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구려 기도
동생은 싸구려 기도라도 잡아보려 했다.
"안수기도는 원래 한 번만 해주는 건데 쩝."
부흥회 목사가 심드렁하게 내뱉은 말이다. 그러면서 하는 둥 마는 둥 동생 머리에 손을 얹고는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뭐라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마치 약장수 같은 기도였다. 내가 목을 많이 쓰는 교사라 아는데 그런 발성법은 목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 아주 무성의한 방법이다.
그런 기도를 받게 한 내가 너무 한심해 보였다. 몸도 가누기 힘든 동생을 이런 쓰레기 같은 목사한테 데려왔나 싶었다.
동생이 점점 통증이 심해져 가던 어느 날 내가 교회 부흥회에 가보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제법 내 신앙 간증까지 덧붙여서.
내가 일곱 살 무렵이었다. 그 당시엔 동네마다 교회가 여기저기 들어서기 시작했다. 우리 동네에는 '성덕교회'라는 교회가 있었다. 그 교회에 가면 맛있는 것도 주고 재밌는 인형극도 한다길래 친구 따라 가보았다. 그런데 며칠 뒤에 부흥회라는 게 열렸다. 본 교회 목사가 아닌 부흥회만 전문적으로 하는 목사가 와서 부흥회를 집행하는 것이었다.
평소 그 교회에는 동네 거지란 거지는 다 몰려오곤 했다. 당시엔 직업적인 거지가 많았다. 20대 건장한 남자 거지도 많았다. 그런 거지를 보며 나는 거지도 하나의 직업쯤으로 알고 있었다. 너무도 당당한 그들의 구걸 행태 때문이었다. 아주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단계를 밟아 각 가정마다 정기적인 방문을 일삼았다.
부흥회엔 그 거지들이 총출동된 듯 보였다. 꽤 낯익은 얼굴들도 보였다. 그 거지는 가끔 리어카를 끌고 다니면서 엿같은 것을 팔기도 했는데 본업이 거지인지 엿장수인지 헷갈리게 했다. 나름 투잡이었던 셈이다. 즉 경기 보아가면서 가정에 고무신이나 고철 재고가 있어 보이면 엿장수를 하다가, 각 가정별로 제고가 바닥이 나면 다시 거지로. 거지로서의 정기 방문은 재고 파악에 도움이 될 터였다.
그 거지들이 오면 교회에서 빵이나 10원짜리 동전을 쥐어주었던 걸로 기억한다. 부흥회 때는 과자까지 덤으로 주었다. 그러니 몰려올 수밖에. 그리고 적어도 그때 교회 목사들은 거지들을 무시하지 않았다. 숫적으로 흔하기도 했고 교회가 순수했을 때였다.
하루는 교회 가다가 넘어져서 손바닥에 돌이 박혔다. 구멍이 나면서 상처가 난 손바닥에는 다음날부터 진물이 흘렀다. 그런데 부흥회 첫날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아픈 곳에 손을 대고 낫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정말로 낫는다고. 나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내 손바닥에 손을 대고 기도했다. 그렇게 부흥회가 끝나고 집에 오는데 손바닥에 무심히 눈길이 갔다. 그런데 웬걸? 손바닥이 깨끗이 나아 있었다. 나는 내 기도를 그렇게 빨리 들어주신 하나님을 믿기로 했다.
그 이야기를 동생에게 들려주었다. 물론 스케일이 달랐지만 동생의 기도도 들어주실지 누가 아는가? 평소라면 내 말을 귓등으로 흘려들었을 동생이지만 사안이 사안인만큼 내 말을 들었다. 그래서 동네에서 가장 가까운 교회의 부흥회 일정을 알아보고 날자가 되었을 때 참석했다.
요즘 부흥회는 건물만 보고도 언제 열릴지 짐작이 간다. 즉 신축 교회는 오픈하자마자 부흥회를 시도 때도 없이 연다. 건축비의 빠른 회수를 위해. 그 교회도 신축 교회였는데 말만 부흥 회지 딱 모금회, 바자회였다. 그 목사는 당시 한국사회에서 돈 설교로 가장 유명한 분이었다. 십일조를 잘 내서 자녀 유학까지 시키고 자신이 떼 부자가 되었다는 식. 그리고 자기 교회 성도들은 계절마다 자기 차를 외제 승용차로 바꿔준다고.
설교에는 십일조 이야기가 90% 가까이 되었다. 그리고 양념처럼 슬쩍 끼워 넣은 말. 돈을 많이 내면 말기 암덩어리가 다 떨어져 나가고. 그 말에 이르자 동생이 눈을 번쩍이면서 나에게 현금이 지금 얼마 있느냐고 했다. (그 당시 내가 동생 돈을 관리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갖고 있는 걸 세어보니 총 59만 원이었다. 그 당시 꽤 큰돈이었는데 그걸 몽땅 헌금으로 내라는 것이다.
그래서 헌금통이 내 앞에 이르렀을 때 이게 잘하는 짓인가 하면서 그 돈을 몽땅 냈다. 그리고 부흥회가 끝나고 안수기도를 받으러 갔다. 그 목사는 피곤하다는 듯 기도를 해주었다. 그래도 동생은 몹시 희망에 부풀어 보였다. 그러더니 다음날도 또 가겠다는 것이다. 나는 내키지 않았지만 동생이 모처럼 의욕적으로 나오니 데려갔다. 동생은 이미 거동이 힘들어서 온 가족이 매달려 차로 데려다주고 안아서 의자에 앉히곤 했다. 걸음도 못 걸었던 아이가 살아보겠다고 몇 시간이나 앉아 있었던 걸 생각하면.
그런데 두 번째 안수기도를 받으러 갔을 때 그 목사가 핀잔주듯이 말한 것이다. 두 번씩이나 기도받는 경우는 없다며. 알고 보니 돈봉투를 따로 주면서 부탁을 했어야 했던 것이다. 우리가 59만 원 헌금을 낸 줄 모를 테니. 현금박치기 장사도 아니고.
부흥회가 끝나고 나서 병이 호전될 줄 알았던 우리는 속은 기분이었다. 그 뒤로 급속도로 악화되어 갔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췌장암은 마지막 병 투병 때 극심한 통증을 호소한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이 화장실에서 나를 부른다. 얼굴을 보니 아주 기뻐 보였다. 그리고 자기 손가락으로 욕실 바닥을 가리켰다. 몸에서 저런 게 쏟아져 나온다고. 바닥을 보니 시뻘건 핏덩어리들이 있었다. 동생은 아마 그게 암덩어리들이고 기도를 받아 다 떨어져 나간 거라고 믿는 듯했다. 나는 겉으론 기쁜 표정을 짓고는 얼른 병원 담당 의사에게 전화로 물어보았다.
그러자 의사가 말했다. 아주 건조한 어조로. 그건 암덩어리가 아니라 내장 조직이라고. 부패한 신체 장기들이 하나하나 폐기 처분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동생은 자기가 낫고 있는 줄 안다. 하지만 사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동생은 전에 교회를 다니지도 않았다. 갑자기 자기 살자고 신앙심이 생길 리도 없다. 그런데 무슨 기적이 일어나겠는가? 동생이 그 당시 쓴 일기를 본 적이 있다. 거기엔 무척 당돌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하나님 저는 살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제가 살 수 있을까요? 제게 기적을 보여주세요. 그럼 하나님의 존재를 믿겠습니다."
이런 태도를 가진 신자를 누가 예뻐했겠는가? 내가 하나님이라도 그런 식의 조건부 기적은 원치 않으셨을 듯.
나는 그 돈 밝히는 목사의 부흥회를 끝으로 부흥회는 다시 안 간다. 교회도 그 뒤로 오랫동안 다니기는 했으나 지금은 안 다닌다. 너무 실망해서.
그리고 동생은 그 교회 이야기가 나오자 다시는 약장수에게 가고 싶지 않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마지막 생명줄을 붙잡고 있는 환자에게 그렇게 쌀쌀맞게 대하는 목사가 가는 곳이 과연 천국일까? 지금도 참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