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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Jun 24. 2023

회사원의 최종 꿈은 역시 '성공'이라지


 조직에 적응하지 못한 게 자랑은 아니지만, 어디 그 이유나 좀 들어보자고 한다면 2박 3일을 쉬지 않고 떠들 수 있다. 행여 어떤 용기 있는 상사가 내게 물어와 준다면, 역시 뭐니 뭐니 해도 너 때문 아니겠니?라고 대답하는 나를 상상하다가 입이 조커처럼 찢어졌다. 그렇게 물색없이 실실거리다 골똘히 생각이란 걸 해봤다.


나, 진짜 왜 이렇게까지 조직 부적응자가 된 거지?

무엇이 나를, 회사로부터 이만치 멀어지게 만든 거지?

 

 나의 문제, 나를 둘러싼 남의 문제 등 여러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겠지만, 내가 부적응자가 된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는 '단어의 오용'이었다. 사실 이건 나 자체도 종종 범하는 오류고, 비단 이 회사만의 문제는 아니건만 내가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여기고 그로 인해 영향을 받은 나는 회사에서 단어의 오용이 들릴 때면 사사건건 거슬렸다.


 권한이라고는 1도 없는 사내 최약체 직원에게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말하는 상사를 보면 그러는 당신은 이 회사 주인도 아닌데 왜 그렇게 다 제 멋대로냐고 말하고 싶었고,  근평 규정에 (평정자의) '주관을 배제'하고 '객관적 근거'에 의해 '신뢰성과 공정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종합적'으로 평가하라는 기준을 보면 그저 티 팍팍 나는 명품들 휘감으면 급이 달라 보일 거라 착각하는 졸부같이 보였다. 보이지 않는 손에 맡기면 도무지 지켜지지 않아서 만드는 게 법이고 규정이라지만 이건 뭐 해야 한다는 당위가 아니라 죽어도 안 되는 거 알지만 그러길 바래 하는 이상을 적어놓은 거 같았다.


 게다가 주인의식이라는 허무맹랑함은 당장 회사 관용차만 타 봐도 뽀롱나는 사실이다. 주인이 없는 관용차가 여러 직원들의 운전에 의해 얼마나 많은 난도질을 당하고 기형적으로 길들여지는지 몸소 체험한 나는 '주인이 없다는 건 이런 거구나' 하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주인이 없다는 걸 호재삼아 앞장서서 회사를 걸레짝 만든 인간들일수록, 나 있는 동안만 회사 안 망하면 돼 대놓고 말하는 족속들일수록 신기할 정도로 주인의식이란 말을 입에 올린다. 자기들이 회사 주인인 줄 아는 착각과 정신승리의 결과물로.


 (다들 눈치챘겠지만) 어떤 단어를 쉽게 들먹이고 막무가내로 갖다 쓰는 사람과 조직은 원플러스원으로 내로남불이라는 천부적인 재능도 함께 갖고 다. 병적으로 무언가를 운운할수록 그 무언가를 병적으로 무시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기에 단어의 오용을 일삼는 사람과 조직은 특히 경계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얼마 전 후배로부터 단어의 오용에 관련된 위험하고도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같이 일하고 있는 상사가 시간 외 근무를 달아놓고 그 시간에 외부기관 사람들과 술을 먹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마지막으로 사무실을 나가는 그 후배에게 본인의 사무실 부재가 들킬까 봐 시건도 못 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남아있는 직원이 다른 직원이면 이런 짓(!)도 못하겠지만, 너라서 믿고 한다는 식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그 상사는 인사 부장을 오래 하면서 그 누구보다 '방만한 근태'를 하는 직원들을 앞에서 비난하고 뒤에서 씹어왔던 자다. 그 부서를 떠나자마자, 허위 시간 외 근무도 모자라 아무도 없는 사무실의 보안까지 못하게 하는 대담함마저 선보였다. 그리고 당신의 만행을 눈감아 준 듯 보였던, 당신이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 충실한 부하는 묻지도 않은 나에게 그 과오를 까발렸다.


 이 얘기를 들을 때 공중화장실에서 물 안 내린 변기를 본 기분이 들어 불쾌했지만 단어의 오용을 일삼는 자의 이중성, 그리고 가만 내버려 두어도 알아서 그 혀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겠다는 아이러니에 살짝 통쾌했다.






 신문을 읽다가 가수 이적이 '이적의 단어들'이란 산문집을 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기사에는 그가 정의한 '성공'이란 단어도 함께 소개하고 있었다. 그가 생각하는 '성공'이란 "싫은 사람과 같이 일하지 않아도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는 상태"였다. 이 군더더기 없고 적절하기 짝이 없는 정의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얻었다고 한다.


이제부터 내 꿈은...(지금으로서는 행방이 묘연해 보이는)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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