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이 학원에서 수능을 준비할 때 우리는 하교 후 식당이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었다. 아니, 벌어야만 했고 벌 수밖에 없었다. 전기가 끊기는 당황스러움을, 쌀이 떨어졌는데 쌀값이 없어 배를 곯은 적이, 휴대전화 요금을 내지 못해 날카로운 독촉 전화를 받아본 적이 있는 사람이 내 또래 아이들 중 몇 퍼센트나 될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는 말에 난 나도 – 하며 대답했던 적이 있다.
은성이는 하교 후 식당에서 설거지를 했다. 처음에는 홀서빙을 하다가 자주 컵을 깨서 결국 주방 구석 보이지 않는 한 귀퉁이에서 하염없이 그릇에 거품을 풀었다. 기름때를 맨손으로 찬물에 문지르며 너무 일찍 주부습진이 생겨버렸다. 특히 은성이의 왼쪽 손은 상처 딱지가 굳어버린 것처럼 색소가 침착되고 피부가 딱딱해져 거북이 등딱지 같은 느낌이 났다. 은성이는 2천 원이 아까워 고무장갑을 사지 않았다고 했다. 왼손잡이인 은성이는 세제가 묻은 수세미 덕에 왼손에 두꺼운 피부를 얻었다고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엄마가 있어도 몸이 약했으니 든든한 보호자가 될 수 없었다. 아니, 몸이 약했어도 마음으로라도 든든한 울타리가 돼 줬더라면 마음이 더 허 했을까.
은성은 엄마가 많이 약해 오래 서 있거나 일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이 힘든 일을 도맡아 해야 했다고 하면서 어깨를 쿨한 척 들썩 거렸는데 그 행위는 손이 저리고 허리가 안 좋을 때마다 하는 은성이의 버릇이라는 걸 난 알고 있었다.
다들 은성이가 여전사 같다고 하지만 나는 은성이의 여린 부분이 먼저 보였다.
그날, 추운 겨울이 아니라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설명하던 그날. 은성이가 식당 설거지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던 길에 왼쪽 검지손가락 위 딱딱하게 변한 피부가 칼로 자른 듯 가로로 벌어졌다. 은성은 정상적인 오른손으로 벌어져 피가 새어 나오는 손가락을 잡고 벌어진 살이 다시 붙길 바라며 움켜잡았다. 그리고 복도에서 아빠의 왁왁한 목소리를 들으며 한참을 더 기다리고 기다리다 결국 다시 복도를 내려왔다고 했다. 은성이의 첫 가출이었다. 학교와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친구들은 학원에 갈 때 혼자 습기 가득한 주방에서 설거지하는 것도 서러운데 불어 터진 손을 보니 울컥 억울함이 밀려왔고, 이 와중에 편하게 돌아갈 집조차 없다는 생각은 스스로를 너무나도 작아지게 했다. 편하게 갈 곳이 없다는 것은 가족과 집이 있으나마나 한 존재라는 것과 다름없다. 은성의 집에서는 유난히 큰 소리가 자주 났고 동생의 울음소리는 점점 거세졌다. 이웃집의 신고로 경찰이 수시로 드나들어 동네에서도 이미 유명한 집이 됐고 길을 지나가다 보면 근처 파출소 경찰들이 인사를 해주기도 했다.
“ 아 진짜.”
민망함에 일부러 눈을 부라리며 째려봐도 몇몇 어른들은 표정뒤에 감춰진 은성이의 진짜 마음을 알아보기도 했다. 은성에게 인사는 해야지!라고 말하면서 위험한 일이 생기거나 의논할 일이 있으면 고민하지 말고 파출소에 와도 된다고 말했으니까.
세상은 혼자가 아니라고 말한 분을 만났을 때 은성이는 찬찬히 얼굴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생각보다 무섭게 생긴 아저씨가 그런 말을 하니까 기분이 이상하다고 했었다.
얼굴만으로 마음이 드러나지 않는다. 표정은 감출 수 있고 얼마든지 꾸밀 수 있다. 그래서 마음이 불안정한 사람들은 그 표정에 쉽게 속아 넘어가는 것이다.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 신'을 찾는 사람처럼 우리들도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것처럼 '착하게 생긴 어른' ' 다정할 것 같은 어른'을 찾고 있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