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세상에 다시 한번만 와주렴

지금은 한국에 건전한 접대 문화가 이루어졌을까?

by 허윤숙

김학의 성접대 영상 사건이나 장자연 리스트 사건을 보면서 우리나라 성접대 문화가 가지는 심각성에 대해 뼈저리게 느낀다. 나도 사업을 할 때 그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기 때문이다. 이름 대면 알만한 기업의 주재원들은 자기들 회식에 나랑 남편을 불렀다. 미리 상해에서 제일 비싼 한국 식당을 예약해 놓고. 그리고는 술과 소갈비를 실컷 먹었다.


그 회사는 우리 회사 매출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해서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 그 회사 직원들과는 사이가 아주 좋았다. 나의 일처리 방식을 존중해주었고 결재도 빨리 해주는 편이었다. 회식 장소에서도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주로 했다.


남편은 그 당시 상해 사무실보다는 북경 사무실이나 한국 사무실 쪽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회사는 사실상 나와 업무를 진행하고 있었다. 문제는 술자리가 끝난 뒤였다.


그 자리 이후엔 반드시 2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 점잖고 엘리트인 그 대기업 주재원들이 너무나도 당연히 2차를 요구하는 것이다. 마치 업무의 연장인 듯. 그러면 나는 항거할 수 없었다. 덤덤히 돈을 명수대로 세어서 남편에게 주고 잘 처리하고 오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마디 했다. "자기껀 빼도 되겠지?"


남편은 이때마다 난처해했다. 하늘만 아는 사실이겠지만 남편은 결백할 거라 믿는다. 우리 남편은 로맨티시스트에다 휴머니스트적 기질이 강하다. 특히 인권의식이 강한데 여자들이 남자들의 성적 노리개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깊은 회의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 문제로 나랑 토론한 적도 있다. 가족에게는 예쁜 딸이자 누나, 여동생일 텐데 그런 데서 일한다는 게. 무엇보다 사람이 사람을 장난감처럼 여긴다는 건 참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사업을 하려면 어쩔 수 없는 관행이었고 특히 중국이라는 곳의 특성상 더욱 심했다. 게다가 인건비가 워낙 싸니 한국에서 원정까지 오곤 했다.


사업할 때 그 문제로 하도 스트레스를 받아서 지금도 2라는 숫자를 싫어한다. 어느 모임이든 2차는 가지 않는다. 한국은 노무현 대통령이 성매매 금지법을 만들었기 때문에 조금씩 분위기가 바뀌어 가고 있기는 했지만 음지에선 여전했다.


동생도 그 부분을 힘들어했다. 동생은 이벤트 사업을 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만 상대했는데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많아 스트레스가 심했다. 특히 2차 문제가 가장 힘들다고 했다. 내가 아는 고객은 이벤트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매출이 꽤 높았다.


벤츠를 몰고 다니고 럭셔리 그 자체인데 일도 그렇게 바빠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동생은 매일 밤샘하다시피 하고 수금하고 임금 지불하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다고 했다. 나중에는 적자운영을 하는 듯 보였다. 가을이나 봄 외에는 일이 없어서 전체 수지를 맞추기 힘들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그래서 왜 그렇게 이윤이 적냐고 물어보았다. 동생 말이 이벤트 회사끼리 제살 깎기 식 덤핑을 많이 친다고 했다. 일당 10만 원 하던 인건비가 더 싸게 치고 들어오다가 나중엔 5만 원까지 내려갔다. 행사 도우미들에게 지불할 인건비는 정해져 있는데 총 행사 금액을 적게 받으면 적자가 날 수밖에 없다.


충격적인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자기네 회사에선 한 행사를 받으면 대기업 담당자가 계좌를 찍어 보낸다고 했다. 그리고는 수금 날 일정 금액을 입금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담당자에게 거액을 보내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단다. 이래저래 머리만 아프고 돈은 안 벌리는 일이었다.


하지만 제일 스트레스를 받는 일은 따로 있었다. 바로 행사 도우미들을 2차 대상자로 삼으려는 경우다. 예를 들어 회사 회식에 도우미들을 보내달라든가 하는 식. 동생은 깡패 기질이 있어 그런 식의 요구에는 절대 불응했다. 그러면 온갖 트집을 다 잡아서 수금을 미루거나 다음 행사에서 안 부르거나 했다.


동생말이 우리 회사 고객의 회사는 그런 쪽으로 악명이 높다고 했다. 즉 그 회사는 술 관련 이벤트 전문 회사인데 행사만 있으면 도우미들을 그 회사 회식에 참여시켜 술을 따르게 하고 기타 등등이 이루어진 것이다. 자기는 그래서 주류회사 행사는 안 한다고. 주류회사 행사가 돈이 제일 많이 남는데도.


대신 자기 회사는 처음 회사 면접을 보낼 때 색다른 준비를 해 간단다. 즉 단순히 예쁘게 차리고 가서 면접을 보는 게 아니라 그 회사 관련 이벤트 송과 춤을 만들어 간단히 율동과 노래를 하게 한다고 했다. 그리고 제품 홍보 멘트를 직접 만들어서 들려 보내면 도우미들이 직접 시연해 보이기도 한다고.


어느 누가 자기 회사에 대해 미리 공부하고 오는 사람을 마다하겠는가? 동생의 능력은 여기저기서 증명되었다. 작은 잡지에 인터뷰 기사가 실린 적도 있다. 이벤트 회사의 대모 누구. 또 어딘가 실린 적이 있는데 내레이터 조련사 누구. 하고 말이다. 동생 회사는 적은 이윤만 빼면 외양으론 꽤 잘 나갔다. 특히 동생의 기획력이나 영업력은 뛰어났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노력 하나 없이 어둠의 경로로 돈을 버는 게 훨씬 잘 벌긴 하나보다. 게다가 동생은 너무 머릴 많이 쓰고 밤샘을 많이 했다. 더러운 꼴을 안 보는 대신 자신을 혹사했던 셈이다. 그러니 병이 나지.


우리나라가 사업이나 정치에 있어서 공정하고 투명하게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가 2차라는 말의 트라우마가 사라지고 동생은 일한 만큼 이윤을 남기는, 그런 세상이 꼭 왔으면 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세상에 동생이 딱 한 번만 다시 왔으면 좋겠다. 제대로 된 사업 한 번만 해보게.

keyword
이전 25화싸구려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