 평소 습관이 떠오른 것이다.
가족들은 정말로 그런 것 같다는 말과 동시에 흑흑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렇구나. 이제 마지막 인사를 하러 왔구나. 입을 육신이 없으니 곤충의 몸을 빌려서.
나는 속으로 피식 웃음이 나려고 했다. 역시나 동생답다고. 그래 너답다. 너는 뭐든 좀 특이하구나. 나비나 비둘기 등 좀 고상 한 걸로 오지, 하필 메뚜기 비슷하게 생긴 곤충으로 오다니.
진짜 동생이 온 거라고 믿게 된 건 그다음이다. 한참 그러고 있다가 갑자기 그 곤충이 사라졌다. 할 말을 다 들은 모양인지. 그때 차 창문을 아무도 연 적이 없는데 어디로 간 것일까?
혹시 하늘로 간 것일까? 지금 생각해도 신기할 뿐이다. 그 뒤로 기독교 신자였던 내가 윤회관을 갖게 되었다. 그 믿음은 지인의 아들이 자살한 장례식에서 굳어졌다. 지인이 울면서 어린 아들의 자살을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단지 아들을 잃은 것에 더해 다른 고통을 얹은 모습을 보았다. 아들을 화장할 때 계속해서 이런 말을 한 것이다.
"제발 뜨겁지는 않게 해 주세요. 그건 해주실 수 있죠? 제발."
기독교에서는 자살을 조물주에 대한 반역으로 보고 지옥에 간다고 말한다. 성경에 그런 내용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 말은 자살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잔인한 말이 될 수 있다. 특히 어린 아들을 자살로 잃은 엄마한테는.
그때 내가 교회 다니는 걸 알고 있는 분들이 나에게 신앙적으로 위로를 하고 교회로 인도해 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그 지인에게 가서,
"아드님은 자살을 했으니 어쩔 수 없어요. 이번 생은 지옥에 갔을 거예요. 그러니 다시 아들을 낳아서 잘 키워보세요. 이번엔 천국에 가도록."
이래야 하나? 엄마 입장에선 어떻게든 아들을 다시 만나고 싶어 하는데? 그럼 엄마도 지옥에 가야 만날 수 있는 건가? 안 그래도 그 지인은 아들을 빨리 보기 위해 오래 살지는 않을 거라고 말한다. 이때 가족을 잃은 사람에게는 윤회 개념이 훨씬 위로가 된다.
이렇게 위로를 하는 거다. 아니 위로가 아니라 나에게 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이번 생에선 어쩔 수없이 아들과 이렇게 헤어집니다. 하지만 남은 시간 동안 덕을 많이 쌓고 다음 생에선 아들의 동생으로 태어나세요. 그래서 아들을 오빠로 지극히 섬기고 사랑하세요. 왠지 다시 엄마로 태어나는 건 전생이 기억날까 봐 두렵잖아요. 또 한 번 이런 일이 벌어질까 봐. 또 아들로 태어나는 건 안 좋아요. 아들이 엄마에게 잘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거든요. 누나로 태어나면 섬길 수가 없고요. 친구는 또 너무 멀고. 부부로 태어나라고요? 휴우. 그건 진짜 아니잖아요. 어느 부부가 그렇게 평생 애틋하게 잘해주면서 살든가요? 오죽하면 전생에 원수지간이 부부로 태어난다잖아요.
그러니 딱, 동생으로 태어나세요. 그래서 오빠에게 자주 사랑한다고 말하세요. 오빠가 잘 들을 수 있도록 큰 목소리로요. 그럼 오빠는 죽을 때까지 동생을 챙겨주면서 든든한 지원군이 될 거예요. 나이 들어서 오손도손 사이좋은 남매가 참 든든하고 좋아 보이거든요. 그럼 이번 생에서 아들에게 지은 모든 죄가 다 갚아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