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민언니가 성년이 됐다고 축하를 받던 날 형서언니는 치킨을 5마리나 사 왔다. 나는 로맨틱한 분위기와 치킨은 영 안 어울린다고 웃었는데, 치킨은 진짜 맛있었다. 그날 나는 막연히 나의 성년을 상상했다. 장미를 받고 동생들과 먼저 성인이 된 언니들에게 편지들을 받고 동생들의 귀여운 볼 뽀뽀를 받고 나도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 될 수 있겠지. 하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새어 나왔다. 엄마는 병원에, 처분한 집으로는 엄마의 병원비를, 그리고 나는 갈 곳이 없어 헤매다 배고픔에 어딘가에 쓰러졌고 그런 날 발견한 경찰관은 상황을 듣고 지금의 이 보호소를 소개해 줬다. 개개인의 상황은 달랐지만 이곳에 있는 아이들의 공통점은 가족을 원망하고 여전히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폭력, 부모님의 사고 등으로 갑자기 갈 곳이 없어 오게 된 아이들도 있지만 나처럼 부모가 있어도 집안 상황이 갑자기 여의치 않아 갈 곳이 없어져 오게 된 애들도 있었다.
알 수 없는 자격지심으로 이곳에서의 또래가 아니면 말도 잘 섞지 않던 내가 성민이를 만난 것은 한 편의점 앞에서였다. 이름은 몰랐지만 나는 그 남자아이의 얼굴을 분명히 기억한다. 교복을 입은 채로 휠체어에 탄 한 사람을 밀고 어디론가 갔다 교복을 입은 채 늦은 시간 다시 휠체어에 탄 사람을 밀고 어디론가 들어가는 모습은 낯설었고 따뜻해 보였다. 편의점 근처 의자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어느 날 누가 나에게 편의점 문을 잠시 잡아줄 수 있냐고 물었다. 난 순간이었지만 번호라도 따이는 줄 알았다. 내가 꿈꾸던 길거리 캐스팅이나, “ 혹시... 남자 친구 있어요?” 같은.
“....... 저기... 죄송한데 여기 문 한 번만 잡아주실 수 있을까요.?”
휠체어를 밀고 지나가던 그 남자애였다. 교복을 입은 아이는 교복을 입지 않고 있는 나를 보며 자신보다 분명 더 나이가 많다고 생각했는지 공손하게 부탁했다. 휠체어 브레이크가 망가져 손을 뗄 수 없다고 편의점 문을 잠깐 잡아달라는 말에 나는 무슨 용기가 났는지 대신 휠체어를 잡고 있을 테니까 편하게 볼일을 보고 오라고 말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 애는 고개를 꾸벅하더니 편의점에 들어갔고 삼각김밥 3개와 생수 한 개, 그리고 목캔디 하나를 손에 쥐고 나왔다. 삼각김밥 한 개는 자기 주머니로, 한 개는 휠체어에 탄 누군가의 손 위로, 한 개를 나에게 내밀었다.
“ 감사합니다.”
“ 몇 살이에요? 전 19살이요! ”
“ 저는 고3이요.”
“ 저는.. 고3이요면 19 나랑 동갑인데... 왜 존댓말해?”
“...... 처음 봤으니까요.”
“...ㅋㅋ웃기다. 동갑인데 말 놓자. 나도 동네 살아. 난 윤슬이야. 이윤슬. 넌? ”
“ 난 한성민. 그리고 난 이 동네 안 살아. 엄마 몸이 불편하신데 혼자 둘 수가 없어서 등교하기 전에 무료 보호 쉼터에 모셔다 드려야 해서. 여기”
휠체어를 쥔 두 손으로 꽉 잡은 채 고개를 살짝 움직이며 센터를 가리켰다.
“ 아.. 어! 안녕하세요.”
휠체어에 앉은 성민이의 엄마가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이 공간에 둘이 아닌 셋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놀라 인사를 했다.
“ 좀 안 좋으셔. 치매 때문에. 나도 엄마한테 지금 젊은 학생이야. 자꾸 나한테 젊은 학생 자꾸 날 어디로 데려다 놔요?라고 물어봐. 혼자 두면 위험 할 게 뻔한데 가족이 단 둘 뿐이라..”
“ 아...”
왜 그때 자꾸 성민이의 엄마를 내가 있는 보호소로 모셔가고 싶었는지 알 수 없다.
보호소에서 받은 도움을 그곳에서 다른 누군가에게 나눠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나름의 양심적인 마음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혹은 어른 한 명을 10대 10명이 거뜬히 보살 필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성민이는 나에게 왜 교복을 입고 있지 않는지, 학교에 등교는 안 하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나는 그 질문을 안 한 자체에 내심 감동받고 마음이 설렜는데 내 이야기를 들은 은성이는 깔깔거리며 관심이 얼마나 없으면 그랬겠냐고 놀렸다. 엄마랑 단 둘이 살고 엄마는 아픈 경우, 넌 학교를 어떻게 이렇게 다닐 수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돈을 벌지 않아도 생계가 유지되는지 성민이 너도 혹시 지원을 받아 도시락을 정부에서 지원받아먹고 있는지, 가스나 전기비가 끊기면 어떤 식으로 돈을 충당해 교복을 입고 살 수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이 궁금해 미칠 것 같아 다시 그 근처 의자에서 한참을 기다렸다. 정말이다. 사랑보다는 궁금함 때문이었다. 난 성민이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얻기 위해 기다린 것이다.라고... 3번 정도 합리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