밉게 말하는 사람

사람의 진의를 파악하기

by 허윤숙

수업을 끝내자마자 한숨을 쉬며 나왔다.

6교시라 그런지 아이들이 많이 떠들고 산만해서다.

가르치는 일은 역시 진 빠지는 일이야.

하면서 교실문을 나서는데 그 학급 여자 회장이 헐레벌떡 따라 나온다.

"선생님. 선생님이 자꾸 오해하시는 것 같아서 말씀드리는데요. 저희 반 아이들 선생님 수업 아주 좋아해요. 그리고 아까 그 남학생들 선생님이 나가시고 나면 항상 재미있었다고 말해요."

생각하던 것과 완전히 다른 말을 하니 믿기지가 않는다.

"그런데 그 남자애들은 왜 그렇게 시끄럽게 떠들고 장난치고 그러지?"

그러자 여학생은 한숨은 쉬며,

"걔네들은 원래 말 안 듣는 애들이에요. 관심이 없는 선생님이나 재미없는 수업은 아예 대꾸도 안 하고 듣지도 않아요. 조용히 딴짓하죠."

그러고 보니 그 말 안 듣는 학생들은 가끔 시키지도 않는데 자발적으로 청소도 한다.


역시 내가 여자 형제끼리만 자란 것의 후유증은 끈질기다.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직도 남편이나 아들의 언어습관을 이해하지 못한다. 게다가 학교에서 남자 교사들이나 남학생들의 언어 습관은 더욱 낯설다. 가끔 나한테 나쁜 감정이 있어서 그런지 의심되기도 한다.


남자들의 언어습관이란 대체로 직설적이고 단어수를 최대한 아낀다. 몇 마디 더 한다고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단어수를 아낌없이 퍼부어주는 여자들에 비해 까칠하거나 불친절하게 보이기 십상이다.


반대로 여자들은 대부분 생략법을 쓰지 않는다. 구구절절 설명하니 그 태도나 분위기 등으로 좋게 해석하기 일쑤다.


동생이 떠나고 나서야 태도나 분위기의 함정을 알게 되었다. 말의 진의를 파악하기 전에 우리는 그 사람이 말하는 느낌이나 단어 하나하나를 분석하게 된다. 그리고 혼자 결론을 짓는다.

"저 사람은 나를 싫어하는구나. "

혹은 "나를 아주 물로 보는구나. 아무리 내가 편하고 좋아도 그렇지 이렇게 만만하게 대하게 하면 안 돼."

하면서 선부터 그으려고 한다.


그런데 그게 가족이라도 그럴 수가 있다는 것이다. 철이 들기 전까지는 말이다.

안타깝게 동생이 조금 더 살다 갔으면 그 철듦 분계선을 넘어선 나를 보고 갔을 거고 그러면 내가 주는 사랑을 받았을 것이고 그러면 나도 이렇게 후회하지 않았을 텐데.


뭐든 무르익는 시기가 따로 있는 듯하다. 사람의 인격도 과일도.


그 시기를 못 참고 떠나버린 동생이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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