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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Feb 22. 2021

중간에 찢어져도 괜찮아 계란말이

조금쯤 넘어져도 괜찮다.

 은근히 사람 괴롭히는 요리 재료가 계란이다. 계란을 대하는 내 모습은 순박한 시골처녀에게 된통 차이는 도시남자 같다. 계란 프라이 같은 경우는 원형으로 예쁘게 노른자까지 익혀본 적이 없다. 미끄덩한 계란의 물성과 저렴해서 만만하게 대하는 내 마음가짐이 합쳐진 결과다. 계란말이는 더 어렵다. 이 요리는 국민반찬이라고 할 만큼 남녀노소 모두 좋아한다. 맛이 없을 수가. 안 그래도 고소한 계란을 고소한 기름에 부쳤다. 거기에 안 그래도 부드러운 계란의 질감을 얇은 두께로 부드러움을 극대화한다. 그뿐인가. 모양은 이불처럼 클래식한 모양새로 돌돌 말려있으니. 보는 것만으로도 호감도가 상승한다. 간편 성마저 갖추었다. 한입에 쏙 집어넣기 좋은 크기에 국물이나 부스러기를 흘리지 않으니. 계란말이 한 개는 밥 한 수저 반찬으로 딱이다.


 만드는 건 착하지 않다. 계란을 풀어서 프라이팬에 얇게 펴는 것 까진 할만하다. 그 뒤로 약불로 익히는 것 까지도 어렵지 않다. 적당한 너비로 조심스레 말아내는 것도 뭐. 매번 여기까지는 성공적이다. 다음이 문제다. 프라이팬 한 바닥을 말고 나서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뒤로 경우에 따라 서너 번 계란물을 더 부어서 말아대야 한다. 그 말아대는 동안 계란은 초심을 잃기 일쑤다. 처음엔 눈을 내리깔고 얌전한 고양이처럼 말리다가 두 번째 판부터 온몸으로 반항을 시작한다. "나는 이대로 장렬히 전사할 테다." 하며.


 얇은 두께 때문이기도 하고, 익히는 타이밍과 동그랗게 말리는 타이밍이 어긋나서일 수도 있다. 손목 스냅 기술이 셰프들처럼 재빠르지 못해서이기도 하고. 내 경우엔 요리하다가 잠깐씩 멍 때리는 습관 때문에도 그렇다. 지루한 과정에서 딴생각을 하니 요리가 제대로 될 리가. 이렇듯 잠깐의 일탈도 허용치 않는, 은근히 까다로운 요리가 계란말이다.


 우리나라 연예인들이 산티아고 순례길 어귀에서 민박집을 운영하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때 차승원이 두툼한 계란말이를 해 보였다. 평소 요리를 잘하고 손놀림이 민첩한 그이기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다. 역시 그는 노련하게 계란을 슥슥 말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아뿔싸. 세 겹을 말 때쯤 계란이 찢어지는 게 아닌가. 전에 실수한 적이 별로 없던 터라 당황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침착하게 말했다. "지금 이렇게 찢어졌다고 망친 게 아닙니다. 다음이 있죠." 하면서 익어가고 있는 계란 끝에 그릇에 남은 계란물을 부었다. 먼저 익고 있던 계란 끝에 새로운 액체가 들어오고, 다시 익히고 다시 말고. 결과적으론 언제 그랬냐는 듯 두툼하고 예쁜 계란말이가 완성되었다.


'계란말이가 원래 그런 거다.'라고 보여주는 듯한 장면이었다. 완벽한 요리를 보여주려고 했다면 나중에 그 부분을 편집해서 넣었겠지만. 뭐, 계란말이는 원래 그런 거니까.


평소 계란말이를 할 때마다 중간에 찢어지는 부분 때문에 대충 마무리하곤 했는데. 나는 계란말이를 하다가 초심이 흔들린 순간 바로 접어버리곤 했다. 일명 뒤가 무른, '자포자기 계란말이'였다. 반면 차승원이 만든 계란말이는 '뒷심 계란말이'였다. 앞부분이 어쨌든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에 제대로 완성하니까. 중간에 실수해도 웃으며 마무리해내니 더 좋아 보였다. 계란말이를 하다가 중간에 조금쯤 망쳐도 좋은 것이었다. 사실 끝까지 망쳐도 괜찮다. 맛과 영양은 어디 안 가니까.


 계획했던 일이 어그러지는 경우가 있다. 내 잘못 때문에, 아니면 요즘처럼 천재지변 때문에, 종종 남의 잘못 때문에. 하지만 그때마다 섣불리 실패했다고 생각지 말아야겠다. 그때마다 외치는 거다.


인생은 계란말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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