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민이는 형의 시간이 병원 관계자의 연락 이후 멈췄다고 말했다. 난 궁금했다. 너의 시간은, 너의 시간은 지금 멈춰 있는 게 아닌 거냐고. 아파하던 엄마를 바라보며 힘들어하다가, 왜 도대체 이런 가족인 거냐 원망을 하다 , 돈을 벌어 엄마를 돕겠다고 17살 위험한 거래를 하려는 용기를 내다, 그 용기가 얼마나 무모한 짓이었는지 깨닫게 되는 그 과정 속에서 나의 파릇했던 마음들이 검게 시들어갔다는 것을 나는 안다.
멈춰 있는 나의 시간 17살 어느 날. 나는 옷을 벗었고 돈을 받지 못했다. 즉 남들이 말하는 철없는 10대가 경험한 더러운 일쯤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충격이 꽤 오래갔다.
임신이 안돼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한 애도 있었다. 한동안 쉴 새 없이 토하고 길을 걷다 쓰러졌다. 온몸이 가렵고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피부를 긁고 긁다 피가 나고 그곳을 감추려 대일밴드를 붙였다. 연고 없이 붙여진 밴드 가장자리로 노란 고름이 흘러 내려와 냄새가 지독했다. 엄마의 치료비를 구해오고 말겠다는 다짐도 지키지 못했고 난 날 지키지도 못했다. 아픈 엄마는 아파하던 내 모습을 보기 견디기 힘들었을까.
왜 그렇게 빨리 세상을 떠났을까.
엄마를 떠올릴 때 시작은 늘 엄마와 함께한 행복한 추억이었지만 배고픔의 추억을 지나 내가 조금만 더 컸더라면.. 분명 엄마를 살릴 수 있었을 거란 생각으로 귀결됐다.
생각의 꼬리를 물고 늘어지면 비 오는 날 비 맞은 종이박스가 된 것처럼 눅눅하고 허물어져 내릴 것만 같았다.
나는 내 아픔보다 엄마의 아픔이 100배는 더 아팠을 거라고 믿고 싶다. 너무 고통스러워 세상과 작별한 것이라고. 내 아픔은 정말 먼지 같은, 락스로 박박 문지르면 지워지는 곰팡이 정도의 아픔일 뿐이라고.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면서 가난하긴 했지만 나름 평범했던 학생의 생활이 완전히 달라졌다. 공부를 할 시간도, 필요성도 못 느꼈다. 엄마에게 유일한 보호자였던 나는 엄마를 엄마처럼 돌봐야 했다. 돈을 벌어야 했다. 친구들이 화장품을 사러 가거나 연애 이야기를 할 때, 아이돌 굿즈 이야기를 할 때 나는 조용히 이어폰을 껴서 음악을 듣는 척하면서 세상 모든 일에 관심 없는 척 연기를 했었다. 때론 연기처럼 이 순간 사라져 버리고 싶은 적도 있었다.
보호소에서 함께 지낸 내 동지들의 행복은 '안전한 거처'와 '함께'라는 든든함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우리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의 행복은 꽤나 구체적이고 다양하며 컸다. 집의 평수나, 갖고 싶은 옷의 브랜드, 여행지, 꿈이나 계획,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나 친구, 애인과 하는 갖가지 일들....
누군가 나에게 -넌 언제 행복해? -라는 질문을 했을 때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 -배부르게 잘 때?-
정도 대답하던 것들을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나 다양하게 대답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자신이 가진 것들을 하나도 포기하지 않고도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 거구나..
세상에 직면할수록 난 점점 작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나처럼 직면하면 직면할수록 작아지는 동지들이 곁에 있어서였을 것이다.
성민이를 친한 친구라고 말하기는 애매했지만, 나는 오래 알고 지냈던 친구들보다 성민이가 더 편했다. 나는 성민이가 사람을 함부로 말하지 않아 좋았고, 부정적으로만 세상을 바라보지 않아 좋았고, 그런 세상을 향해 분노하지 않아 좋았다. 나랑은 정반대로 보이던 아이에게 집안의 작은 가장이란 작은 공통점을 발견한 건 더 좋았다.
성민이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한 날, 성민은 마음에 공간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고 말하면서 거절도, 수락도 하지 않았다. 나는 성민이의 어중간한 대답에 희망을 가지고 한 달 뒤에 다시 똑같이 말할 거라면서 요구르트 빨대를 손으로 빙글빙글 돌리며 걸었다.
“... 그래.”
“ 엥? 그래.. 라 이거지? 좋아!”
성민이의 엄마 건강이 악화 돼 센터에서도 관리가 더 이상은 어렵다는 연락을 받은 몇 달 후 성민은 학교등교를 위해 안방 문을 안에서 열지 못하게 잠가 놓은 적이 있다고 했고, 엄마가 더 아파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됐을 때는 움직이지 못하는 걸 잠시 다행이라 생각한 적도 있다고 했다.
지원금이라도 받을 수 있으니 어쩌면 경제적으로 나보다 더 힘든 애들도 많을 거란 말에 나는 왜 내 배고픔이 아련히 떠올랐던 것일까. 치매도 무서운데 넘어져 금이 가버린 고관절 때문에 건강은 가속도가 붙은 것처럼 더 나빠졌다. 섬망증상까지 더해진 엄마를 보며 힘들어하는 성민이 얼굴은 무표정하고 지쳐 보였다. 슬픔이 오면 행복이 한 번 와서 그래도 어느 정도 균형은 맞춰줘야 하는 것 아닌가.
슬픔에 슬픔이 이어오고 더 큰 슬픔이 덮어지면 어떤 걸 의지하면서 버티고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그때 우리에겐 의지할 것이 사랑뿐이었다.
나는 종료라는 말, 이별이라는 말, 끝이라는 말들을 말끔히 지워버리고 싶었다.