밉거나 그립거나

동생에게 처음으로 선물을 줄 것이다

by 허윤숙

언니라고 부르지 않은 것도 용서된다.

어릴 때 집안일 나만 시킨 것도 용서된다.

다만 도저히 용서 안 되는 게 있다.

자기 혼자 멋대로 사라진 것이다.


그럼 나는 뭐가 되냐고. 게다가 장례식 끝나고 나서, 자기가 날 좋아했다는 소릴 꼭 듣게 해야 했나? 그전에 힌트라도 줄 것이지. 내가 원래 눈치가 없는 거 알면서. 말 안 하면 내가 어떻게 안담? 그럼 자기는 멋진 동생이 되고 나는 못난 언니가 되는 건가?






어렸을 때 동생이랑 숨바꼭질 놀이를 많이 했다. 그때 개구쟁이인 동생은 기발한 곳에 많이 숨었다. 예를 들어 이불장에 들어가 개어 놓은 이불 사이에 숨거나(깡말랐던 동생에게나 가능했다.) 장독대에 올라가 빈 항아리 속에 숨거나(이것도 말랐기에 가능했다.) 무섭지도 않은지 컴컴한 지하실에 들어가 커다란 빗자루 속에 숨거나.


그러면 절대로 못 찾는다. 나는 못 참고 "못 찾겠다. 꾀꼬리"를 외친다. 그러면 어디선가 헤헤거리며 튀어나오던 동생. 동생이 죽고 나자 그 숨바꼭질이 기억났다. 지금 동생이 숨바꼭질을 하는 거면 좋을 텐데 하면서. 그 기발하고 짓궂은 성격대로 좀 특이한 곳에 숨어있겠지.


19년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동생을 꺼내고 있다. 그동안 꾹꾹 눌러 닫아놓았던 슬픔을 끄집어 내니 숙성이 되어 있다. 그 묵직한 질감을 손으로 만지며 먼지를 툭툭 털어낸다. 그 슬픔을 내 옅은 미소로 조금씩 말리고 있다. 이제야 비로소 동생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오래 걸리긴 했다. 꺽꺽대며 흐느끼던 시간들, 나 자신을 원망하던 모습들을 다 날려버리겠다.


동생은 나에게 많은 것을 남기고 갔다. 가족을 의심 없이 사랑하기, 언제 죽어도 후회하지 않게 살기.


19년 동안 그 방법을 찾아내려고 애를 썼다. 그것들이 가능해진 지금 자신 있게 동생을 꺼낸다. 그리고 동생에게 생일 선물을 한 번도 해주지 못한 언니가 선물을 준비하기로 한다.


그건 동생이 다시 오고 싶은 세상을 만드는 것. 너무 오래 일하지 않고, 남녀평등하고, 건전한 영업이 자리 잡고, 사람이 사람을 무시하지 않는 사회. 그런 나라를 만드는데 뭐라도 하는 것이다. 그게 글 쓰는 일이 되었든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되었든.


그리고 동생이 세상에 오는 날 나도 다시 오고 싶다. 그땐 동생에게 아주 잘해줄 것이다. 동생이 아무리 말을 밉게 하더라도 서운해하지 않고. 동생이 왜 이렇게 자기에게 잘해주느냐 하고 이상해하면 한마디 할 것이다.


너무 그리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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