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알던 검사가 있었다. 현재 로펌에 있지만 한 때는 호랑이 같은 기세로 검사직을 수행했다. 그가 사법연수원에 있을 때부터 알게 되었는데 요즘도 이런 젊은이가 있나 싶을 정도로 인격이 훌륭했다. 지방 중학교를 나와 시골에서 서울 친척집으로 고등학교 유학 생활을 했다.
그 과정에서 객관적으로는 서운할 일도 그는 전혀 서운해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친척 가족들만 고기 외식을 하러 가고 그는 안 데려간다든지. 하지만 그는 이해했다. 방 내주고 밥 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하고.
예전엔 시골집에서 서울 친척집으로 아이들을 유학시키는 집이 많았다. 그 경우 식비와 생활비를 잘 챙겨주는 경우는 드물고 쌀을 보낸다든가 농산물을 보낸다든가 했다. 시골 사람들은 친척이니까 한 가족처럼 임의롭게 여겨 부탁하지만 서울깍쟁이 친척들은 그런 인심이 없다.
나는 그 검사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궁핍한 가운데서도 평온하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항상 자신보다 남을 생각하고 돕는 그였기 때문이다. 타고난 천재이기도 했다. 그 당시 사법 연수원 성적이나 서울지검 인사고과 같은 데서도 뛰어났다.
내가 감동했던 것은 검사직을 수행하면서까지도 인간미를 풍겼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 당시 성폭행범을 수사한 적이 있는데 여권에 관심이 많아 특별히 엄하게 수사를 했다. 다른 남자 검사들이 남성 편향된 시각으로 취조하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한 번은 피의자가 성폭행범인 줄 확신하고 강하게 수사하다가 알고 보니 꽃뱀에게 당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중에 무지 미안해했던 것이 기억난다. 양심 없는 검사 같으면 수사과정에서 그럴 수도 있지 하겠지만.
인권검사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아르바이트생에게 임금을 지불하지 못한 사장님을 수사하게 되었는데 사장님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되었다. 결국 그 임금을 대신 내주었다.
이외에도 많은 선행을 행하던 그가 어느 날 포털사이트에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법원 게시판에 검사들 자체 정화를 촉구하는 글을 올린 것이다. 그러자 수많은 협박에 시달리게 되었다. 10년도 훨씬 전의 일이다. 그때만 해도 사법부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적어도 일반인들은.
직접 검사를 하고 있는 그는 양심에 꺼렸던 것이다. 경력이 얼마 안 된 검사가 내부 정화를 부르짖다니 대담하긴 하다. 나는 그가 평소 부드럽고 착한 심성이지만 정의롭다는 것을 알고 있던 터라 딱 어울리는 행동을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뒤로 얼마 안 있어 그는 그 글을 뒤집는 글을 다시 올렸다. 그것도 법원 게시판이 아니라 외부에 공개된 플랫폼에. 내부 저격을 받은 게 분명했다. 평소 정의감 있는 성격대로라면 끝까지 고수했을텐테. 셀프 물타기를 보며 씁쓸했다.
그 뒤로 불미스러운 사건의 주인공으로 기사에 오르내리면서 그는 결국 검사 옷을 벗게 되었다. 그 일도 의심스러웠다. 그 검사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는 나로선.
추리해 보았다. 처음 그가 게시글을 올렸을 때 얼마나 많은 수난을 당했을지 상상이 된다. 결국 회유와 압박에 해명글을 올리고 누명까지 쓰고는 검사 세계에서 퇴출당했다.라는 시나리오와
처음 검사였을 때만 해도 의협심에 넘쳤으나 회유와 압박에 결국 굴복당했다. 그 후 달콤한 거래까지 제안받아 권력의 시녀 역할을 하다가 토사구팽 당한 거라고. 유명 로펌을 보장받고.
하지만 두 번째 시나리오는 믿고 싶지 않다.
나는 전철과 버스를 타고 출퇴근한다. 아침잠이 많아 매일 아침 지각할까 봐 헐레벌떡 집을 나서는데 오늘은 유난히 늦었다. 게다가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버스가 막 떠나버렸다. 다음 버스는 20분 뒤에나 온단다. 그러면 1교시 수업 전에도 못 갈 판이었다.
당장 택시도 없어서 고민했다. 일단 아무 버스나 무작정 탔다. 그리고 원래 버스가 다니던 한 정류장에 내렸다. 다행히 다른 번호의 버스 중 하나가 학교까지 가는 게 아닌가. 결국 그 버스를 타고 가서 1교시 수업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만 고집해왔던 것이다. 중간에 다른 걸로 갈아타면 오랜 시간 기다리거나 포기하지 않고 학교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직 코스만 고집하지 않는다면 이렇게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다. 가려는 마음만 먹으면.
검사 시절 호랑이 기운을 뿜던 그가 지금은 어떤 표정으로 살아갈지 궁금하다. 오늘 아침 원래 타려던 버스가 아니라 다른 버스로 환승하면서 내가 무사히 학교에 올 수 있었던 것처럼, 비록 여러 버스로 갈아타게 되더라도 그가 자신이 꿈꾸던 나라에 도착하길 간절히 바란다. 그걸 동생도 원할 것이다. 그는 바로 동생이 그토록 사랑하던 남자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